후배 기자가 지난 5월에 펴낸 책의 제목은 ‘나쁜 뉴스의 나라’다. 그 가운데 공감하는 문장이 있어 소개한다. 민감한 정치 이슈나 정부 비판에 침묵하는 언론을 분석한 글이다. 

“흔히 사람들은 언론과 미디어가 어떤 뉴스를 생산했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만, 진짜 미디어의 힘은 보도하지 않는 데 있다.”

시민들은 정부 비판 기능이 거세된 공영방송을 무시하거나 폄하한다. 그러나 이들 방송들은 비판 보도를 내지 않는 것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의 힘을 느낀 건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때였다. 경찰 물대포 직사살수로 고령의 농민이 중태에 빠졌지만 공영방송 KBS는 집회의 폭력성을 부각하는 데 여념 없었다. 

KBS 메인뉴스 ‘뉴스9’은 “광화문 일대 격렬 시위…부상자 속출”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관련 소식을 보도했다.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에 초점을 맞춘 기사였다.

이어지는 리포트는 “대규모 집회로 시내 교통이 마비되는 바람에 시험을 치르지 못한 학생까지 생기고 말았다”는 내용으로 보도 이후 편향성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와 다르게 수험생 피해를 지나치게 과장했다는 비판이 안팎으로 제기됐다.

이날 KBS ‘뉴스9’은 백남기 농민의 중태 소식을 외면했다. 같은 날 한 시간 빠른 JTBC ‘뉴스룸’이 현장을 생중계하며 “시위에 참가했던 60대 농민 단체 참가자 1명이 머리를 크게 다쳐 생명이 위독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 지난해 11월29일 자사 보도 비평 프로그램인 ‘KBS뉴스 옴부즈맨’에 패널로 출연한 최재현 KBS 정치부장. (사진=KBS)
더욱 경악스러웠던 것은 KBS 보도 책임자의 발언이었다. 최재현 KBS 정치부장은 KBS 보도국 사회2부장이던 지난해 11월29일, 지금은 폐지된 보도 비평 프로그램 ‘KBS 뉴스 옴부즈맨’에 출연했다. 

이 방송에서 최 부장은 “9시 뉴스를 할 때까지만 해도 중태자가 나온 줄 몰랐다”고 말했다.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시각은 오후 7시30분이었고 주요 언론들은 인터넷을 통해 오후 8시부터 이 사실을 속보로 타전하고 있었다. 

그는 또 “살수차가 (물대포를) 쏘는 장면도 보면, 한쪽 경찰 버스가 뚫리니까 시위대하고 경찰이 섞이게 됐고 유혈사태까지 갈 수도 있었다”며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살수차로 떼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보이더라. 그래서 그때 상황에서는 폭력 시위 막는 쪽 보도에 비중을 뒀던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장은 “이후 살수차에 맞아서 중태에 빠진 분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며 “안타까운 부상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보도를 할 수밖에 없는, 또 그쪽 입장을 담아줘야 하는 게 공영방송으로서 균형적인 시각”이라고 말했다. 

혹시 공영방송 보도 책임자가 폭력 시위를 막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당시 방송을 보며 우려했던 기억이 있다. 

민중총궐기 때 공영방송들은 공권력을 감시해야 할 의무를 스스로 포기했다. 시민을 겨눈 물대포는 끝내 무고한 농민의 목숨을 앗아갔다. 경찰은 유족에게 부검을 요구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언론이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 보도를 하면서 시위대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처럼 국가 폭력성을 지적하고 비판했다면 경찰이 백씨 유가족에게 이처럼 무도할 수 있었을까. 

백씨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다. 동시에 국가폭력에 침묵한 언론의 2차 폭력 피해자다. 여전히 언론 다수는 비판의 펜을 거둬들인 채 국가의 편에 서 있다. 나쁜 나라의 나쁜 뉴스가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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