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목요일 오후 1시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사무처장님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원안위에 계신가요? 오늘 허가날 것 같은가요?’ 더 이상 국회의원이 아닌 애기엄마는 하루 종일 발 만 동동 구른다. 발을 구르며 기저귀를 빨고, 발을 구르며 이유식을 먹이고, 발을 구르며 나와 두리의 일상은 변함없이 흘러간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아니 다들 모르시다시피, 같은 날 저녁 7시 반쯤 9명의 원자력안전위원들은 표결을 통해 신고리5․6호기의 건설계획을 허가했다.

7:2. 반대한 두 명의 원안위원은 야당 추천 위원인 김익중 위원(동국대 의대 교수)과 김혜정 위원(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 찬성 위원은 김용환 위원장, 최종배 사무처장, 김광암 위원, 나성호 위원, 정재준 위원, 조성경 위원, 최재붕 위원 이상 7명. 나만이라도 이 이름들을 꼭 기억하리라. 다짐한다.

핵발전에 대해 글을 쓰려하지만 마음이 허둥지둥한다. 지면이 부족하다. 책을 써도 부족하다. 썼다고 누가 읽어 주나?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이제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탈핵운동은 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가? 나는 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는가?

‘신규원전 건설허가’ 이 여덟 글자를 가치중립적으로 읽고 쓰는 세상, 아무런 저항 없이 삼중수소를 호흡하는 전신 마비의 세상, 지난 4년간 그런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한 나. 결국 술 한 방울 안마시고도 만취한 기분이 되었다. 내 딸 두리야 미안해.

19대 국회에 몸담으며 탈핵을 위해 남들이 다 하는 일은 물론 남들이 안하는 일까지 별 짓 다해 봤다. 결론적으로 내가 부족했다. 탈핵 말고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갖가지 일들에 손댔기에 ‘거기(장하나 의원실)는 총리실이냐?’는 비웃음도 샀다. 보좌진들은 개고생을 했고, 고생한 만큼의 성과는 없었다. 장하나하면 떠오르는 대표상품이 없어서 그렇다. 블루스도 하고 트로트도 하고 재즈도 하고 락도 하고 클래식도 하는 뮤지션이 뭐가 되겠나?

▲ 2012년 6월18일 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서소문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집중행동' 기자회견에서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이 고리원전 폐쇄 촉구 발언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제 정신을 가다듬고 딱 두 가지 에피소드를 나누기로 한다. 고리원전과 후쿠시마에 다녀왔던 일, 밀양송전탑 투쟁이야기 그리고 월성1호기 수명연장을 막아보고자 만삭의 몸으로 10시간동안 원안위 회의 방청했던 일 등등은 언젠가로 미루고, 기자들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고 세상에 발을 띠지도 못한(그런 게 한 둘인가 만은) 장하나 의원실발 탈핵 보도자료에 마지막 심폐소생술을 해본다.

“2013년 10월 4일, 한국수력원자력 조석 신임사장, 정부와 원자력업계의 유착관계를 스스로 폭로한 육성 입수!”

사실 이 보도자료는 이번에 두 번째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것이다. 2014년 6월 19일 대정부질문에서 이 사안을 다시 한 번 폭로했고 놀랍게도 세상은 또다시 잠잠했다. 1977년 6월 19일에 내가 태어났고, 한국 최초의 핵발전소인 고리1호기가 핵반응을 시작했다. 지나고나니 괜한 의미부여여였지만 6월 19일 대정부질문은 정말 비장한 마음으로 섰다. 세상을 뒤집고 바꿀 기세와 기대로.

1957년생, 81년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지식경제부 공무원 조석.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이어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지냈고, 2013년 9월부터 지금까지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인 조석. 그가 지식경제부 2차관이던 2012년 1월,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의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서 발언한 녹취록을 입수해서 공개했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1년도 안된 시점에 지식경제부 차관이 원전업계 사람들에게 ‘반핵론자들과 싸우기 힘들다. 정부 혼자 싸우지 않게 해달라’며 거꾸로 호소를 한다. 이런 사람을 한수원 사장으로 앉힌 박근혜 정권. 그래, 백 번 양보해서 조석 사장이 그런 사람인지 몰랐다고 치자, 나의 두 번에 걸친 폭로에도 불구하고 조석 사장을 경질하지 않은 것 자체가 핵발전소 확대의 결연한 의지 표명이다. 이명박 정부의 원전비리, 원전마피아를 척결하겠다고 외친 박근혜 정권, 비리가 없으면 핵 발전이 안전해 지나? 과연 비리가 없어지기는 할까?

