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 이정하씨는 정신병원 관련 산업에 대해 “여관업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병원이 병상수에 따라 국가로부터 수당을 받고 병원끼리 환자들을 사고팔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자 치료를 위해 연간 2조원(전체 재정 중 약 70%)이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보통 1명이 입원하면 월 100만원 가량의 수당이 병원에 지원된다.

정신장애를 진단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거대한 정신질환 산업의 종사자다. 2014년 중앙정신보건지원단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정신과 병상 수가 증가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의 정신병상수는 약 10만여개로 절반은 사립병원이다. 박미선 사무국장은 지난 4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다 돈 문제”라며 “서구에서는 국립병원 비율이 높아서 병상 조절이 가능한데 한국은 그렇지 않아 양심 있는 의사보다는 돈 많이 버는 의사만 남게 된다”고 말했다. 병원은 환자 수를 늘리는 게 최대 목표다. 이권이 걸려있으면 객관적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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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 관련 전문가인 심리학자·정신과 의사·정신병리학자 등은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기준은 객관적이고 시공간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경찰은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 의견을 통해 정신장애인 중 범죄가 의심되는 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겠다고 밝혔다. 언론에는 정신과 의사들의 목소리만 있다.

이훈구 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5월25일 문화일보 칼럼에서 “환자의 정신과 입원은 정신건강의사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며 “정신병에 관한 한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입원 규정이 까다롭지 않다”고 주장했다. 전문가의 권한을 강화해 더 많은 환자를 입원시키자는 주장이다. 조현병 환자를 전수조사하자는 경찰의 발표에 힘을 싣는 주장이다.

정신장애인을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과 의사들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주장도 있다. 권준수 서울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월30일 조선일보 칼럼에서 “정신과 환자들도 양질의 치료를 받으며 살 권리가 있다”며 “환자 치료의 연속성 유지가 범죄 예방의 길이고, 재범 가능성도 줄이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 5월24일자 조선일보 칼럼

지난달 헌법재판소에서는 ‘보호의무자 2인(보호의무자가 1인일 경우는 1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의견이 있으면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정신보건법 제24조 위헌여부를 다투는 공개변론이 있었다. 헌재에서는 병원이 환자의 상태를 보고 진단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진단의 대부분 과정이 매뉴얼처럼 준비돼 있었다. 제청신청인 측 김도희 변호사는 “보통 조울증을 진단하려면 2~3개월은 관찰해야 하는데 10분 보고 진단을 하는 경우가 많고 실태조사를 위해 인터뷰한 것을 보면 강제입원 동안 의사와 대면조차 못했다는 진술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신장애를 판단하는 전문가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먼저 꺼냈다. 경찰은 범죄자로 의심되는 정신질환자를 판단하는 체크리스트를 11월까지 완성하겠다고 했고 현장 경찰관이 의뢰하면 의학적 판단을 거쳐 지자체장이 입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심지어 본인이 거부해도 퇴원을 막을 수 있는 조치까지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황당한 발상에도 전문가들은 경찰을 옹호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4일 문화일보와 인터뷰에서 “경찰이 내린 결론(조현병에 의한 살인)에 설득력이 있음에도 한국 사회에서 지나치게 축적된 남녀 갈등과 뒤섞여 지나친 성별 대결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고 강남역 살인사건을 규정했다.

‘정신의학신문’은 더 노골적이다. 박경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24일 칼럼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은 조현병 환자의 피해망상으로 인한 범죄인데 단순히 여성에 대한 혐오로 인한 문제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다수 언론은 경찰이 내놓은 발표를 포장해 전달했을 뿐 강남역 살인사건을 어떻게 진단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을 모두 전문가들 손에 맡겼다. 이 사건을 통해 경찰과 전문가(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는 더욱 권한을 얻었고, 여성과 정신장애인은 상처를 받았다. 일련의 과정에서 가장 무서운 권력자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면서도 비판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전문가들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장애인의 목소리

반면 언론에서 이번 사건의 피해당사자인 정신장애인의 목소리를 찾기는 어렵다. 조현병이 있는 홍석철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정신장애인을 잡아가두겠다는 경찰의 발표가 무섭다”고 말했다. 홍씨는 정신장애인을 하나의 동일한 집단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그는 “피해망상이 개인마다 다르고, 피해망상이 있다 해도 무조건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닌데도 비장애인들보다 범죄율이 낮은 우리를 범죄자로 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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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낮은 확률이지만 설령 이 사건이 정신장애에 의한 범죄라고 전제하더라도 경찰의 진단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반복성 우울장애가 있는 이귀주씨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제대로 분석해서 발표한 게 아니라고 본다”며 “진단을 내리려면 일주일 이상 걸릴텐데 사건만 일어나면 정신질환 쪽으로 연결하고, 그대로 (언론이) 보도하면 잘못된 편견만 퍼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대사회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는 사회인 것도 원인일 수 있고, 다른 제도적 요인, 여성혐오, 의사 처방이 적절했는지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있는데 마치 정신질환만 문제인 것처럼 판단해선 안 된다”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조현병은 환청, 환시, 망상 등 자신의 내면세계에 빠지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위협을 가할 확률은 비정신장애인보다 낮아진다고 한다. 조현병이 있는 김락우씨는 “증상이 심할 때는 신과 일반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메신저 역할을 하게 돼 삶의 주인공이 돼 버린 것 같았다”며 “인류의 아픔을 내가 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자살이나 범죄를 선택하느냐”고 말했다. 한 예시일 뿐이지만 조현병을 살인사건의 원인으로 보고, 앞으로 예비 범죄자로 보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정신장애인의 절규가 한국사회에 얼마나 유통됐는지, 사건의 규정부터 경찰 발표에 대한 찬반 논쟁까지 얼마나 정신과 의사에게만 의존했는지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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