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에서 낙천 낙선한 여·야 의원들의 방송 출연이 도드라지고 있다. 정치인에겐 정치판 대신 뛰어 놀 새로운 운동장이 생긴다는 점에 더해 짭짤한 부수입원이 생긴다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정치인을 유혹하는 종합편성채널에서는 현 정권과의 거리두기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오후 3시40분 종편인 TV조선에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 김유정 국민의당 전 의원이 진행하는 ‘이것이 정치다’ 1회 방송이 시작됐다. 살짝 긴장한 모습을 보인 정두언 의원은 진행 중에 “작년 추도식 장면은… 본 걸로 하자”며 “죄송하다. 제가 서투르다”고 사과했다.

비교적 날렵하게 방송을 이끌어 갔던 김유정 전 의원도 마지막 멘트에서는 “(첫 방송이라) 매끄럽지도 못하고 부드럽지도 못했다. 양해 바란다. 더 나아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사과하긴 했지만 전문 방송인이 아닌 정치인의 첫 방송 진행은 다행히 큰 사고 없이 1회를 마쳤다.

이날 닐슨코리아가 집계한 시청률은 1.032%였다.

정치인 모시기가 가장 활발한 곳은 TV조선이다. 앞서 새누리당 공천 파동에 반발해 탈당했다가 지난달 복당을 신청한 조해진 무소속 의원은 TV조선 ‘이슈본색’ 프로그램에 4회째 연속 출연하고 있다. 그는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박지훈 변호사 등과 함께 패널로 출연한다.

▲TV조선 '정두언 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 프로그램 티저 광고 화면 갈무리.


조해진 의원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존에도 방송 출연을 많이 했었고 (정치) 현장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익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걸로 방송가에서 봤던 게 아니겠느냐”며 “현직에 있을 때 요청을 많이 받았음에도 시간 제약상 하지 못했던 방송이 많았는데 국회직을 내려놓으면서 여러 면에서 방송 출연이 자유로워 진 거 같다”고 말했다.

종편은 야당 출신 의원 쪽으로도 손을 뻗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새정치연합 시절부터 종편 출연 필요성을 인정해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2008년 종편을 출범시킨 미디어법 날치기처리를 끝내 반대했던 더불어민주당(당시 민주당) 의원들에겐 종편 출연 자체를 금지해왔다.

비박계와 야당 정치인 흡수하는 종편

2013년 대선 패배 후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들어선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선 패배 요인으로 종편 시청층 공략에 소홀했다는 점이 꼽히면서 현실적으로 종편 이용론이 더민주 내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당시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종편 출연 금지’를 해제하면서 더민주 소속의 출연이 자유롭게 됐다.

TV조선은 국민의당 공천에서 고배를 마신 김유정 전 의원에겐 아예 정두언 의원과 프로그램 공동 진행을 맡겼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속속 ‘출연자 카드’로 빼들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두언 의원 김유정 전 의원의 프로그램 속 코너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기로 해 1회에 첫 선을 보였다. 상대 토론자는 지난달 총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맞대결을 펼쳤던 이준석 전 새누리당 후보다.

진성준 의원은 지난 20일 페이스북에서 “선거 패배 직후 TV조선 출연 제의를 받고 주저 없이 응낙했다”며 종편 출연 사실을 알렸다. 그는 이어진 글에서 “보수편향 프레임에 갇혀 놀아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거센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입장을 단 한 줄이라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며 “TV조선이든 채널A든 불러만 주면 사양하지 않고 나가서 저의 입장과 생각을 당당하게 피력하겠다”고 말했다.

▲ TV조선 '엄성섭 정해전의 뉴스를 쏘다' 프로그램 속 신지호 진성준의 신진토론 코너 화면 갈무리.


그는 24일 현재 TV조선에서 매주 월요일 ‘이것이 정치다’, 화요일 ‘장원중의 신통방통’, 수요일 ‘엄성섭·정해전의 뉴스를 쏘다’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다.

하지만 지지층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진성준 의원의 페이스북 해당 게시물 댓글에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는 괴물과도 대화로 해결하는 것”, “힘내시라. 꼭 필요한 일. 많이 나가서 치열하게 싸워 이기면 된다”는 응원과 “녹화 아닌 생방만 나가고 짜여진 프레임에 말려들지 않도록 유의하면 괜찮다”, “혈압 조심 하라”는 걱정과 우려, “악마와 타협하는 것도 개인 선택이겠지만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판적 의견이 공존한다.

JTBC도 6월부터 조해진 의원과 함께 더민주 출신의 재선 의원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론칭할 예정이다. 조해진 의원은 출연을 확정지었다. 패널 토크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원 배지’ 달기에 실패한 정치인의 패자부활전도 종편에서 이뤄진다. 종편 패널 출신으로 새누리당 공천에 도전했던 김태현 변호사는 경선에서 패한 뒤 바로 종편 패널로 돌아왔다. 그는 총선 하루 전날인 4월12일까지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부대변인 직함으로 ‘더민주, 제발 종로 발전에 힘을 쏟아 달라’, ‘김부겸 후보, 재산 관련 의혹을 즉각 소명해야’, ‘백원우 후보는 ’선거법 위반 달인‘에 이르려 하는가’ 등 논평을 냈다.

폴리널리스트 비판을 넘어 생계형, 차기 준비형?

그는 총선 직후 곧바로 종편 채널에 재등판했다. 김태현 변호사는 4월18일 채널A ‘굿모닝A’, 같은 달 24일 채널A ‘일요 뉴스쇼’ 등에 잇따라 출연했다. 그는 ‘굿모닝A’에 출연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미국 연수생 시절 ‘동향보고’ 보도에 대해 평론했다.

