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2시 KBS2TV 신작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발표회 현장. 영등포 타임스퀘어 5층 아모리스홀은 행사 시작 1시간 전부터 셀카봉을 들고 출연자 대기실 앞에 까치발을 들고 서있는 팬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곳곳에선 중국말도 들렸고, 동남아 팬들도 눈에 띄었다. 배우 박보검의 얼굴이 그려진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도 보였다.

팬들은 제작발표회로 입장하는 기자들에게 빵·과일·과자를 아담한 박스에 포장해 나눠주었다. 팬들이 기자들에게 먹을 걸 준다고? 드라마·예능 제작발표회에서 주연배우 팬클럽이 기사를 잘 써달라는 취지로 약간의 음식과 기념품을 기자들에게 주거나 쌀 화환을 보내는 일은 언제부턴가 관행으로 굳어졌다.

제작발표회장은 행사시작 30분 전인데도 프레스석에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기자들도 행사 시작 전 이미 드라마 팜플렛이나 관련 정보 검색 등을 통해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기자는 얼핏 세어 봐도 150여명은 넘어보였다. 사진기자들은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 실랑이를 벌였다. 포토타임에서 팬들로 보이는 이들이 일어서서 사진을 찍자 뒤에 있던 사진 기자들은 “자세 좀 낮춰!”, “좀 비켜!”라며 욕설에 가까운 고성을 질렀다.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발표회에서 배우 김유정의 모습. ⓒKBS
이날 제작발표회 진행은 조충현 KBS 아나운서가 맡았다. 시작은 포토타임. 출연 배우 다섯 명이 차례로 나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조충현 아나운서는 배우 채수빈씨가 무대에 오르자 “러블리한 포즈, 남심을 녹일 수 있는 포즈를 취해 달라”고 말했다. 조 아나운서는 “저에게도 하트 한 번 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배우 김유정씨의 포토타임에선 박보검씨와 진영씨를 가리키며 “두 남자 배우 중 누가 더 좋나”라고 물었다.

포토타임 이후 드라마 하이라이트 영상이 이어졌다. 상당수 기자들은 하이라이트 영상이 상영되는 도중에 기사를 작성해 올렸다. 제작발표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관련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하이라이트 영상이 끝나자 조충현 아나운서는 기자들을 향해 “벌써부터 포털에 기사와 사진이 올라가고 있다. 정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를 보며 어느 연예부 기자는 “요즘 저 사람 행사 진행할 때마다 저런 멘트 치네. 저거 좀 별론데”라고 말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다양했는데 박보검씨를 향해 미성년자인 김유정씨와 스킨쉽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응답하라 1988’ 출연 배우들의 저주에 본인이 해당된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묻는 식의 일부 무례해보이거나 자극적인 질문도 섞여 있었다. 기자간담회 도중 배우를 쳐다보며 느긋한 기자들은 찾기 힘들었다. 대부분 노트북 모니터를 쳐다보며 타자를 치기 바빴다. 얼마 안 돼 <‘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 “응팔 저주? 속상한 말이야”>(아시아투데이), <‘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 “김유정이 스킨쉽 먼저 배려...”>(스포츠경향)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포털에 올라왔다.

KBS 2TV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발표회에서 주연배우들의 질의응답 모습. ⓒKBS
제작발표회가 끝나자 많은 팬들이 까치발을 들고 대기실 칸막이 앞에 서서 한번이라도 더 배우를 보기 위해 몸싸움을 벌였다. 팬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기자에게 다가와 “손목에 맨 프레스 띠 좀 주시면 안 될까요. 그것만 있으면 오빠 보러 들어갈 수 있어서요”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KBS 드라마 홍보대행사 측은 행사장에 모인 기자들에게 샴푸와 바디워시 세트, 드라마 이름이 박힌 수건을 선물로 줬다. 커피스터디룸 2시간 사용권도 줬다. 기자들은 아무렇지 않게 선물을 받고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따르면 18일 ‘구르미 그린 달빛’ 제작발표회 관련 기사는 1502건에 달했다. 그렇게 ‘평범했던’ 1시간30분간의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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