 조석 한수원 사장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2012년 1월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의 신년 인사회 축사

  “월성원전 1호기의 수명 연장을 해야 할 것 아니겠느냐. 우리 원자력계에서 일하는 방식이 있지 않으냐. 허가가 나는 걸 기정사실화하고 돈부터 집어넣지 않느냐. 한 7000억원 들어갔는데, 그래 놓고 허가 안 내주면 7000억원 날리니까 큰일 난다. 금년 연말에 안 내주면 실제로 큰일 난다. 관계되는 분들 중에서 연말에 집에 가서 아기 봐야 하는 분들 계실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같은 상황변화와 더불어서 신문 보시면 알겠지만 반핵교수모임, 반핵변호사모임 등 있죠? 야당은 어떻습니까? 지난번에 최고위원 나온 9명 중에서 5명은 반핵, 2명은 탈핵, 2명은 재검토 이런 국면이다. 금년 1년 동안에 이걸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것이 여러분과 저한테 주어진 미션이다. 원자력국장 4년했는데 외롭다는 느낌이었다. 이 반핵론자들 하고 싸움이 붙으면 앞운이 안 보인다. 정부가 완전히 맨몸으로 막고 있는 느낌이다. 제발 좀 부탁드리는데 정부 혼자 싸우게 하지 말아 달라.”


조석 사장의 발언을 폭로했지만 세상은 시큰둥하고 조석 사장은 여태 한수원에서 자리를 잘 보전하고 있고, 신규원전 건설허가도 차질 없이 받고 있고, 나는 같은 건을 삼 세 번 폭로하는 말 그대로 ‘뒤끝작렬’ 중이다. 그 때 이후로 나는 원전마피아가 언론도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신고리5․6호기의 예상 건설비용은 8조6천억, 토건기업이라면 사활을 걸만한 프로젝트 아닌가?

“2014년 7월 30일, 대한민국 원전밀집도 세계 1위”

이 보도자료는 또 왜 묻혔나? 아래 표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요구해서 받은 자료로서 출처는 IAEA다. 신고리5․6호기를 추가하지 않더라도 이미 한국의 원전밀집도는 압도적인 세계 1위다. 핵발전소 더 지어도 문제없다는 사람들이 꼭 언급하는 국가들, 일본․프랑스․미국․러시아도 국토면적 대비 원전밀집도는 아직 한국을 따라잡으려면 멀었다.  

▲ 출처 : IAEA PRIS(Power Reactor Information System). 새정치민주연합 장하나 의원실 제공.

왜 원전밀집도에 주목해야 하는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류 최초의 ‘핵발전소 연쇄폭발’ 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단지에는 총 6기의 핵발전소가 있었고 사고 당시 1~3호기는 가동 중, 4~6호기는 점검 중이었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강도 9.0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정전사태 발생, 1~3호기의 노심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췄고 다음날인 3월 12일에 1호기 수소폭발, 13일에 3호기 수소폭발, 14일에 2․4호기 수소폭발로 이어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피치 못할 자연재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수백 년 수천 년 빈도의 지진을 고려해 핵 발전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면 당신은 완전히 틀렸다. 생존의 기로에서 우리는 핵발전소를 선택하지 않아야만 한다. 여기서 생존은 나의 생존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까지를 말한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반감기는 수 십 만년에 달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 6기 이상의 과밀 단지는 세계적으로 11곳에 불과하다. 캐나다 2, 일본․프랑스․중국․인도․우크라이나 각1, 나머지 4곳은 전부 대한민국에 있다. 즉 한국의 모든 핵발전소는 초대형 과밀 단지에 속해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원전 24기를 짓고도 모자라 40기까지 핵발전소를 늘리겠다는 한국 정부, 지금까지도 그랬고 이후로도 방법은 과밀 단지 뿐이다. 좁은 땅덩어리에 원전밀집도 세계 1위라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우리는 핵발전소를 엎어지면 무릎 닿을 곳에 두고 살아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캐나다는 개별 핵발전소 단위로 해오던 안전 검사를 단지 전체로 확대 시행하고 있지만, 신고리5․6호기 허가에 있어서 원안위는 쟁점이 된 과밀 단지 안전성 평가 문제를 7:2로 묵살한다.

▲ 출처 : 원자력문화재단블로그.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단지에서 반경 30km 이내에 거주하는 주민 20만 명에게 대피령이 떨어졌고, 실제 대피한 인원은 34만 명 이상으로 추산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피폭당한 과거와 후쿠시마 출신이라는 비밀을 간직한 채 어딘가에 섞여 살기도 하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뇌는 그들을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고리 원전단지의 경우 반경 30km 이내 거주인원이 380만 명이다. 고리1호기에서 해운대까지 겨우 20km다. 즉 대피할 수조차 없다. 그 많은 사람이 이동할 수단도 없고, 가 있을 곳도 없다. 사고가 나면 한국 경제도 붕괴한다. 이걸 누구보다 잘 아는 원안위가 신고리5․6호기 건설 허가를 내줬다. 이유는 한 가지 ‘한국에서는 원전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뭔 소리인가?

이 짧은 글을 쓰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좌절도 실망도 참 많았다. 탈핵이야기는 아마 두세 번 더 쓰게 될 것이다. 대만시민들이 거리에 나서서 공정률 98%의 신규원전을 건설 중단시킨 것처럼, 이 글을 읽은 여러분과 언젠가 탈핵집회에서 만나고 싶다. 고리1호기와 같은 날 태어난 나는 언제까지나 ‘탈핵은 내 운명’이라는 최면에 빠져 있고 싶다.

▲ 지난 2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핵없는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 연 신고리5,6호기 건설반대 1000인 선언 기자회견에서 아이가 피켓을 들고 원전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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