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와 독립제작사간 갈등은 낯선 뉴스가 안다. 지난해 MBN의 PD가 독립 PD를 폭행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독립제작사 및 독립 PD의 처우와 방송사 갑질이 이슈화됐다. 그러나 단순히 방송사 PD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갈등의 이면에는 25년 가까이 이어진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간 해묵은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

종편의 등장으로 독점체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지상파 입장에선 무조건 일정비율을 외주 제작해야 한다고 정해진 법에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고, 독립제작사는 편성권을 무기로 지상파가 계약 상 우위를 점하고 제작비 후려치기를 하거나 저작권을 모두 가져가는 등 ‘갑질’을 한다는 입장이다. 25년 간의 정책의 시행 결과 콘텐츠 생태계 다양성 확보라는 목표는 여전히 난망하다.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갈등의 쟁점과 전망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외주제작 업계에 ‘몬스터’와 ‘드래곤’이 등장했다. CJ E&M은 지난 5월 650억 원을 투자해 드라마 제작을 담당하는 ‘스튜디오드래곤’이라는 제작사를 설립했다. KBS는 8월 자본금 400억원 규모의 드라마 제작사 ‘몬스터유니온’을 출범시켰다. 오밀조밀 작은 규모의 제작사들로 구성된 외주제작 업계에,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몬스터와 드래곤급 제작사의 등장으로 지난한 갈등을 겪어온 업계의 분위기는 다시 경색되고 있다.

독립제작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KBS와 CJE&M모두 방송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이기 때문이다. 자회사인 ‘스튜디오 드래곤’과 ‘몬스터 유니온’ 등을 통해 제작한 방송 영상물을 그대로 가져다 틀 수 있다. 실제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제작한 드라마는 tvN의 ‘또 오해영’과 ‘굿와이프’ 등으로, CJ 계열 방송사에 바로 편성됐다. 9월 방송 예정인 KBS 드라마 ‘공항가는길’도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했다.

중소 규모의 작은 독립제작사들은 불공정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방송사의 자회사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할 여력이 있더라도, 방송사가 자회사 콘텐츠를 더 선호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나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 한국독립PD협회 등이 몬스터유니온의 출범 소식에 자사 방송국의 ‘일감 몰아주기’로 편성을 독식할 것을 우려하며 한 목소리로 비판을 쏟아낸 이유이기도 하다.

지상파의 숙원, 외주비율 줄이기

외주제작 업계에 방송사들이 자회사 형태로 제작사를 속속들이 출범시키는 이유는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올해부터 시행되면서다. 당시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외주프로그램을 방송사업자나 방송사업자와 특수관계자가 아닌 독립제작사들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외주편성 갈등은 1991년부터 시행된 외주제작 의무편성 제도가 만들어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주제작 프로그램을 전체 프로그램의 20%에서 40%까지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지상파는 방송시장을 독점하는 사업자였고 독립제작사와 ‘상생’을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외주제작 편성기준은 촘촘하게 도입돼 주시청 시간대에도 별도로 외주편성비율이 정해질 정도였다. 방송사들이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들 자회사를 통해 제작한 프로그램을 전체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21%를 초과해 편성할 수 없었다.

방송사들은 우선, 특수관계자 조항을 폐지하는 데 전력을 쏟았다. 특히 코바코 독점체제가 붕괴되고 종합편성채널이 들어서면서 지상파가 급속도로 무너지면서 위기감이 커졌다. 매체별 광고시장 점유율 추이를 보면 2006년 지상파는 전체 방송광고시장의 75.8%를 차지했으나 2010년 66.3%, 2015년 55%로 급락하는 추세다. 한 지상파 관계자는 “과거 지상파가 독점일 때 만들어진 규제를 종편과 CJ가 잘 나가는 이 시점에도 그대로 적용해왔던 게 문제”라며 “지상파 먹고 사는 게 힘든데 독립제작사에 편성을 넘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지상파는 외주제작 비중이 높으면 자체 콘텐츠 제작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를 폈다. 법으로 정해진 비율을 상회하며 이미 외주제작에 의존하는 수준이 과한 정도인데다 중국 등 해외 시장에 내놓을 콘텐츠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도 자체 콘텐츠 제작 역량을 키우고 질 높은 콘텐츠를 방송사가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SBS의 경우 2013년 기준 외주제작 편성 비율은 54.5%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SBS가 지켜야 한다고 법으로 정해진 35%를 훌쩍 넘는 수치다.