기자-정치인-언론사 대표-종편 패널-새누리당 후보 등을 넘나들었던 이상휘 전 새누리당 후보 역시 24일 MBN ‘아침의 창 매일경제’ 프로그램의 신문브리핑에 등장했다. 이번 그의 직함은 위덕대 부총장이었다. 총선 전 직함이다.

18대 국회에서 19대 국회로 진입하지 못했던 정옥임·이윤성·이동관·안형환·장제원·진성호 전 의원도 지난 4년 동안 종편 운동장에서 방송 진행자와 패널로 ‘입담’을 쌓았다. 이들은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에 공천을 신청했다. 하지만 본선 경쟁에 들지도 못하고 탈락했다.

▲ MBN '아침의 창 매일경제' 신문브리핑 코너에 출연한 새누리당 총선 후보 출신의 이상휘 위덕대 부총장. 사진 갈무리.


이들은 비전문적인 논평이라는 지적과 함께 특정 정당의 이해 관계와 비슷한 맥락으로 각 사안을 평론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이들은 ‘국회의원’ 출신이 아닐 경우 ‘변호사’, ‘부총장’ 등 직함으로 불리면서 ‘공정’한 것처럼 방송에 출연해 여론을 만들었다. 이들은 여전히 폴리널리스트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각에서는 정치인의 종편 출연 이유로 ‘생계형’이나 ‘차기 준비형’ 등이 꼽힌다. 종편의 경우 진행자에게 회당 50만~100만원 가량의 보수가 돌아가고 패널 출연은 20만~30만원 가량의 짭짤한 부수입이 생긴다.

조해진 의원은 “종편 진행자가 아닌 이상 일주일에 한두 편 패널로 출연해 생계를 꾸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결국은 생계형이라기보다는 ‘자기 정치’를 위해 출연한다는 것이다.

‘나쁜 종편 솎아내기’ 임무를 수행하던 ‘종편 저격수’에서 러브콜을 받는 입장으로 바뀐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출연 제의를 많이 받고 있다”며 “20대 국회에서는 ‘원외’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고려해서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은 “2012년 대선 패배 요인으로 종편에 출연하지 않았던 점이 꼽히기도 했고 ‘장성민의 시사탱크’ 폐지 등 종편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작용했다”며 “바뀐 상황에 맞게 판단해서 (종편 출연) 순기능이 더 높다고 생각하면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종편이 현직 정치인을 폭넓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 같지만 공통점은 주로 비박계와 야당 출신이라는 점이다. 비박계는 새누리당 내에서당 내부를 향해 ‘총질 한다’고 비난받았고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들었다.

TV조선의 친박 거리두기 신호탄?

새누리당 출신의 정두언 의원을 비롯해 조해진 의원 역시 비박계다. 낙천·낙선했지만 김태현 전 후보는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인재영입 1호 케이스로 정치권에 발을 디뎠고 이상휘 부총장은 대표적인 친MB계 인물이다.

종편은 기존 정치인 패널 뿐 아니라 야당 후보 쪽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다수 종편, 특히 TV조선이 비박계와 야당 출신 의원을 다수 흡수하는 것은 총선 후 국면 전환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두언-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에서 ‘정두언의 일갈’에서 정두언 의원은 ‘용서’를 화두로 꺼내들고 “지금 우리 정치는 좌우, 계파간 적개심이 가득한 지옥이라 사회가 편할 리 있겠냐”며 “노무현 대통령도 ‘누구라도 용서하라’고 했다. 황금보다 더 소중한 지금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자기 정치’를 한 이유로 당에서 내쳐진 비박계에 대한 친박의 용서와 친박 패권에 대한 비박계의 용서에 두루 적용할 수 있어 미묘한 뜻을 남겼다.

이날 정치 현장을 직접 찾아가는 ‘강상구의 현장’ 코너 첫 아이템은 ‘총선 참패 비난을 피해 해외에 머물다 온 최경환 의원이었다. 강상구 기자는 최경환 의원 집 앞에서 2시간을 기다린 후 비박계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 “비겁하게 뒤에 숨는 행동”이라는 비판을 전했다. 

▲ TV조선 '이슈본색' 프로그램에 출연한 비박계 조해진 무소속 의원. 사진 갈무리.


TV조선과 마찬가지로 조선일보는 16일 사설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이원종 전 충북도지사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대권론을 연결지으며 “‘여권발 반기문 대망론’은 순진한 생각”, “청와대가 차기 대권 문제에 개입해 성공한 사례 없다”며 친박과 청와대를 비판했다.

이어 양상훈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19일 기명 칼럼에서 친박과 청와대를 “자폐증 걸린 좀비”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이 공히 청와대·친박 선긋기 혹은 중도 진영 확장 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다수 종편에서 ‘종편 솎아내기’를 주장했던 최민희 의원의 TV조선 출연이 종편의 변화 환경을 가늠하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방송계를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안티 조선’ 운동을 했던 최민희 의원에게 만약 TV조선이 출연 요청을 하는 것도 파격이고 최민희 의원이 이를 받아들여 출연하는 것도 파격”이라며 “꼼꼼한 최민희 의원이 TV조선에 출연하겠다고 하면 그건 종편도 뭔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실제 TV조선 측에서 최민희 의원에게 출연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민희 의원은 다수 종편에서 출연 제의를 받았다며 “‘나는 쉽게 타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입맛에 안 맞는다고 중도하차 시킬거냐’는 질문을 한 적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출연을 확정지은 곳은 없고 동료 의원과 논의 후에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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