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안 깨진다.’ 기자와 여론 분석가들이 ‘상수’로 갖고 있던 전제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보수는 깨졌다. 한겨레21에 따르면 서울 지역구 49곳 선거결과 분석결과 새누리당은 총선 이전 4개 전국선거에서 얻은 서울 지역 평균득표율(46.2%)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7.5% 떨어진 38.7% 득표에 그쳤다. 새누리당 후보들이 잃은 손실은 예상보다 컸다. 이 같은 결과에 종합편성채널이 일정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한 여론 전문가는 “보수편향 언론은 보수 정치 엘리트에게 안이한 정세인식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 종편 출범을 계기로 보수의 확장기가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종편은 보수를 합리적보수와 꼴 보수로 갈라놓았다”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종합편성채널과 지상파3사는 시청자의 급격한 보수화를 주도했다. 종편은 보수의 강도를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60대 이상 고령층으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 같은 보도태도는 역설적으로 보수의 확장을 가로막았다. 보수 유권자 내에서도 지나친 보수로의 회귀에 반감을 갖는 이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는 보수의 분열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보수의 정권심판여론이 보수편향 언론에 가려지며 정부여당이 선거 막판까지 안이하게 대처했다는 설명이다. 보수정부 집권연장의 꿈을 안고 탄생한 종편이 ‘정부여당의 X맨’이 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 채널A 시사보도프로그램의 한 장면.
이런 가운데 정부 하반기로 오면서 정권심판론이 강해진 대중의 기류와 주류언론의 인식 간 괴리감은 강해졌다. 지난해 다보스포럼이 내놓은 국가경쟁력 지수에 따르면 참여정부와 이명박-박근혜정부는 급격한 격차를 보였다. 보수진영 의제인 ‘재산권 보호’ 평가지표에서 한국은 2007년 22위였으나 2014년 66위로 떨어졌다. ‘사법부 독립’ 평가지표는 2007년 35위였으나 지난해 82위로 역대 최저순위를 기록했다.

‘부패’ 지표 또한 2007년 26위에서 2014년 67위로 나빠졌다. ‘낭비’ 순위도 2012년 107위로 2007년 22위에 비해 다섯 배가량 추락했다. ‘교육체계의 질’도 2007년 19위에서 2014년 73위로 떨어졌다. 국민들이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거치며 ‘보수의 무능함’을 체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이 적극적으로 보도한 대통령의 ‘야당탓’, ‘국회탓’ 프레임은 오히려 선거에 역효과를 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TV조선 1월29일 보도화면 갈무리.
사회의제를 축소하는 지상파3사와 달리, 의제를 적극보도하며 의도와 상관없이 여당에 불리한 상황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새누리당 공천파동이 계속되는 동안, 종편들은 그 과정을 현장중계를 방불케 할 정도로 대대적으로 다루었다. 그만큼 시청률 오르는 아이템이 어디 있었겠는가. 패널들도 여야 성향 구분 없이 청와대·친박의 막장 공천을 한 목소리로 내내 비난하고 있었다. 그들(새누리당 지지층)이 등 돌린 데는 종편의 영향이 제법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종편이 더민주를 중점적으로 비판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안철수를 좋게 평가해 국민의당 지지를 끌어올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소야대 국면을 맞아, 종편 내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경우 종편은 황금채널이란 ‘특혜’를 빼앗길 수도 있다. 이 경우 시청률은 곤두박질하고 채널은 생존 위기에 직면한다. 현 정부여당 입장을 마냥 대변하다가는 대선 결과에 따라 채널이 존폐의 위기에 놓일 수 있어 종편으로선 박 대통령의 레임덕 시기에 맞춰 절묘한 논조 변화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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