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성과연봉제 조기도입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가 공개됐다. 고용노동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위해 단계별 시나리오를 구성해 산하기관에 적용했다는 내용으로, 문건에는 ‘선 제도 도입 후 보완 전략’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이 확보한 2016년 3월11일 간담회 자료 중 고용노동부 산하 A기관의 자료를 보면, ‘고용노동부 기조실장 주재’로 ‘2016년 3월11일 기획관리이사가 참여한 정책실무협의회 제출자료’라고 나와 있다. 해당 자료에는 ‘16년 4월말까지 도입완료를 목표로 추진’하고 ‘17년 시행을 목표로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3월11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간담회 자료 중 A산하기관이 작성한 자료 중 일부. 자료=김삼화 의원실 제공

고용노동부가 성과연봉제 조기도입을 위해 기조실장 주재의 산하기관 회의를 수차례 가졌고, 이런 회의를 통해 산하기관에 성과연봉제 조기도입을 압박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삼화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 3월11일, 4월21일, 5월13일, 6월2일에 노동부 기조실장 주재로 산하기관 기획관리이사 회의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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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화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성과연봉제 조기도입을 위해 장·차관 주재로 한 산하기관장 회의도 여러차례 가졌다. 2016년 4월27일 노동부 차관 주재로 산하기관장 회의가 열렸고, 2016년 5월4일 노동부 장관 주재로 산하기관장 회의가 열렸다.

또한 김삼화 의원실이 확보한 2016년 4월 21일 간담회자료에는 ‘기관별 성과연봉제 확대방안 추진현황’이라는 제목의 노동부 산하 B기관 자료가 포함돼 있다. 기관별 성과연봉제 개선방안, 추진현황, 진행상황, 고용노동부 산하 유관기관과의 공동 대응 협의채널을 월 1회로 정례화하고 노조를 설득하지 못할 경우 ‘선 제도도입, 후 보완전략’으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 자료에는 2016년 6월 하순까지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가 협의하기로 하고 6월 말까지 취업규칙 개정(안)을 이사회 의결을 통해 추진할 계획까지 포함돼 있다.

▲ 4월21일 고용노동부 산하기관 간담회 자료 중 B산하기관이 작성한 자료의 일부. 자료=김삼화 의원실

기획재정부는 올해 1월28일 기존 간부직(7%)를 상대로 시행 중인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를 비간부직(7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10일 120개 공공기관이 모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동의를 받지 못한 공공기관들은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다. 이런 와중에 고용노동부의 기획 하에 산하기관들이 이사회 의결 이후 노사합의 전략을 세우고 성과연봉제를 확대 추진했다는 정황이 담긴 자료가 나온 것이다. 노동부의 경우 11개 산하기관 중 10곳이 5월 말, 1곳이 6월 중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는데 이 중 6개 기관이 노조 동의없이 이사회 의결만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해 논란이 됐다.

김삼화 의원은 “2015년 9월 15일 노사정합의시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2년 동안 제대로 된 평가체계를 먼저 만들고,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고, 2016년 5월 20일 여야정 민생경제점검 회의  시 성과연봉제와 관련해서 정부는 불법, 탈법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노조가 합의를 거부할 경우 노조의 동의 없이도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제하자는 입장과 계획을 담은 회의자료를 공공기관장들과 공유하며 시나리오에 따라 성과연봉제를 밀어붙였다. 이는 국민은 물론 국회와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도 정부가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됐다. 무소속 윤종오 의원은 22일 대정부질의에서 “기획재정부가 거액의 인센티브 제공과 불이익압박을 통해 많은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동의없이 이사회 결의만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등 위법행위가 벌어졌다”며 “성과연봉제는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이며 단체협약의 변경이나 노조의 동의없는 취업규칙의 변경은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2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이기권 노동부 장관의 퇴진을 촉구하며 천막농성 돌입 및 하반기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포커스뉴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3일 대정부질문에서 “기재부가 120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서 성과연봉제 도입을 전부완료했다고 하는데, 절반 가까운 53곳에서 노조 동의업없이 이사회 의결로 성과연봉제를 강행해 불법성이 문제되고 있다”며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이것이 근로기준법 94조 위반이라는 해석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황교안 국무총리는 “입법조사처에서도 나름대로 의견을 가지고 있겠지만 법 해석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여러 의견을 종합해 정부가 판단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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