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더민주, 조기전대 VS 전대연기론 ‘팽팽’… 김종인 체제 운명?”
“김종인 체제 기로에… 전대 결판 초읽기”
“더민주 ‘전대 연기론’ 힘 잃나… 거세지는 ‘김종인 흔들기’”
“더민주, 전대 연기론 반대 많아… 김종인 흔들기 본격화”

5월3일 더불어민주당의 20대 국회 당선자-당무위원 연석회의를 앞두고 쏟아진 정치 기사 제목들이다. 연석회의를 계기로 더민주의 내부 갈등이 폭발할 것이라는 전망의 기사들이다. 언론 보도만 보면 더민주가 전당대회를 연기하고 김종인 대표 체제를 유지하자는 쪽과 전당대회를 빨리 열어 체제를 전환하자는 쪽으로 나뉘어 일대격전을 벌일 기세였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곧 무색해졌다. 연석회의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끝났고 당선자들과 당무위원들은 만장일치로 8월 말 9월 초에 전당대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친노-비노 계파갈등으로 몰고 가던 언론은 머쓱해졌다.

정치권에는 이런 실체를 찾기 힘든 갈등이 많다. 총선 직후 언론에는 김종인 대표 합의추대론 및 전당대회 연기론에 대한 공방, 이를 둘러싼 계파갈등과 관련된 기사들이 쏟아졌다. 김종인 대표는 3일 “당 대표에 대해 추호도 관심이 없다. 그런 사람을 놓고 추대니 경선이니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한다”며 “최소한 인격과 예의는 갖춰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김 대표의 발언은 당내 반대파를 향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 말을 들어야 할 이들은 언론이었다.

1단계, 워딩을 구하라

정치 기사의 중심에는 말, 즉 ‘워딩’이 있다. 뉴스 소비자가 접하는 정치 기사의 대부분은 워딩으로 구성돼 있다. 김종인 대표가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A라고 말했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B라고 말했다는 내용이 정치 기사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대다수 정치부 기자들이 하는 일도 이런 주요 정치인들의 말, ‘워딩’을 구하는 일이다. 기자들은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의 당 대표· 원내대표 회의실, 의원총회가 열리는 국회 예결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취재 대상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뻗치기’를 한다. 김종인 대표가 칩거에 들어가면 김 대표의 자택 앞에서, 김무성 대표가 부산 영도로 내려가면 영도로 내려가 ‘뻗치기’를 한다. 기자들은 ‘풀단’을 구성해 정치인의 워딩을 공유하고 자신이 가지 못한 현장에 있던 다른 기자들에게 워딩을 달라고 부탁한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4월8일 오전 김홍걸 광주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광주 북구 민족민주열사묘역 참배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따라서 일 잘하는 정치부 기자란 남들은 듣지 못하는 정치인의 워딩을 구해오는 기자를 뜻한다. 김무성 대표와 친해져서 김 대표가 다른 기자에게 말하지 않는 말을 혼자 듣거나 날카로운 질문으로 안철수 대표의 입에서 평소에 잘 하지 않던 단호하고 명료한 답변을 끌어내는 기자가 유능한 정치부 기자로 불린다.

국정감사 때 의원실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분석한 기사, 정치인의 스캔들을 파헤친 기사가 아니면 대부분 ‘단독’이나 ‘특종’이 붙은 정치 기사는 “중요 정치인이 ○○일보와 인터뷰에서 ~라고 말했다”는 식의 기사다. 언론의 이런 성격을 잘 아는 노련한 정치인들은 언론을 자신의 스피커로 활용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3일 국민의당 초선 당선자 워크숍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자 전화를 잘 받으세요. 기자들은 줄기차게 물어봅니다. 짜증이 납니다. 똑같은 사안을 여러 사람이 물어요. 왜 묻느냐, 답변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 물어요. 여기에 걸려들면 우리당 손해에요.

그의 말대로 기자들은 똑같은 사안을 계속 묻는다. 누가 묻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고 이 사소한 답변 차이가 나만 얻을 수 있는, 기사화할 수 있는 워딩이 되기 때문이다.

