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울산을 깜짝 방문했다.

박 대통령은 사드 배치 선정, 우병우 민정수석 의혹 등 산적한 현안 때문에 청와대 관저에서 휴가를 보낼 것으로 예상했지만 지난 28일 울산으로 내려와 십리대숲을 거닐고, 신정시장에서 떡, 과자 등을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

울산시는 대통령의 깜짝 방문으로 관광활성화가 될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지역신문도 찬양일색이다. 경상일보는 “꺼져가는 울산경제에 관광산업을 통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인공호흡까지 해준 셈”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울산행에 대해 "많은 국민이 국내 휴가를 통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을 찾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설명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울산 방문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 보이지만 집권 후반기 민심이반을 다잡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울산은 박근혜 정부에 등을 돌린 '재난구역'에 해당한다. 박근혜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미디어오늘이 여론조사기관 (주)에스티아이와 함께 지난 3월부터 7월까지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변화 추이를 분석한 결과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질문에 잘 못한다는 부정평가는 48.6%로 나타났다. 총선이 있었던 4월 부정평가는 무려 60.4%로 치솟았다. 그리고 5월 52.5%, 6월 55.3%, 7월 56.7%로 부정평가는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PK의 전통적 기반 산업인 조선과 기계, 화학 등 주요 대기업이 물려 있어 중공업 벨트라고 불리는 울산은 정통적으로 여권 강세 지역으로 통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참패를 당했다.

부산일보는 "중공업 중심의 지역경제가 침체되고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노동자층의 불만이 잇따라 터져 나왔고 이 여파가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반여(反與) 성향으로 돌려버린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정몽준 전 의원이 5선을 지낸 울산 동구에서 무소속 김종훈 후보가 당선됐고, 울산 북구까지 무소속 윤종오 후보가 당선된 것은 상징적이다.

일찍이 구조조정 문제로 불안이 고조되고 일감이 축소돼 부자 도시의 명성까지도 위협받고 있는 울산 지역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배신감이 정점에 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신공항 부지 선정 문제로 여론이 싸늘한데 박근혜 정부는 PK홀대론을 상쇄할 만한 타개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휴가차 울산 지역을 방문하고 청와대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언급한 것은 민심이반을 막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울산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개발 성공신화가 퍼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울산이란 도시를 설명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박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난 1962년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하면서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번영의 터전을 닦기 위해 공업도시 울산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그 성패에 따라 민족의 미래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에 참석해 “루르(독일)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을 재현하려는 이 민족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 이것은 민족재흥의 터전을 닦는 것이며 국가 백년대계의 보고를 마련하는 것이고 자손만대의 번영을 약속하는 민족적 궐기”라고까지 말했다.

▲ 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울산은 빈곤의 도시에서 부자의 도시로 탈바꿈한 기적의 도시였다. 공단 개발로 인해 태화강에 악취가 진동하고 토착민이 쫓겨나가는 등 개발의 그림자가 드리웠지만 울산은 한국의 압축 성장사를 보여주는 곳으로 통하며 박 전 대통령의 개발 독재 업적을 기릴 수 있는 지역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성공신화를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었던 울산이 일자리가 불분명한 절망의 도시가 되고, 좀처럼 지역경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도시가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지난달 20일 현대자동차 노조와 현대중공업노조가 23년 만에 태화강 둔치에 모여 총파업 대회를 개최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조선산업 대량해고 구조조정 중단, 쉬운 해고와 임금피크제, 성과퇴출제 반대 등 이들이 외치는 구호 속에는 이미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이 파탄나있다. 총파업 대회에서 김동성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노조 준비위원장은 "조선 업종이 호황일 때 뼈 빠지게 일했던 노동자에 정당한 대가는 주어지지 않고 성과는 경영진, 채권단, 국가에서 모두 가져가고 부실의 책임은 온통 우리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울산의 성공신화에는 노동자의 피와 땀이 포함돼 있는데 희생의 책임은 노동자만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울산행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배려’라고 마냥 환영할 수 없는 이유도 울산의 '진짜'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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