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82만4446명. 지난 2월 한 달 간 종합편성채널4사(TV조선, 채널A, JTBC, MBN)를 시청한 사람의 숫자다.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의 시청률 조사결과 2월 한 달간 평균 시청자 수는 MBN 25만696명, 채널A 21만1494명, TV조선 18만2106명, JTBC 18만150명 순이었다. 이는 지상파 4개 채널 시청자 수인 260만 명의 3분에 1에 달하는 숫자다.

2009년 미디어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2011년 종편이 첫 개국했을 때 언론운동진영과 시민사회단체, 야권은 종편을 거부하자는 입장이었다. “가만 놔둬도 한두 군데는 문 닫을 것”이라는 조롱 섞인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4년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종편은 대한민국 사회의 여론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정할 수 없는 큰 변수가 됐다. 미디어법 통과에 반대했던 야당 의원들도 이제 종편에 출연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 2011년 12월 개국 이후 종합편성채널 4사의 채널 시청률 추이. 최근 1년간 시청률이 정체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닐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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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 중 채널A와 TV조선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보도를 전면에 내세운다. 많게는 80~90%가 뉴스 및 시사보도, 혹은 ‘유사 보도’로 분류된다. 그 수많은 보도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단연 정치 보도다. 많게는 전체 뉴스의 90% 가량을 정치 뉴스가 차지할 정도로 일부 종편의 뉴스 프로그램은 정치 뉴스로 도배가 되어 있다. 한국의 정치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며 종편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취재가 아닌 그림을 원하는 ENG 카메라

한 정치부 기자는 “안 그래도 국회에는 1000명 넘는 출입기자들이 몰려있어 취재환경이 좋진 않았는데 종편이 들어온 이후 취재환경이 더 엉망이 됐다”고 말한다. 이유는 종편의 정치 뉴스가 추구하는 것이 취재를 바탕으로 한 팩트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하며 ‘찍어내기’를 했다. 모든 국회 출입기자들의 시선은 유승민 의원에게로 쏠린다. 종편 기자들이 카메라 기자와 함께 국회 의원회관을 나서는 유 의원을 따라간다. 그리고 묻는다. “사퇴하실 겁니까?” 묵묵부답인 유 의원. 차 안으로 사라진다.

다음 날 다시 유승민 의원이 나타났다. 기자들에게 이미 할 말이 없다, 말하지 않겠다고 말한 상태였다. 종편 기자들이 유 의원을 또 따라가며 어제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사퇴하실 겁니까?” “하신다면 언제 하실 겁니까?” 유 의원은 다시 묵묵부답이다.

며칠 간 이어진 같은 질문, 그리고 같은 그림. 그걸 지켜보던 기자들끼리 대화를 나눈다. “재네들 왜 저래요?” “나도 몰라.”

2~3일에 걸쳐 종편에는 유승민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을 빠져나가고 기자가 유 의원에게 사퇴 여부를 묻는 ‘그림’이 방송된다. 이 방송을 보고 시청자가 알 수 있었던 정보는 무엇일까. 유 의원이 기자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는 것?

취재가 아닌 한 순간의 그림 만들기에 주력하다보면 정치인에게 던지는 질문도 이상해진다. 일반적으로 기자가 정치인에게 던지는 질문에는 단계가 있다. 정치인은 답하지 않으려 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려고 하기에 어떻게든 이리 찌르고 저리 찔러서 답변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하고 나오는 길, 기자들이 뻗치기를 하고 있다가 김무성 대표에게 달려든다.

한 기자가 묻는다. “오늘 회의는 잘 하셨어요?” “뭐, 잘했지. 화기애애했습니다.”

다른 기자가 묻는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들어가시면서 강한 문제제기를 할 거라고 하셨는데, 좀 어떠셨나요?”“민주주의란 건 여러 의견이 존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의견을 공유했고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점점 구체화되어간다. “여의도연구원장 선임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좀 모이셨나요?” “의총에서 논의가 이어집니까?”

취재가 아닌 ‘그림’을 만들려면 이런 질문이 불필요하다.

김무성 대표가 비공개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마자 한 기자가 대뜸 묻는다. “새누리당의 계파갈등은 해결 됐습니까?” 이런 질문을 들으면 어떤 정치인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건, “너는 뭐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라고 윽박을 지르건, 하나의 그림은 만들어졌다.