지역 네트워크로 구성된 MBC는 특수관계자 조항에 더 큰 피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특수관계자 기준에 지역네트워크 방송사들도 해당되기 때문에 지역 MBC가 제작한 좋은 프로그램을 편성하려고 해도 제한이 걸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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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들은 더 나아가 외주제작 의무편성비율 자체를 없애달라는 입장이기도 하다. △법으로 강제하지 않더라도 이미 방송사들이 큰 비중을 외주제작에 의존하고 있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특별 편성이 필요한 기간에는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 비율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도 있으며 △전체 방송 편성 중에서 뉴스와 스포츠 등 보편적 시청권의 적용을 받는 프로그램은 외주제작 프로그램 편성 비율 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넘쳐나는 독립제작사, 양극화 문제도

방송사들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독립제작사들의 양극화 현상에 대한 불만도 있다. 대다수의 독립제작사들은 열악한 경영환경과 제작 상황에 놓여있는 반면, 극소수의 드라마 제작사들의 경우 지상파보다도 협상력에서 우위를 차지할 정도다.

상생을 위해 양적 규제로 시장을 키워왔지만 정작 독립제작사는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했다. 과도하게 외주 편성기준을 높이고, 설립요건이 까다롭지 않다보니 부실 독립제작사가 양산되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2015 방송영상산업백서에 따르면 독립제작사들의 종사자 규모는 영세한 수준이다. 1~4명으로 구성된 사업체는 2014년 기준 159곳(32.1%)이나 차지했다. 5~9명은 113곳(22.8%)으로 10명 미만의 직원인 독립제작사가 절반을 넘는다. 직원 10~49명이 있는 독립제작사는 40.7%(202곳)로 절반에 못 미쳤다. 영세한 규모로 부실하게 운영되는 독립제작사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매출액 규모를 봐도 영세한 상황은 드러난다.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시한 방송영상독립제작사 실태조사에 따르면 휴·폐업 및 업종 변경 신고를 하지 않은 사업체와, 연락이 안 되고 방송영상물 실적이 존재하지 않는 페이퍼 컴퍼니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방송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는 독립제작사는 신고된 사업체는 전체의 40%에 불과하다.

좁은 외주 시장에 500개 이상 들어선 제작사들의 양극화는 심각하다. 소수는 승승장구했다. 스타 작가와 연예인들을 필두로 한 극소수 대규모 제작사들이 등장했다. 중국 콘텐츠 시장이 한국 방송사들의 스타 PD들을 대거 영입해가고 중국이 자본력을 앞세워 한국 콘텐츠의 지식재산권(IP)까지 모두 챙겨가려는 분위기도 있다. 독보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줄 스타 작가들이 한국 방송사만 선호하지도 않다보니 지상파가 갑질을 하기는커녕 지상파보다 협상력 우위에 서 있다.

특히 높은 출연료는 지상파 방송사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SBS의 ‘육룡이나르샤’와 같은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조차도 제작비를 모두 제외하고나면 적자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이제는 본부장급 이상에서 직접 스타 작가를 섭외하러 다녀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스타 작가가 같은 소속 연예인들을 줄줄이 출연시키겠다고 해도 PD차원에서는 이를 거부할 힘이 없다. 거액의 제작비가 든다해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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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고질적인 ‘갑질문화’

방송영상 독립제작 업계에 방송사가 직접 뛰어든 이유는 결국 스타 작가와 연예인을 중심으로 수억대의 제작비와 광고 매출이 오가는 드라마와 예능을 ‘남의 손’이 아닌 ‘자기 손’에서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이 말은 결국 돈 되지 않는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독립제작사들의 몫이 되면서 의무편성 비율만 채우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사들이 제작사들의 입지가 높아졌다고 토로하기는 하나, 이는 결국 극소수 드라마 및 예능 중심 제작사들에 한정된 이야기다.

대다수의 독립제작사들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한다. 방송영상 독립제작사들의 장르별 프로그램 제작 현황을 보면 거액의 제작비와 광고료가 붙는 드라마(0.5%)와 오락(6.2%)보다는 교양(33.5%), 뉴스보도(14.5%), 다큐멘터리(10.6%) 등의 제작 건수 비율이 높다.

제작비가 많지 않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주로 제작하는 방송영상 독립제작사들이 소규모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내 방송영상 제작 여건상 조명, 음향, 작가 등의 제작진과 보조 출연자들은 비정규직 형태의 프로젝트 사업별로 종사할 수밖에 없고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대형 제작사의 운영도 쉽지 않다. 2015년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방송영상 독립제작사에 고용된 이들 중 절반 이상인 54.4%(3689명)가 비정규직이다.

제작비 후려치기는 독립제작사와 독립PD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온 사항이다. 영상을 제작해 납품할 곳이 방송사 이외에는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방송사들이 우월한 ‘갑’의 위치가 됐고 계약 관계에서 부당한 요구 조건을 요구해도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는 것. 여기에 방송사들의 수익이 악화되면서 제작비 여건은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권호영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2003년 이후 유료방송 가입자가 1000만을 넘어서고 인터넷 이용이 보편화되면서 지상파 방송사들의 시청률이 급락하고 이에 따라 광고 수입이 정체됐다.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는 외주 제작비를 대폭 줄였다”고 분석했다.