기사 속 팩트, 누구의 워딩인가

기자들은 워딩을 통해 단독을 얻지만, 때론 누군가의 말을 듣고 쓴 기사가 오보가 될 때도 있다. 대개 ‘관계자’들이 등장하는 기사가 오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 1월30일 CBS 노컷뉴스는 “정동영 전 의원 측이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는 조건으로 전주덕진 전략공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동영 의원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반발했다. 기사 안에 정 의원 측 반론이 추가됐고  ‘정 전 장관’이 전략공천을 요구했다는 대목은 ‘정 전 장관 측’의 요구로 수정됐지만 정동영 의원 측은 해당 보도에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고 결국 기사는 삭제됐다. 오보임을 인정한 셈이다. 정 의원 측 대변인 격인 임종인 전 의원에 따르면 CBS 노컷뉴스는 이 보도의 취재원을 ‘신뢰할 수 있는 더민주 복수의 관계자들’이라고 해명했다.

관련 기사 : “정동영, 복당조건으로 공천 요구” 노컷뉴스 기사 삭제

1월6일자 중앙일보 기사도 오보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기사는 안철수 의원이 1월4일 새해 인사를 위해 이희호 여사와 동교동 자택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여사와 안 의원이 20분 간 독대를 했는데, 이 자리에서 이 여사가 안 의원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희호 여사의 3남 김홍걸씨가 “사실과 다른 보도 내용에 대해 어머님께서는 어이가 없어 하셨다”고 반박했다.

중앙일보는 안 의원 측 핵심 관계자의 말을 빌려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게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여사가 했다는 말, “이번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뭔가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 “올해 총선에서도 많은 숫자(의석)를 가져가야 하는데” 등은 모두 안 의원 측 관계자의 워딩이었다.

관련 기사 : 이희호가 안철수 낙점? 오보 논란 진실은…

“A가 B라고 말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하지만 A가 누구냐에 따라 기사는 거짓, 왜곡된 현실을 전할 수도 있다. 정동영 의원과 정치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더민주 관계자들이 전하는 정동영 의원에 관한 정보에는 정치적 의도가 담겼을 수도 있다. 정동영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해당 보도는) 어딘가에서 기획된 것이고 CBS를 이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1월6일자 중앙일보 8면

안철수 의원이 이희호 여사를 방문한 때는 안 의원이 탈당 후 세력을 규합하던 시기였다. 호남을 상징하는 이 여사가 안철수 의원을 지지한다는 건 안 의원 입장에서 매우 좋은 일이다. 안철수 의원 측 입장에서는 이 여사가 안 의원을 지지한다는 ‘쐐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 정치부 기자는 “정치 기사에서 오보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정치인들 말만 쫓아가기 때문”이라며 “정치인이 지금 서 있는 위치, 발을 보고 움직여야 오보가 안 나오는데 이해관계가 첨예한 정치인들의 말만 따라가다 보면 오보를 내기 쉽다”고 지적했다.

2단계, 이제 해석하라

정치인이나 정치세력 뿐 아니라 언론 자신도 의도를 가지고 워딩을 마사지한다.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을 앞둔 5월2일 경선에 출마한 이상민 의원이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의원은 ‘친문’(친문재인)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조직적인 묻지마 몰표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두고 뉴시스 등 몇몇 언론은 이 의원이 “친노·친문 진영의 특정 후보 지원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친문의 등장’이라는 계파 정치의 관점에서 더민주 원내대표 경선을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민 의원은 해당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표와 가까운 홍영표 의원이 출마를 포기한 뜻도 당이 계파주의에 젖어 있어서는 안 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이 많이 하고 싶지만 양보하겠다 이런 큰 뜻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 의원의 말은 맥락상 계파정치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 가깝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원내대표 경선을 ‘친노친문 vs 반노반문’의 구도로 보는 건 과거식 프레임”이라고 지적했다.