▲ 2015년 11월6일 채널A 시사인사이드 갈무리

‘그림 만들기’식 정치 보도는 취재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들이 이런 취재 방식에 적응해버리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 매체의 정치부 기자는 “예전에는 의원총회나 회의 끝나고 나오면 기자들이 삼삼오오 의원들한테 붙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의원들도 말을 잘해주는 편이었다. 그런데 종편의 취재 방식이 일반화된 이후부터 정치인들이 말을 안 한다”며 “24시간 ENG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데 말을 하겠나. 자신이 한 말이 하나하나 다 생방송 수준으로, 어떻게 가공될지 모르니 부담스러워서 아예 입을 닫아버린 거다”라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또한 “이런 상황이 오면 마이너 매체가 취재에 불리해진다. 의원이 자신이 중요한 이야기를 할 언론사를 선택해서 말을 해주기 때문”이라며 “의원이 스피커로 활용하거나, 혹은 걸려오는 전화를 받는 경우는 메이저 매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정치부 기자는 “정치부 기자 일이 갈수록 재미가 없어진다. 예전에는 의원들 마주치면 무슨 질문을 던져야 듣고 싶은 말을 끌어낼까 고민하고 또 애매한 말을 해석하는 재미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냥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되다보니 정치인들도 딱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그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만들어진 그림을 안주삼아 시작되는 정치평론

이렇게 만들어진 그림은 뉴스에서도 자주 사용되지만, 사실 이 그림의 진짜 역할은 ‘시사토크쇼’ ‘정치토크쇼’에서 드러난다. 3~4명의 정치평론가들이 배경화면처럼 흘러 나오는 이 그림을 안주삼아 정치평론을 시작한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사퇴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유승민 의원의 모습은 이렇게 활용된다. 이 영상이 정치토크쇼에서 배경화면처럼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정치평론가들은 유승민의 심경은 어떻고 또 표정은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토론한다. 애초에 취재가 아닌 그림이 필요한 이유다. 팩트가 아닌 의견진술, 정치평론에 사용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뉴스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종편 시사토크쇼의 ‘정치인 뇌 구조’ 분석 코너다. TV조선 신통방통은 지난 1월20일 방송에서 출연자들에게 “조경태 의원의 머릿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뇌구조를 그려보자”는 과제를 제시했고 출연자들은 뇌 모양 그림에 ‘반문(반문재인)’ ‘4선’ ‘부산좌장’ 등의 키워드를 써 넣었다. 그 외에도 진행자가 “박영선, 천정배 의원의 심경은 어떨까?” “조경태를 바라보는 3당의 속마음은 무엇일까?” “문재인 대표는 정계은퇴 마음 있나, 없나” 등의 질문을 던지면 출연자들이 정치인의 마음과 심경을 추측해 평론한다.

▲ 1월20일자 TV조선 신통방통 갈무리

지난 1월4일 채널A 시사프로그램 ‘아침경제 골든타임’에서 <총선 앞두고 ‘안풍’ 변수…‘안철수의 뇌구조’>라는 코너를 방송했다. 진행자는 “당사자는 어떤 생각과 계산을 할까 무소속 안철수 의원 뇌구조를 예상해서 정리해봤다”며 안 의원의 뇌 구조를 분석한 판넬을 꺼내든다. 출연자들은 판넬에 담긴 키워드에 대해 평론한다. 종편에는 이런 ‘관심법’ 방송이 넘쳐나고, 기자들이 정치인을 따라다니며 만든 그림은 이런 관심법 방송의 자료화면으로 사용된다.

▲ 1월4일자 채널A ‘아침경제 골든타임’ 갈무리

관심법을 시도하는 평론가들도 신뢰하기 어려운 사람들 투성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다는 것이다. 4.13 총선을 한 달 앞둔 3월14일 총선보도감시연대가 1월14일부터 3월9일까지 TV조선과 채널A, MBN, YTN, 연합뉴스TV 등 6개 매체의 시사토크쇼 프로그램에 출연한 패널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친정부·여당 성향 출연자가 친야당 성향 출연자보다 약 5배 많았다. 6개 매체의 11개 주요 시사토크쇼에 출연한 패널 중 친정부·여당성향으로 분류된 출연자는 62.3%, 친야당 성향은 12.6%, 중도성향은 25.2%로 나타난 것이다.

