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친노(친노무현)는 ‘폐족’이라 불렸다. 폐족에게 ‘패권주의’라는 수식어가 붙는 데는 채 7년이 걸리지 않았다. 패권에 당하던 친노는 패권을 부릴 힘도 없는 폐족에서, 보수언론은 물론 당내에서도 패권주의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처지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던 안희정 참여정부포럼 상임위원장은 2007년 3월26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친노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廢族)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상황을 표현한 단어였다. 야당 대선후보들은 하나같이 노무현 정부와 거리두기를 했다.

폐족의 처지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으며 절정에 달한다. 보수언론은 물론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언론까지 “노무현을 버리자”고 말하던 시기였다.

2009년 5월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의 강압 수사에 죽음을 선택했다. 전국적으로 추모 열기가 일어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여론이 급등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폐족이던 친노는 가까스로 정치적인 공멸을 피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약 1년만에 치러진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친노는 폐족 딱지를 완전히 떼어버렸다. “친노는 폐족”이라던 안희정은 “이번 선거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권이며 위로”라는 말을 남기며 충남도지사가 됐다. 원조 친노라 불리는 이광재 강원지사, 김두관 경남지사도 등장했다. 선거에서 패배하긴 했지만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도 두각을 드러냈다.

2012년은 친노에게 또 다른 운명의 해였다. 4월 총선은 친노 한명숙 대표의 지휘 아래 치러졌다. ‘친노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친노가 당권을 장악하며 공천을 했고, 이런 공천으로 이겼어야 할 선거에서 졌다는 것이 ‘친노 패권주의론자’들의 주장이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친노 패권주의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논란은 2012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에 무슨 친노 패권주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총선 이후 원내대표, 당 대표 선거를 두고는 이해찬 의원과 박지원 의원 간의 ‘이박 담합’ 논란이 불거졌다. 두 의원이 당대표, 원내대표를 나눠먹기 했다는 의혹이었다. 선거 결과 이 의원이 비노 김한길 의원을 따돌리면서 모바일 부정 투표 의혹까지 제기됐다. 담합과 부정 투표 의혹 등 비노 진영의 ‘친노 패권주의’ 공세가 본격화됐다.

▲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7주기인 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추모의 집'에 노란 꽃으로 수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친노’의 실체가 있느냐는 지적은 항상 제기됐다. 3김이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측근을 ‘친김’ ‘친박’이라 부르진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성 앞에 ‘친’을 붙인 세력을 만들어낸 최초의 대중 정치인이었다. 이유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정치권 내의 세력이나 계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노무현을 돕는 사람들, 노무현과 친한 사람들 정도로 노무현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1년~2002년 노무현 열풍이 불 당시 친노는 ‘노무현에게는 세력이 없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다. 민주당 주류는 당내 경선을 거친 후보에게 후보직 사퇴를 거듭 요구했다. 요즘 말로 하면 노무현 후보와 친노는 당내 ‘주류 패권주의’의 피해자였다.

패권주의와 가장 안 어울리던 ‘친노’라는 단어는 그로부터 10여년 뒤 ‘패권주의’라는 단어와 결합한다. 친노라는 애매한 범주의 표현은 ‘허수아비 때리기’에 활용됐다. 단어의 결합을 넘어 언론이 ‘친노’를 ‘패권주의’와 동일어로 사용하면서 ‘친노’의 범위는 끝도 없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패권주의’ 외에 친노와 함께 쓰이는 단어는 ‘486(혹은 86그룹)’, ‘강경파’ ‘운동권’ 등이 있다. ‘친노 종북’이라는 말도 있다. ‘노무현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중립적인 단어에 강경파, 운동권, 종북 등 온갖 부정적 발언이 붙었다. 언론은 김현 더민주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기사 폭행에 연루된 사건을 보도할 때도 ‘친노486’이라는 표현을 쓰고, 정청래, 유인태 의원 등 친노라 부를 수 없는 이들은 ‘친노 강경파’라고 부른다.  

