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자들이 역사상 최대 규모 공동파업에 돌입했다. 27일 시작된 철도와 지하철을 비롯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총파업 규모는 확대되는 모양새다. 공공운수노동조합에 따르면 첫날 5만여명이던 파업 참가 인원은 이틀만인 29일 6만2000명으로 확대됐다. 

언론의 관심은 뜨겁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공공기관 파업’으로 검색해보면 최근 일주일 동안 보도량은 800여건(29일 오후 기준)에 이른다. 하지만 대부분이 정부 입장만 고스란히 전하거나 시민의 불편함을 강조하고 있다. ‘귀족노조’ 프레임 역시 어김없이 등장했다. 보도유형을 정리했다. 

1. 정부 입장만 받아쓰기
기사의 대부분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내용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우리 임금체계의 연공성은 OECD에서 가장 높고 그 혜택도 대기업과 공공기관 종사자에게 집중됐다”며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연공급 적용에서 배제되고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를 초래해 노동시장 격차확대, 이중구조 형성의 주범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유 부총리의 발언을 제목으로 달아 기사를 쏟아냈다. “유일호 ‘금융, 공공기관 파업 해도 너무한 집단 이기주의”(디지털타임스), “유일호 ’금융·공공기관 파업, 집단 이기주의”(YTN), “유일호 부총리, ‘공공기관 파업 해도 너무한 이기주의…일터로 복귀해야”(전자신문) 등이다. 

하지만 유 부총리의 발언은 앞뒤가 뒤바뀐 것이다.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연공급에서 배제된 것은 노조 등 ‘보루’가 없는 노동자들부터 성과연봉제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이중구조는 공공기관 노동자들 때문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언론은 유 부총리의 발언을 검증하고 비판하기는커녕 그대로 전달했다. 

▲ 머니투데이 29일 1면 기사
2. ‘시민’을 볼모 삼는 언론
파업으로 인한 불편함을 강조하는 보도도 많았다. 중앙일보는 29일 사설에서 “금융공기업과 철도, 지하철에 이어 어제는 공공병원과 시립대병원이 소속된 보건의료 노조까지 가세했다”며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기득권 지키기에만 급급한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29일 사설에서 “세금으로 월급 받으며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은 도덕성의 마비”라고 비판했다. 서울경제는 29일 대도시 출퇴근길 시민들은 큰 불편이 없었지만 무궁화호와 새마을호 승객들은 불편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경쟁과 효율에 집중할수록 그 피해가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내용은 언론보도에서 찾기 어렵다. 직원들이 실적 경쟁을 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공공성이 훼손돼 결과적으로 공공서비스를 이용하는 국민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가령 철도와 지하철의 경우 위험한 업무는 더욱 더 외주화 될 가능성이 높다. 사고 발생 여부가 중요한 평가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구의역 사고도 위험 업무 외주화의 결과였다. 이것이 정말 비정규직 노동자와 시민들을 위한 것일까. 시민을 볼모로 삼는 건 노조일까 언론일까. 

▲ 동아일보 29일자 사설
3. 곧 나라경제 망할 것 같은 보도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나오는 주장 중 하나다. 서울경제는 29일 물류수송 차질이 현실화되고 있어 피해가 커지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파업이 장기화되면 시멘트 물류수송 차질은 물론 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2차 피해도 우려된다고 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한국철도물류협회의 성명을 인용해 “철도노조의 파업 결정은 수출입 물류운송 차질로 중소물류업체를 도산 위기로 내몰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는 결정”이라고 보도했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배경과 사측의 책임은 생략됐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파업은 사전적 의미 그대로 노동자가 노동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단결해 하던 일을 멈추는 것이다. 파업 자체가 업무에 차질을 빚어 사용자를 압박하려는 목적이다. 이는 헌법 33조가 보장하는 ‘권리’다. 일련의 언론보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흔드는 행위와 같다. 

