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과 통신 등의 양성평등 위반 사례를 심의한 건수가 지난 9년 동안 1% 남짓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혐오·비하 범죄와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방송사가 심의기관의 고위직을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증가하면서 양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9일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입수한 자료를 보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2008년에서 지난 5월까지 심의 제재한 총 건수 대비 양성평등 위반 심의 건수는 0.87%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2008년 2.54%로 가장 높았고 2010년이 0.15%로 가장 낮았다. 양성평등 위반 심의 건수가 전체 심의 건수의 1%를 넘었던 것은 2012년(1.27%)이 유일했다. 다른 해엔 전부 0%대에 머물러 사실상 제재가 전무했다.

▲  '강남역 10번출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만난 시민들이 5월4일 언론중재위원회 앞에서 헤럴드경제의 선정적인 보도에 대한 규탄 피켓팅을 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그러나 양성평등을 저해하는 방송 및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대한 민원과 신고는 증가 추세다. 지난 2012년 양성평등 관련 민원 및 신고건수는 13건이 신고됐으나 위반 처분을 받은 건 11건이었다. 그나마도 이때가 성적이 제일 좋은 때였다.

2013년에는 신고 건수가 22건으로 늘었으나 위반 확정 심의를 받은 건은 5건으로 줄었으며 2014년 신고 50건에 위반 9건, 2015년 신고 4건 위반 9건, 올해 5월까지 위반 45건에 심의 3건으로 심의에서 위반으로 확정되는 사례가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송심의위원회의 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도 낳고 있다. 지난 5년 간 방송사 재허가·재승인에 영향을 미치는 법정 제재는 지상파 3건, 종편 2건에 그쳤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는 그나마도 주의·경고에 그쳤고 벌점이 대폭 증가하는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나 시청자에 대한 사과는 전무했다. 법정제재를 넘는 과징금 조치도 0건이었다. 



유료방송의 경우 총 심의 위반 사례 건수 자체가 19건으로 지상파(9건)와 종편(9건)에 비해 2배 이상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법정제재도 주의(6건), 경고(5건)을 비롯해 관계자 징계 2건을 받았으며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1건)도 있었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에는 방송 규제 기구가 남성 편향적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미옥 의원은 “방송규제기관과 방송사 이사회의 남성적 인적 구성으로 여성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여성의 참여를 보장할 제도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 당시 구성된 방송통신위원회 1기(2008~11년) 위원 5명 중 여성은 1명이었으나 2기(11~14년)와 박근혜 정부 들어 구성된 3기(14~16년 현재)까지 여성위원은 단 한 명도 선임되지 않았다.

심의 담당 기구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그나마 1기(2008~11년) 2명, 2기(2011~14년) 1명으로 여성이 참여하고 있었으나 박근혜 정부 들어 오히려 방송통신심의위원회(2014~16년 현재) 구성에서 여성 위원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 자료=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 통합 재구성. 

문미옥 의원은 “이명박 정부 당시 방송규제기관들이 그나마 최소한 여성위원 선임을 통해 양성 평등을 지키려는 노력을 보였으나 남녀가 조화를 이루는 양성평등 사회를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 들어 여성 참여의 벽이 더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방송통신 규제·심의 기구 문제만은 아니었다. 방송을 제작하는 일선 방송사 역시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영향을 미치는 간부급에 여성 비율이 줄었다.

KBS 이사회의 경우 2008~9년 총 11명 중 여성 이사는 3명이었으나 2010년 여성 이사는 1명에 불과했다. 2014년 9월 이인호 이사장이 새로 추천돼 보궐로 입성하면서 여성 이사는 겨우 2명으로 들었고 지난해 새로 구성된 이사회에서도 여성 2명 수준이 유직되고 있다.

한국교육방송공사 이사회 역시 이사회 총 9명 중 여성 이사는 2008년 1명에서 2013년 2명으로 늘었으나 지난해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에 여성 이사는 전무한 것으로 집계됐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도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2명의 여성 이사가 활동했으나 새로 구성된 2009년 여성 이사는 0명이었다. 2012년 다시 야당이 여성을 추천하면서 여성 이사가 1명이 포함되는 등 구색을 맞췄으나 지난해 구성된 새로운 이사회에선 또다시 여성 이사가 전무한 상황이 됐다.

▲ 문미옥 더불어민주당 의원 통합 재구성. 


방송 3사에서 실제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국장급 이상 여성은 지난 5월 현재 총 8명으로 전체 국장급 인력 대비 6,7%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는 지난 5월 현재 국장 이상 총 73명 중 3명(4.1%)에 그쳤고 방문진은 34명 중 4명(11.8%), EBS는 12명 중 1명(8.3%)이 국장 이상 직급을 유지하고 있다.

연도별로 보면 KBS는 2008년 12명에서 2009년 2명으로 줄었다가 2013년 6명까지 증가했다가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방문진은 2008~9년 0명이던 여성 간부가 2012년 6명까지 증가했다가 2015년 3명, 2014년 1명, 2015년 3명 등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치를 보였다. 여성 비율이 가장 높았을 때 역시 전체 국장 인력의 85% 가량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다.

EBS는 통계가 확보된 2008년부터 여성 인력은 전무했으며 2014년 여성 간부 1명이 증가해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전혀 없음에도 법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선임 근거 규정인 ‘방송통신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나 공영방송 3사 이사·감사 선임 근거 규정을 봐도 여성 위원 비율에 관련한 규정이 전무한 상황이다.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에는 위원 5명 중 여성 2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영국 오프콤의 경우 위원 5명 중 위원장을 포함해 4명 이상의 여성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영국 BBC의 이사회 격인 BBC트러스트 역시 위원 정수 12명 중 위원장을 포함한 여성 위원이 5명 가량 배치됐다.

미국은 연방통신위원회 관련 규정에 방송사 전체 고용 중 여성 등 소수집단 비율을 보고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으며 BBC트러스트는 2017년까지 방송기술 인력 중 30%를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 여성들이 5월27일 여성혐오 범죄 인정 재조사를 요구하며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집단행동을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문미옥 의원은 “최근 방송에서 여성혐오·차별 비하가 장르 불문하고 발생하는 것은 심의 규정 제30조(양성평등) 위반으로 제재를 받은 비율이 연간 1% 남짓에 그치는 것은 방송 규제 기관과 방송사 이사회, 방송사 책임 관리직 남성 편향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문미옥 의원은 그러면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여성의 참여를 적극 보장하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영국 오프콤(Ofcom) 사례를 참고해 방송 규제와 제작 과정에 일정 비율 이상 여성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며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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