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스톡홀름 신드롬에 걸려있다. 지금이라도 페이스북으로부터 도망쳐야한다. 그런데 갈 곳이 없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과학사를 연구 중인 예브게니 모로조프(Evgeny Morozov)는 현재 언론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언론사들이 플랫폼의 노예가 되다 못 해 동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문의 경우 지면은 진작에 죽었고 언론사 자체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독자는 극히 일부다. 2015년을 기점으로 페이스북을 통한 뉴스 리퍼럴(Referral) 비율이 구글을 앞질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격차는 앞으로 계속 벌어질 것이다. 언론사들은 왜 플랫폼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무엇보다 뉴스브랜드가 점차 약해지고 있다. 김익현 지디넷미디어연구소 소장은 25일 건국대 새천년관에서 열린 ‘2016년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현실을 ‘복면가왕’으로 표현했다. 과거에는 브랜드 후광을 입을 수 있는 ‘나는 가수다’ 경쟁구도였다면 지금은 “계급장 떼고”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로이터연구소가 지난 6월 12개국의 소셜미디어와 포털(Aggregator)을 통한 뉴스브랜드 인지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모두 최하점을 받았다. 소셜미디어와 포털뉴스 소비자 중 24%, 23%만 뉴스브랜드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1위를 차지한 독일의 경우 소셜미디어 뉴스소비자 52%, 포털뉴스 소비자 55%가 뉴스브랜드를 인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 8월25일 건국대 새천년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2016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 '스토리텔링 진화'에서 김익현 지디넷미디어연구소 소장이 강연에 나선 모습. ⓒ이치열 기자
뉴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생산자 중심의 뉴스를 소비하지 않는다. 뉴스 소비 시간만 봐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생산자가 상품을 내어놓는 특정 시간에 뉴스를 소비했지만 2007년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소비자들은 수시로 뉴스를 본다. 이런 현실에서 콘텐츠 수명이 고작 이틀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김 소장은 ‘에버그린 콘텐츠’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버그린 콘텐츠는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에 등장해 회자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김 소장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언급하며 “어떤 이념을 가진 시대에도 읽히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보통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에버그린 콘텐츠에는 ‘정석’이 있다. △일회성 주제, 일시적인 토픽을 피하라(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선호하는 토픽을 줄여라(선택과 집중, 전문성) △전문가처럼 쓰지 말라(전문적 이야기를 대중적으로) △원론, 리스티클이 통한다(~하는 몇 가지 방법) 등이 있다. 

김 소장은 여기에 ‘사람’이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사람은 뉴스 생산자 개인이다. 뉴스브랜드의 인지도는 낮아지고 있지만 기자 개인의 브랜드 소비는 늘고 있다. 미국 IT전문매체 ‘더 버지’(The Verge)가 대표적인 사례다. 더 버지는 개인 브랜드화 된 사람들로 꾸려서 최근 급부상했다. 

김 소장은 “이런 시대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 콘텐츠에 집중해야한다”며 “언론의 혁신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순간 많은 걸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새로운 걸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에 알고 있던 ‘모나리자’를 보러 가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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