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정감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이름이 호명되고 있다. 초선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때 이 부회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이 이 부회장을 호명한 이유는 삼성이 삼성생명공익재단이라는 공익법인을 이용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하고 있다는 의혹을 국감에서 밝혀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국회에 와서 ‘재벌의 힘은 크고 정치의 힘은 왜소하다’는 점을 실감했다는 박용진 의원. 미디어오늘이 21일 오전 의원실에서 만났다.

- 이재용 부회장을 국감장에 부를 수 있을까

“부를 수 있다고 보고 불러야 한다고 본다. 새누리당에서 볼멘소리로 왜 협상시작도 안 했는데 기자회견부터 하냐고 하더라. 바닷물이 짠 지 안 짠지 마셔봐야 아는 건 아니다. 국회가 재벌들의 현란하고 치밀한 대관업무에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고 새누리당의 기류도 알고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왜 (이재용 부회장을) 불러야하는지 이유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삼성생명재단이 이사회 결의에 따라 삼성물산 주식 3천억 원 어치를 매입한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재단 이사장인 이재용 밖에 없다.”

- 새누리당은 여전히 반대하는 입장인가

“정무위 야당 간사 두 분은 충분히 이해했고 일정한 공감을 형성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새누리당 유의동 간사도 대단히 합리적인 정치인이기에 당내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증인 채택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다. 정무위 간사들 중에 제일 먼저 이재용 증인 채택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던 대상이 유의동 간사였다. 유의동 간사가 아니라 새누리당의 입장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는 여론이다. 롯데 신동빈 회장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기 전에는 ‘채택되겠어?’ ‘채택 되도 국회에 나오겠어?’라고 했지만 결국 나왔다. 여론이 들끓으니 안 부를 수 없었고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1일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새누리당은 무분별하게 기업인들을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는데.

“기본적으로 국감은 공공기관들, 정부당국을 대상으로 업무를 제대로 했는지 예산을 썼는지 파악하는 일이기에 (공무원들이 아닌) 일반증인 채택에 신중해야하는 건 맞다.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로 제한하고, 호통만 치는 내용 없는 국감이 아니어야한다는 말도 100% 맞다. 그런데 단지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부르지 못하는 건 문제 아닌가. 기업인이 아닌 일반 증인이나 참고인 채택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데 기업인을 부를 때만 유독 어마어마한 산을 넘어야 한다. 이것도 일종의 특권이거나,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 아닌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박용진 의원 이름을 검색하면 20대 국회 들어와 발의한 22개의 법안이 뜬다. 주로 경제적 강자의 전횡이나 독점을 막는 경제민주화 법안이다. 그 중에서도 상법 개정안, 공익법인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은 대기업의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를 방지하는, 즉 기업 지배구조를 건드리는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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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 방지가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라 보나

“우리나라는 몇 안 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육성과정을 가지고 있다.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들에 비해 취약한 구조다. 이 구조가 전환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 중심 경제의 취약성이 극대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경영권 승계의 불합리성을 드러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능력 없는 사람이 DNA가 같다는 이유로 경영권과 전 재산을 물려받는 상황은 최악이다. 조선해운 구조조정 청문회에서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에게 ‘어쩌다 경영에 참가했나’라고 물으니 ‘선대 회장 돌아가시고 상속 받아서 맡게 됐다’고 하더라. 아무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이 상속을 받았다는 이유로 거대기업을 맡아서 망쳐놓고, 온 나라가 뒤치다꺼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삼성이, 현대가 그러지 말란 법 있나. 롯데는 벌써 그러고 있다”

- 이런 법안을 내면 대기업이 반발하지 않나

“이런 저런 법안을 내면 삼성 대관업무를 하는 분들이 찾아와 ‘그 법이 나오면 경영권 방어가 어렵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누구를 위해 경영권을 방어하나, 왜 이재용이어야만 하나. 자신 있으세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린다. 한국의 전체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제대통령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단지 상속받았다는 이유로, 아빠가 줬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가는 것은 대단히 끔찍한 일이다.”

▲ 6월1일 오후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26회 호암상 시상식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 기자회견에서 “재벌의 힘은 크고 정치의 힘은 왜소하다”고 했다. 실감하고 있나

“로비가 나쁜 건 아니다. 적극적으로 입장을 전달하고 홍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제가 법안을 만들어도 그 법안의 파장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삼성이나 현대가 이해를 구하려고 하고 설명하려는 일은 좋다고 본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와서 ‘법안만 철회해 달라’ ‘힘들어죽겠다’고 하는 건 옳지 않다. 아주 부실한 대관 업무자로, 교체해야 하지 않나. (웃음) 설명하고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 증인 채택과정에서도 로비가 많을 것 같은데