더민주의 한 당직자는 “물론 친노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이긴 하지만 친노라고 곧 운동권이거나 친노라고 곧 강경파는 아니고, 또 친노라고 386 또는  486 운동권이 아닌데도, 어느 새 동의어가 되어버렸다”고 지적했다.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가 등장하면서 ‘친노’의 범주는 끝도 없이 확장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김 대표를 ‘친노 패권주의’에 맞선 투사로 만들었는데, 김 대표가 조중동이 친노라고 찍었던 정청래, 이해찬 의원 등을 컷오프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친노 패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보수언론은 친노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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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는 3월15일 사설에서 “더민주가 운동권당이었던 탓은 밖에서 민노총, 전교조, 민변과 같은 세력들이 당을 에워싸고 꼼짝달싹 못 하게 해온 탓도 있다. 이들 외곽 세력의 생각과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조짐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더민주가 친노 운동권 정당인 이유를 급기야 정당 밖에서 찾는다.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더민주는) 친노의 몰락을 반면교사 삼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천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또 다른 친노 세력으로 낙인찍혀 심판 당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노’를 ‘부패세력’ ‘패권세력’과 동의어로 쓰고 있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2015년 9월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는 모습 뒤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고 있다. ⓒ포커스뉴스

급기야 친박이 잘못을 해도 그 잣대는 ‘친노 패권주의’다. 세계일보는 4월27일 사설에서 총선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는 친박에 대해 “2004년 총선 압승으로 기세등등해진 친노는 민심 역주행으로 일관했다. 무능하고 일방적인 국정운영과 패권주의가 판쳤다”며 “재보선 연전연패와 2006년 지방선거 참패에도 정신 못 차리다 정권까지 내준 뒤 폐족을 선언했다. 친박이 친노를 반면교사로 삼지 않는다면 앞날은 뻔하다”고 경고했다.

5월17일 친박은 조직적으로 새누리당의 상임전국위원회에 불참해 혁신위 구성을 무산시켰다. 동아일보는 다음날 사설에서 “이런 새누리당의 모습은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 하고도 패배의 의미조차 모르던 열린우리당과 너무나 흡사하다. 당이야 어찌 되든 당권만 잡으면 된다는 친박 패권주의는 오만과 독선에 빠졌던 친노 패권주의와 오십보백보”라고 비판했다.

친노가 부정적인 단어와 결합하는 상황에서 친노로 분류된 이들의 태도도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 가지는 ‘나 친노 아닌데’이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 측은 총선을 앞두고 어떤 기사에서 자신이 ‘친노 86그룹’으로 분류되자 해당 기사를 쓴 언론에 전화를 걸어 수정을 요청했다. “86그룹은 맞지만 친노는 아니다”는 것이 이유였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나 친노 맞다. 그런데 어쩌라고’이다. 413 총선에서 노원병에 출마한 황창화 더민주 후보는 3월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황창화는 운동권이고, 이해찬 총리의 정무비서관이고, 한명숙 총리의 정무수석이고, 그리고 친노다”라며 “이것이 저의 삶이고, 저의 긍지이고, 자부심”이라고 밝혔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현재 친노로 분류된 사람들 다수가 ‘친문’이라 볼 수 있다. 문재인과 친한 사람들, 친문은 있다”며 “그런데도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도 없는 사람들까지 친노라 부르는 것은 친노가 가진 부정적 인식을 활용하려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2017년 대선은 ‘친노’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되는 또 한 번의 순간이다. 친노의 적자라 할 수 있는 문재인 전 대표가 가장 유력한 야권의 대권 후보다. 한편에는 ‘친노 패권주의’ 때문에 당을 떠났다고 주장하는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이 있다.

손혜원 더민주 당선인은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사람들이 ‘친노’라고 부르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는 아마 ‘메인 스트림’(main stream) 인 것 같다”며 “이제 정치권 사람들은 ‘친노’라 읽고 ‘대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친노는 폐족에서 주류로 부활했고 2012년 총선, 대선을 거치면서 친노는 패권주의와 동일어가 됐다. 2017년, 노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에 친노의 수식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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