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친노는 다들 한 번 모여나 봤으면 좋겠다. 누가 친노인지 나도 궁금하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던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저서 ‘비망록’에 남긴 말이다. 홍 의원은 “친노를 미워하는 이들은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떨 때는 모두 친노고 어떨 때는 다들 친노가 아니라 하니 친노의 기준이 무엇인지가 궁금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7년이 지났지만 친노라는 이름은 여전히 정치권에 맴돌고 있다. 보수진영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친노 패권주의’라는 말을 관용어구처럼 사용한다.

친노패권주의는 실체 없는 조중동 프레임?

친노라 불리는 이들은 친노패권주의 딱지를 매우 억울해한다. ‘친노 패권주의’란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언론이 붙인 이름일 뿐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홍영표 의원은 ‘비망록’에서 “과연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친노들이 종파적 행태를 저질렀는가?”라며 “도대체 언제까지 여당과 보수언론이 짜놓은 친노 프레임에 당하고 있어야할까?”라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여야 정치인, 정치평론가, 기자들은 모두 실체도 없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을 두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는 걸까.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저서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에서 “운동권과 운동권 지지 세력은 보수파의 운동권 비판을 자기정당화의 근거로 삼는다. 보수가 저렇게 비판할 정도면 우리가 옳다는 거 아니냐는 식”이라며 “이들은 보수 언론을 바보로 안다. 보수언론은 늘 ‘진보 죽이기’를 절대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는 식의 발상을 한다”고 지적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5년 9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뒤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강 교수는 “프레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뉴스가치’의 문제다. 시장에서 어떤 뉴스가 더 잘 팔릴까”라며 “이젠 보수 프레임 탓 그만하고, 장사를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싸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서 배를 채우려는 하이에나 근성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친노 패권주의’가 실체 없는 프레임이라기보다 언론이 갈등을 부각시켜 장사하려는 습성 때문에 확산됐다는 뜻이다.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친노패권주의의 시작점은 2012년 총선이다. 2012년 총선은 ‘친노’ 한명숙 대표의 지휘 아래 치러졌다. 친노가 당권을 장악해 자기 입맛에 맞는 공천을 했고, 이런 공천으로 이겼어야 할 선거에서 졌다는 것이 ‘친노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총선 이후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를 두고 이해찬 의원과 박지원 의원 간의 ‘이박 담합’ 논란이 불거졌다. 두 의원이 당 대표, 원내대표를 나눠먹기 했다는 의혹이었다. 선거 결과 이 의원이 비노 김한길 의원을 따돌리면서 모바일 부정 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 담합과 부정 투표 의혹 등으로 비노 진영의 ‘친노 패권주의’ 공세가 본격화됐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논란은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 무슨 친노 패권주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노계 인사들은 친노가 주도한 총선, 대선에서 패배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고 문재인 전 대표와 ‘친노 주류’가 당권까지 장악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친노랑 비슷한 주장을 해? 너도 친노네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가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는 의견이 엇갈리지만 친노든 비노든 친노 패권주의라는 용어가 확산되는 데 언론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언론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 방식으로 ‘친노 패권주의’라는 용어를 확산시켰다.

언론은 정치인이 어떤 주장을 하던 ‘계파’라는 틀을 통해 그 주장을 평가한다. 예컨대 어떤 의원이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비판에 반대하고 “지금은 화합할 때”라는 주장을 해도, 언론은 해당 의원이 그런 주장을 하는 이유를 ‘친노’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홍영표 의원은 ‘비망록’에서 “언론과 비노를 자처하는 당 안팎의 인사들이 ‘문재인은 친노라서 안 된다’며 거친 인사로 비난하는 것을 보자니 무척 못마땅했다”며 “그런 발언이나 기사들에 평소의 방식대로 딴죽을 걸고 다녔더니 어느새 신문기사에 홍영표는 ‘친노 의원’으로 분류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에 참여했던 한 더민주 관계자는 “문재인 대표 체제의 혁신위에 참여하자 언론은 나를 ‘친노’로 분류했다. 그러다 지도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자 어느 새 나는 ‘비노’가 되었다”며 “이후 총선 유세단에 참여하자 다시 ‘친노’가 됐다”고 밝혔다.