“이번에 삼성화재, 삼성생명 사장 일가를 증인으로 채택해야한다는 의견을 냈더니 부사장들이 후다닥 뛰어왔더라. (논의 중인데) 어떻게 알았는지, 엉뚱한 사람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점심시간이 비어 있어서 오라고 한 다음 국회에서 식사를 대접하고 설명을 잘 들었다. 만났는데 국회의원이 밥 산 건 처음이었다고 했다. (웃음) 밥은 내가 살 테니 자주 오시라고 했다. 오늘은 현대차에서 설명할 게 있다고 온다고 해서 오시라고 했다. 야당 의원들이 대기업을 적으로 생각하고 공공의 적으로 만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 발의한 많은 법안들 중 가장 시급하게 통과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법안은 무엇인가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을 하려고 한다. 현행 상법에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기업이 인적분할하면 신주가 발행되고 의결권이 부활하면서 고스란히 대주주의 경영권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간다. 인적분할시 신주발행 된 주식에 의결권을 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놓았다. 삼성이 가장 곤란해 하는 법안이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얼른 지주회사로 분할하고 싶을 거다. 이 법이 만들어져서, 혹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왜 삼성전자가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지, 누구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지 알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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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일부 정치권의 대기업 정책은 지배구조에 시비 거는 권력투쟁”이라고 했다. 박용진 의원이 낸 법안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하다.

“편법적인 경영권 승계와 기업 지배구조는 우리 경제의 숨은 지뢰다. 지뢰를 찾으러 잔디밭에 들어갔는데 쓸데없이 잔디를 밟고 다닌다고 하면, 잔디만 보고 잔디 밑의 위험한 지뢰를 보지 못하는 인식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를 잘 유지하기 위해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오히려 여당에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 인터뷰 중인 박용진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 여당이 이런 입장이다 보니 법안 통과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냥 한 번 던져본 법안들은 아니다. 발의를 위한 발의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싸움을 길게 보고 있고, 대선 직전까지 가게 될 것이다.”

박용진 의원은 진보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이름으로, 2008년 진보신당의 이름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뒤 대선 전인 2011년 민주통합당으로 왔다.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도 ‘이방인’ 같은 존재로 꼽히는 이유다. 그러다 더민주 안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김종인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김 전 대표는 “초선 중에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 박용진 뿐이라 비서실장으로 뽑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민주당으로 올 때 고민은 없었나

“그 당시에는 결정하기 힘들었다. 가까웠던 사람들로부터 비난도 받아야했고. 하지만 정치도 인생도 선택이고 책임이다. 2000년 첫 출마할 때 가졌던 마음에서 변한 건 없다. 세상을 똑바로 바꾸겠다는 다짐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지금의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다.”

- 진보정당에서는 본인의 정치적 꿈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봤나

“이미 지지부진한 진보정당의 모습이 증명하고 있지 않나. 대한민국처럼 빨리 변하는 나라에서는 뭐든지 10년~15년 지나면 달라진다. 민주노동당이 생기기 전에 정치 이외의 다른 방법, 총파업 등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진보진영, 운동진영의 주류였다. 그래서 민노당 만들 때도 비난이 엄청났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민주노총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투적 조합주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였다. 박용진도 비슷한 선택을 했다고 본다. 민노당에서 진보신당 거쳐 오면서 박용진만큼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민노당이 잘못한 건 아니다. 진보정당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정치구조와 둘러싼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한다.”

- 어떤 상황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한 건가

“진보적 가치와 진보적 생각이 진보정당이라는 틀에서만 가능한 것인지, 다른 방법도 가능한 것인지 판단하고 논의해야할 때 아닌가.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비례대표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필요하다는 말만 한다. 기존 정치질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 이야기만 반복할 건가. 늘 5~10석은 유지하지만, 우리가 약속했던 세상의 변화는 못하는 거다. 내부에서 그런 주장도 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과거 성공했던 방식으로 또 가더라. 그래서 통합진보당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생각도 다르고 방법도 다른 운동권들을 물리적으로 다 모아놓고 (거대야당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방식 말이다. 이번 한 번 파국으로 끝난 똑같은 방식을 또 했다. 그래서 무너지는 과정이 더 빨리 왔다. 이런 과정이 10년 간 진보정치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어떤 보답이 됐을까?

- 종편에 자주 출연해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종편 출연이 필요하다고 봤나

“인지도에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정치인은 사람을 만나거나 자기주장을 설파하는 데 있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전사는 전장이 어디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나는 초원에서 잘 싸우니까 초원으로 가자’ 이건 말이 안 된다. 숲에서 싸움이 벌어지면 숲에서 싸워서 이겨야 한다. 종편이라고 해서 정치인이 자기주장과 정책을 설파하려는 노력을 왜 포기하나. 1%만 종편을 본다고 해도 50만 명인데?”

▲ 박용진 국회의원이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마치고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당시 포스터들 앞에 섰다. 사진=이치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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