기사의 제목도 언론이 워딩을 해석하는 주요한 방법이다. 4월18일 연합뉴스에는 “안철수 “세월호특별법 시급하지만 민생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제목만 보면 안철수 대표가 세월호특별법을 제쳐두고 민생문제부터 해결하자고 말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기사 본문을 보면 안 대표는 “민생문제가 우선이고 세월호 특별법도 시급한 문제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세월호특별법, 민생문제 둘 다 중요하다는 취지다. 이런 기사 제목은 ‘국민의당은 세월호특별법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기자들 자신도 이런 해석이 때론 ‘소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3월8일 김한길 국민의당 의원이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야권통합을 두고 김 의원과 안철수 대표가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온 언론의 이목이 김 의원에게 집중된 시기였다.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김 의원은 “뜨거운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한 기자는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난 뒤 “하다못해 언제 토론을 제안할 거라는 식의 말이라도 해야 기사를 쓸 것 아닌가. 소설 써야겠네, 관심법 동원해서”라고 말했다. 이 기자의 말처럼 김 의원의 기자간담회 이후 김 의원이 안철수 대표와 다시 한 번 대립각을 세웠다고 해석한 기사와 한 발 양보한 것이라고 해석한 기사가 함께 등장했다.

3단계, 논쟁을 생중계하라

기자들은 정치인이 쏟아낸 말이나 자신들이 해석한 말을 다른 정치인에게 묻는다. 정동영 의원이 SNS에 김종인 대표가 들어온 이후 더민주가 우경화됐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리면, 기자들은 시장에 방문한 김 대표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김 대표는 “심심하니까 글 한 번 쓰는 것이겠지”라고 받아친다.

국민의당은 “예의를 지키라”며 논평을 낸다. 마침 예정된 김종인 대표와 기자들과 오찬 자리, 기자들은 김 대표에게 “예의를 지키라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김 대표는 “예의는 무슨 놈의 예의”라며 받아친다. 이 발언 하나 하나가 모두 기사화된다. 정쟁 기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대변인 발’ 정쟁기사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당 대표나 중진 의원들의 발언 하나하나도 정쟁 기사가 된다”며 “언론이 정치인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니며 질문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언론은 “당 대표에 관심없다”던 김종인 대표를 두고 합의추대, 전당대회 연기를 거론하며 당내 갈등을 부각시켰다. 이런 기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김종인 대표가 서울신문 등과 인터뷰하며 문재인 전 대표가 대선까지 당을 이끌어달라고 했다고 말한다. 워딩이 나왔다.

그러면 언론은 이 워딩을 토대로 김 대표가 ‘추대론’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석’한다. 심지어 김 대표가 원내대표 경선 직후인 5월5일부터 9일까지 휴가를 가기로 한 것도 ‘여차하면 당을 떠날 수 있다는 압박’이라고 해석한다.

▲새누리당 공천 여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 유승민 의원(대구 동을)의 행보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3월17일 오후 대구시 동구 용계동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대구 동구을) 자택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놓여있다. ⓒ연합뉴스

나아가 언론은 여러 의원들과 인터뷰하며 추대론에 대한 입장을 묻는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북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정청래 의원)이라거나 “민주적인 정당에서 가능한 일일지 상당히 의문”(정성호 당선자)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함부로 얘기할 때가 아니다”(김부겸 당선자)와 같은 반대론이 형성된다. “합의 추대라는 것도 완전히 버릴 카드는 아니다”는 이종걸 원내대표의 말도 나온다. 어느 새 김종인 추대론은 찬반이 갈리는 쟁점이 된다.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내가 합의추대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일각에서는” 기사의 숨겨진 주어는 언론

이처럼 언론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서 현실을 구성한다. 김종인 대표가 합의추대를 말한 적이 없어도 언론이 “합의추대론을 두고 공방이 있다”고 말하면 더민주는 회의를 열어 합의추대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한다.

정치 기사를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식의 표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계파 갈등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은 어디이고, 그런 우려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계파갈등의 조짐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누가 가능하다고 말한 걸까. 주어 없는 해석과 평가, 우려, 전망의 숨겨진 주어는 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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