‘주장’의 유사성에 따라 계파를 분류하다보니 황당한 경우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친노 강경파’ ‘친노 운동권’이라는 용어다. 언론은 2012년 총선 때 비례대표로 영입한 진보 색채가 강한 의원들을 ‘친노 강경파’ ‘친노 운동권’이라 불렀다. 김광진, 은수미, 진선미, 김용익, 김기식, 장하나 전 의원 등이다. 비례대표는 아니지만 정청래 전 의원도 이 분류에 곧잘 포함된다.

하지만 이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이 없다. 참여정부에서 활동하지도 않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서 정치를 배운 이들도 아니다. 오히려 참여정부보다 왼쪽에서, 참여정부의 보수적 정책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친노’ 지도부가 영입했고 사안에 따라 문재인 전 대표 및 친노 주류와 비슷한 목소리를 낼 때가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상관도 없는데 ‘친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정청래 전 의원은 2015년 2월 문재인 대표의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참배를 ‘유대인의 히틀러 참배’에 빗대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후 문재인 대표에게 비판적이던 주승용 최고위원에게 ‘공갈 사퇴’라는 비판을 했다는 이유로 ‘친노 운동권’으로 분류됐다. 언론의 친노 분류법이 얼마나 자의적인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3월17일자 JTBC 썰전 갈무리

‘더민주=친노 패권주의 정당’이라는 불변의 명제?

을지로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우원식 의원도 때로 ‘친노 강경파’로 분류된다. 지난 5월 원내대표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선두로 올라서자 몇몇 언론은 우원식 의원을 ‘친노·친문(친문재인)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후보’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우상호 의원이 원내대표 경선에서 승리하자 몇몇 언론은 우원식 의원의 패배를 ‘친노에 밀린 손학규’라고 규정했다. 우원식 의원이 유력할 때는 친노가 당권을 장악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우 의원을 친노와 가까운 의원이라 표현했다가 우 의원이 탈락하자 친노가 아닌 ‘손학규계’ ‘김근태계’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인태 더민주 전 의원은 지난달 2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민평련 김근태는 친노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데 그쪽(민평련쪽)까지도 싸그리 친노라고 한다. 조금 진보적인 세력까지 합쳐서 ‘친노패권’이라고 한다”며 “싸잡아 하나로 규정한 뒤, 친노 핵심 일부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해서) 마치 친노패권이 이 당을 망치고 있는 식으로 말하는데, 용어부터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또한 “(기자들하고) 밥 먹을 기회마다 얘기한다. ‘너희 인마 기자라면 용어부터 제대로 써라. 우원식이 무슨 친노냐’고”라고 말했다. ‘더민주=친노패권주의 정당’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이 틀에 정치적 현상이나 정치인들을 끼워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더민주는 친노패권주의 정당’이라는 프레임에 얽매여 권력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더민주의 한 의원은 “친노는 4대문파의 연합체라고 봐야 한다. 당 밖에 있던 친노 성향의 유권자들, 문성근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파, 시민문파가 첫 번째 그룹”이라며 “그 다음이 이해찬 전 총리, 그 다음이 한명숙 전 총리, 그 다음이 문재인 전 대표다. 2012년 총선에서 4개 문파가 한명숙 전 총리를 대표로 밀고 공천을 주도했으며 이 때가 친노의 전성시대”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지금 이해찬, 한명숙, 문성근 모두 당에 없고 문재인 뿐이다. 친노는 사실상 해체됐고 주류의 패권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친노가 아니라 친문이라고 해야 맞다”며 “예컨대 노영민 전 의원을 문재인 전 대표 측근이라는 이유로 언론에서 친노라 부르는데, 노영민 전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근태 의장이 싸울 때 김근태 편에 섰던 인물이다. 친노일 수가 없지만 친문은 맞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한 “현실이 바뀌었는데도 친노-비노 프레임으로만 접근하니 어느 언론에서는 친노로 분류했다 어느 언론에서는 비노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며 “친노 프레임에 집착하니까 현실 설명이 안 된다. 야당이 아직도 노무현 시절의 과거에 얽매여 있다는 듯이 쓰려고 이런 프레임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몇몇 언론은 프레임과 현실이 맞지 않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프레임을 바꾸는 대신 친노의 범주를 무한정 확장하는 방법을 택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등장이 계기가 됐다. 보수언론은 김 대표를 ‘친노 패권주의’에 맞선 투사로 만들었는데, 김 대표가 조중동이 친노라고 찍은 정청래, 이해찬 의원을 진짜 컷오프 해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더민주=친노패권주의 정당’이라는 프레임을 가동할 수 없게 되자 보수언론은 친노의 범주를 확장시킨다.