게다가 언론의 경제 침체 보도는 호들갑에 가깝다. 코레일은 사전수송을 통해 이미 시멘트 12일분을 비축했고 컨테이너도 12개 열차를 미리 수송했다. 또 파업기간 중에도 도로 수송이 어려운 위험품은 평시와 같이 수송하고 수출입 컨테이너는 수도권 물량 위주로 우선 수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서울경제 29일 30면 기사
4. “돈 많이 받으면 조용히 있으라” 또 등장한 ‘귀족노조’  
“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금융노조와 현대차 노조는 물론이고 철도 지하철 병원 노조원들도 정년이 보장된 철밥통이다. 청년들이 가장 취업하기를 원하는 ‘신의 직장’에 다니면서 성과연봉제 반대를 명분으로 파업하는 것은 국민의 눈에 배부른 투정으로 비칠 뿐이다.”(동아일보 29일자 사설) 

전자신문은 29일 “금융노조가 지난 23일 열린 총파업 집회에서 고액의 돈을 들여 연예인 공연을 개최해 빈축을 샀다”고 보도한 뒤 “파업 집회에서 2만원이 훌쩍 넘는 패밀리레스토랑 런치세트를 주문해 단체로 식사하는 장면이 포착 돼 구설수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파업에 나서는 노동자들은 연예인 공연을 봐서도 안 되고 2천원짜리 김밥으로 허기를 달래야한다는 식의 잘못된 감정적 접근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귀족노조 프레임은 “돈 많이 받으니 권리는 포기하라”는 것에 가깝다. 쟁의권은 가난해야 부여되는 것이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구조적으로 노동자가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늘 불리한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여한 권리다. 무엇보다 노조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이익집단’이다. 언제 어느 순간에도 ‘완벽한’ 근로조건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투쟁은 영원히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박광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29일 칼럼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많이 경청해야겠지만, 임금과 고용 수준이 높다는 이유로 강자로 취급해 입을 다물라 하면 돈이 더 많은 ‘진짜 강자’에게는 또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라고 꼬집기도 했다. 

▲ 서울 군자차량기지에 지하철들이 서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5. 일단 ‘불법’ 딱지부터 붙이고 보기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이번 파업은 합법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임금체계인 성과연봉제를 두고 다투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임금파업이 불법이라는 건 이전에도 들어본 적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합법 파업의 요건은 총 네 가지로 △쟁의주체가 노동조합일 것 △쟁의 목적이 근로조건 결정과 관련된 사항일 것 △찬반투표, 조정 등의 절차를 밟을 것 △쟁의 수단이 폭력, 파괴 등을 동반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성과연봉제는 파업의 목적(근로조건 결정)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이번 파업이 합법임을 증명할 요소는 많다. 철도노조는 파업 전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거쳤다. 전주지방법원은 27일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가 노조 파업목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성과연봉제 도입은 근로조건의 불리한 변경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법’ 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정부 입장만 내보낸 보도가 많다.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가 운영하는 보도전문채널 연합뉴스TV가 대표적이다. 연합뉴스TV는 파업 전부터 “정부는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고 이후에도 파업이 ‘불법’ 이라는 정부의 발언만 인용보도했다. 민주노총은 연합뉴스TV의 해당 보도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위반했다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이 28일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6. 성과연봉제=생산성 향상? 본질적 물음 회피하는 ‘무보도’ 
이번 파업과 관련해 800여개에 가까운 기사가 쏟아졌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기사는 보기 어렵다. △왜 노동자들이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대하는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이 국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성과연봉제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질지 등이다. 

박광희 한국일보 논설위원은 29일 칼럼에서 “생산성 하락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며 “낮은 노동생산성은 노동자보다는 경제정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정부와 투자에 인색하고 사업 발굴 능력이 떨어지는 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정부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에서도 공공기관별 성격에 따라 임금 체계를 개편해야 하며 성과주의적 운용을 앞세우면 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바 있다. 

실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호봉제로 다시 전환한 사례도 있다. 서울시 동부병원이 대표적이다. 2005년 이명박 정부 당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이 병원은 9년만인 2013년 호봉제로 다시 전환했다. △객관적 수치로 업무능력 평가 불가능 △직원들 간의 위화감과 불화 조성 △이직률 상승 등의 이유다. 성과연봉제를 하던 서울시 북부병원도 내년부터 호봉제로 다시 전환한다. 

하지만 언론은 이런 내용을 보도하지 않는다. 물음조차 던지지 않고 정부측 주장에 맞춰 기계적 균형도 지키지 않는다. 단발적인 파업 기사만 넘쳐날 뿐이다. 지금이라도 공론장이 형성되고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성과연봉제 도입은 공공부문 노동자들만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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