권 연구원에 따르면 외주 제작 다큐멘터리의 경우 2013년 기준 5년 전에 비해 30% 이상 제작비가 삭감됐다. 여기에 프로그램 제작 계약서도 없거나 불리하게 작성돼, 제작 도중에 프로그램 편성이 취소될 경우 아예 제작에 든 비용 전부를 보전받지 못해도 항의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제작비 후려치기’는 독립제작사와 독립PD들의 근로 여건을 열악하게 만드는 주 원인이며, 결과적으로 방송 콘텐츠의 질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한 독립PD는 “90년대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줄어 VJ나 PD, 조연출 등 최소 3명 이상이 촬영해야 할 것을 PD 혼자 억지로 다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제작비를 받아도 적자가 나는 상황이니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촬영을 하긴 한다. 결국 독립제작사들이 촬영 역량을 키우기 힘든 환경”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꾸준히 독립제작사와 독립PD들이 지적하고 있는 부분은 지상파를 비롯한 방송사들의 ‘갑질’이다. 방송사들이 편성권을 쥐고 있을 뿐만아니라, 제작 이후에도 원소스 테이프까지 모든 권리를 다 방송사에 넘기는 식의 계약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방송영상 독립제작사가 프로그램의 저작권을 갖는 경우는 2015년 방송영상 산업백서에 따르면 2014년 기준 18.3%에 불과하며 방송사에 모두 귀속되는 비율은 71.0%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공동으로 보유하는 경우는 10.7%다.

방송사 납품용 영상 제작 이외에도 다큐멘터리 등 2차 저작물 제작을 통한 수익은 늘고는 있지만 아직 큰 기대를 갖기는 힘든 상황이다. 2014년 기준 방송사에 납품한 매출액이 전체 방송영상 독립제작사의 매출액 중 59.6%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나마 2013년 64.9%에서 줄어든 수치인데, 이는 방송사 이외의 매출액 수치가 2014년 기준으로 조금 올라간 덕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관계자 제한 조항이 폐지됐고, 방송사의 대형 자회사를 중심으로 ‘일감 몰아주기’식 거래 관행이 자리 잡히면 독립제작사와 방송사 간 생태계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외주제작 특수관계자 편성비율 제한규정 폐지에 따른 쟁점과 과제’라는 제목의 기고글을 통해 “지상파 방송사와 자회사의 프로덕션은 제작비의 코스트 산정을 인위적으로 조장할 소지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제작사들의 제작비 조정 협상에 활용할 수 있다”며 “급격한 제도 변화로 인해 대응할 여력이 없는 중소 독립제작사들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부정적 효과를 불러올 개연성도 크다”고 분석했다.

▲ ⓒ iStock. 그래픽=이우림 기자.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상생 협력의 길로 가야

외주 제작 편성 비율과 같은 양적 규제는 이제 방송 영상 제작 시장의 질적 성장을 담보하지 못할 뿐만아니라 방송사와 제작사 간 현재 발생하는 갈등을 해소하기에도 현실적이지 않다.

지난해 MBN의 독립PD에 대한 폭행 논란이 이어지며 사회적으로 독립PD와 독립제작사에 대한 방송사들의 부당한 거래 관행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 바 있다. 이후 19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독립PD와 제작사들의 고충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및 제작자들 간의 상생 협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지상파 방송3사는 지난해 ‘지상파방송 3사 외주제작 상생협력방안’을 내놓았다. △외주 계약 시 문화체육관광부 제작 표준계약서 적용 △순수외주제작 편성비율의 상향 조정, 저작권·수익 배분, 외주인정기준 등에 관한 논의 협의체 참여 △특수관계자를 통한 불공정한 재하청 금지 및 외주사의 공정한 참여 보장 △제작비 지급 시기 단축 및 촬영 원본 활용 활대 등 각 사 별 자율적 독립제작사 지원 방안 마련 등이 포함됐다.

국회 차원에서도 독립제작사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을 통해 독립제작사에게 간접광고를 영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총선 공약으로 ‘독립제작사를 위해 표준계약서 및 표준제작비 규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 25년여간 의무편성 제도를 통해 성장해온 외주제작 시장은 단순히 제작과 납품이라는 관계를 벗어나 이제 방송사와 독립제작사, 독립PD 간 상생 협력이 필수적인 상황까지 이르렀다. 뉴미디어 시장의 확장과 중국 콘텐츠 시장의 한국 시장 위협 등 외부 요소들이 산적한 가운데 외주 제작 시장의 질적 변화는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표준계약서 정착 등 업계 공정거래 관행부터 쌓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만제 원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기고한 글을 통해 “외주제작에 투입되는 창작요소와 수요의 예측이 불투명하게 부담하게 되는 위험요소를 투명하고 똑똑하게 산정해야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된다”며 “표준계약서 사용이 확대되면 투명한 제작관행이 정착해 투자가 확대되고 우수한 제작 인력이 유입돼 미래형 영상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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