조선일보는 3월15일 사설에서 “더민주가 운동권당이었던 탓은 밖에서 민노총, 전교조, 민변과 같은 세력들이 당을 에워싸고 꼼짝달싹 못 하게 해온 탓도 있다. 이들 외곽 세력의 생각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더민주가 ‘친노 운동권 정당’인 이유를 급기야 정당 밖에서 찾은 것이다.

▲ 3월15일자 조선일보 사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더민주는) 친노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친노 세력으로 낙인찍혀 심판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노’를 ‘부패세력’ ‘패권세력’과 동의어로 쓰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논리라면 더민주가 아무리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하려 해도 청산할 수가 없다. 설사 친노라 불리는 그룹이 당내에 없다 해도 언론은 당내 갈등이 생길 때마다 ‘또 하나의 친노 패권주의’를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강경파가 아니라 온건파라도, 호남 출신이라도 필요에 따라서는 친노로 분류된다. 우윤근 전 의원이 지난 2014년 10월9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됐다. 그는 흔히 언론이 부르는 친노 주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온건파이자 협상에 능하다는 그가 협상 파트너가 되길 원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이야기가 통하는 야당 원내대표라는 평가도 많았다. 게다가 친노와는 대척점에 있는 호남 의원이었다.

관련 소식을 전하는 10월10일 동아일보 1면 기사 제목은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에 ‘친노’ 우윤근”이다. 우 전 의원을 친노로 규정한 의도는 사설에서 드러났다. 동아일보의 같은 날 사설 제목은 “원내대표까지 친노 뽑아 민심에서 더 멀어진 새정연”이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 비상대책위원회에 당연직 위원이 된다. 범친노인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친노 비대위원인 정세균 인재근 의원, 친노는 아니지만 언제든 친노와 손잡을 수 있는 박지원 비대위원까지 포함하면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친노 일색이다. ‘도로 열린우리당’이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밝혔다. 박지원 의원에게도 ‘언제든 친노와 손잡을 수 있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새정치연합이 친노에 의해 장악당했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이다. 당 대표 경선에서 문재인 전 대표와 맞선 박지원 의원마저 친노로 분류하는데, 우윤근 전 의원을 친노로 분류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 2014년 10월10일 동아일보 사설

이제 ‘친문패권주의’가 등장할 지도 모른다

‘친노 패권주의’ 공세에 대해 “차라리 계파를 만들어라”라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더민주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이범 부원장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기고한 글에서 “(친노란) 노무현 전 대통령 및 참여정부의 노선과 업적에 대한 높은 공감에 기초한 정서적 공동체”라며 “상당한 수준의 소명의식, 도덕적 우월감, 정당성에 대한 확신을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 계파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범 부원장 말에 따르면 친노는 ‘패권주의’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정작 청산하려는 노력은 할 수 없다. 계파라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서공동체를 해산시킬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이범 부원장은 이어 “친노가 ‘계파화’를 추진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본다. 정상적인 계파를 만들어서 정상적으로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지는 그룹이 되어야 한다”며 ‘문재인계’를 만드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범 부원장의 대안은 더민주와 ‘친노주류’가 ‘친노패권주의’라는 언론의 비판에 대응할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애매한 표현의 공세에 당하는 대신 형태와 구성이 명확한 ‘문재인계’를 만들어 공세를 제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이 더 빨랐다. 4.13 총선에서 더민주가 원내제1당을 차지하자 언론은 ‘친노’라는 표현 대신 ‘친노친문’ ‘친문’이라는 표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친문패권’이라는 용어가 어느새 ‘친노패권’을 대체할 지도 모른다.

조짐은 벌써부터 등장했다. 인터넷 매체 시사오늘은 지난 5월31일 “문재인 측근 손혜원 보좌진 합류, '대권 프로젝트' 가동?”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손혜원 더민주 의원은 20대 총선을 거치며 언론에 의해 ‘친노친문’으로 분류된 의원이다.

해당 기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가 최근 같은 당 손혜원 의원 보좌진에 합류했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원외 인사가 된 문 전 대표가 '원내 대권 프로젝트'를 가동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붙었다.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링크하며 “별 게 다 기사가 되는 묘한 동네”라고 밝혔다. ‘별 게 다 기사가 되는’ 현실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 정치기사 바로보기 시리즈

(1) 오보도 특종도 모두 말에서 나오는 ‘사실속의 소설’

(2) 혐오라는 이름의 편향, 정치혐오는 누구의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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