평론가들은 전문성도 없다. 한겨레21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해 1월5일~2월1일 종편 4개사의 16개 시사프로에 나온 패널 190명 중 1위부터 20위를 차지한 다수 출연자들의 대화 주제를 전수조사해 직업적 전문성과 일일이 대조했는데, 패널이 비전문 분야 주제를 다루는 비율은 평균 47.6%, 최고 90.7%에 달했다. 한 쪽으로 치우친 데다 전문성도 없는 출연자들이 펼치는 관심법이 정치뉴스의 주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경향은 종편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예능이나 드라마를 만들기보다 제작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사토크쇼로 컨텐츠를 채우면서 발생했다. 종편에서 이런 시사토크쇼 방식의 정치보도가 홍수를 이루면서 YTN, 연합뉴스TV 등 보도전문채널에서도 이런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한 방송사 기자는 “시사토크쇼는 투자 대비 최대 효율을 끌어내는 정치 뉴스다. 패널들이 자극적으로 말할수록 시청률은 순간적으로 올라간다. 보도국 간부들은 ‘우리도 저런 것 좀 만들어봐’라고 한다”고 전했다. 종편의 정치 뉴스가 언론의 정치 뉴스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종편의 헛소리를 심판한 선거”였지만…

정치 뉴스를 쏟아내며 관심법까지 동원하던 종편에게 다가온 최대의 위기는 4.13 총선이다. ‘여당에 편향됐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정치평론가들이 열심히 야당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여소야대 정국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채널A와 TV조선에 등장한 평론가들 중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석 수를 ’70석 미만‘으로 예상한 이들도 있었다. 결과는 122석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의원은 “종편은 더민주 70석 미만을 예상했다. 이번 선거를 두고 언론에서 친노의 오만을 견제하고 박근혜 불통을 심판한 선거라고 하던데, 사실 종편의 헛소리를 심판한 선거다”라고 말했다.

종편은 열심히 제1야당 더민주를 비판했지만 종편 시청자들에게 그 효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높다. 종편은 주로 야당을 비판했지만 새누리당 공천파동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갈등은 뉴스가 된다’는 법칙 때문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서 “새누리당 공천파동이 계속되는 동안, 종편들은 그 과정을 현장중계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그만큼 시청률 오르는 아이템이 어디 있었겠는가”라며 ”패널들도 여야 성향 구분 없이 청와대·친박의 막장 공천을 한 목소리로 내내 비난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지지층이 등 돌린 데는 종편의 영향이 제법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편이 더민주를 비판하다보니 상대적으로 국민의당을 띄워주는 역할도 했다. 선거 끝나고 국민의당이 종편에 고마워했을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종편은 국민의당 박지원, 문병호 의원 등에게 더민주와 친노를 비판하는 역할을 맡겼고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종편에 등장했다. 종편을 시청하는 새누리당, 보수층이 공천파동으로 시끄러운 새누리당 대신 국민의당으로 옮겨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뉴스 생산자들이 의도를 가지고 뉴스를 만들더라도 뉴스 소비자들이 그 의도대로 움직이란 법은 없다는 걸 보여준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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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로 총선 이후 종편은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됐다. 압도적이던 정치 뉴스의 비중은 조금이나마 줄어들었다. 그 자리는 심층보도나 기획 기사가 아니라 박유천, 김민희-홍상수 등 연예뉴스가 채웠다. 야당의 전·현직 의원들도 패널로 고용하고 있다. TV조선은 잦은 막말과 편향된 방송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자주 불려가 ‘막말탱크’ ‘심의탱크’라 불리던 ‘장성민의 시사탱크’도 폐지했다.

종편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던 편향성을 개선한다 해도 종편이 정치 뉴스에 남긴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는다. 취재 대신 그림을 각광받게 만든 종편식 정치 뉴스가 이미 한국 정치 뉴스 전반에 퍼져 버렸기 때문이다.

* 정치기사 바로보기 시리즈

(1) 오보도 특종도 모두 말에서 나오는 ‘사실속의 소설’

(2) 혐오라는 이름의 편향, 정치혐오는 누구의 편인가

(3) ‘친노 패권주의’ 진짜 조중동이 만들었나요

(4) 친노패권은 있는데 왜 친박패권은 없나

(5) 정책기사 쓰라고? 쓰고싶어도 못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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