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에서 야권은 승리하면서도 패배했다. 단순히 원내 제1당 자리를 차지했음에도 호남에서는 패배했다는 뜻이 아니다. 야권 지지층 대부분이 질 거라고 예측한 선거에서 유권자의 선택으로 이겨버렸기 때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한 승리가 됐다는 뜻이다.

더민주 의원들의 정책의견모임인 ‘더좋은 미래’와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의 주최로 21일 오전 열린 ‘4.13 총선 평가와 전망, 확인된 민심 남겨진 과제’ 토론회는 야권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야권 승리의 원인을 분석하는 자리였다.

정한울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 교수는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첫째는 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분석하느라 여당 지지층의 균열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진보성향 언론은 주로 야당 지지층을 가지고 분석한다. 고정된 야당 지지층 중에 더민주가 더 많이 가져가는지 국민의당이 많이 가져가는지가 분석 대상”이라며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층은 고정화되어 있다고 가정한다. 이번 선거의 두드러진 특징은 보수층의 변화였는데도 새누리당 지지층 변화에 둔감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 출처 : 정한울, KO여론리뷰 제2016-06호(4월 8일자)
정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2월 21일~22일, 3월 29일~30일, 4월 5일~6일 세 차례에 걸쳐 실시한 세대별 새누리당 지지율을 보면 50대와 60대의 새누리당 지지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의 새누리당 지지율도 계속 감소했다. 같은 맥락에서 세대별, 지역별 ‘정권심판론’ 호응도 조사에서도 50대와 60대, PK와 TK 지역의 정권심판론 호응도가 점점 상승했다.


정 교수는 두 번째 요인으로 ‘단일화 필수론’의 함정을 제시한다. 이번 선거에서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이 야권 패배를 이야기한 이유는 수도권에서 1여다야 구도가 짜여졌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우리는 1여다야 구도를 뭉뚱그려 생각하지만, 1여다야 구도에도 유형이 두 가지 있다”고 설명한다.

A유형은 강한 여당 후보가 존재하고 서로 비등비등한 야당 후보가 두 명 존재하는 경우다. 두 명의 야당 후보가 합치면 여당 후보랑 비슷해진다. 정 교수는 “여당이 높고 야당 둘이 당선권 안 되는 경우로 수도권에는 이런 지역이 거의 없었는데, 서울중구‧성동구을이 그런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B유형은 세 당이 경쟁하지만 사실상 1여 1야 구도이고, 나머지 1야는 당선권에서 벗어난 경우다.

정 교수는 “A형 같은 완전경쟁형 구조에서는 야당 지지층이 새누리당을 혼내주고 싶어도 두 야당 후보가 경쟁력이 없을뿐더러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이 된다. 이런 야권분열 구도에서는 단일화가 중요하고 필수적 전략”이라며 “반면 B형 같은 불완전경쟁형 구조에서는 유권자가 다른 선호구조를 가지고 투표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1여다야는 대부분 B유형이었다. 사실상 1대 1 구도였고 단일화를 하건 안 하건 유권자가 별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단일화에 집중하면 오히려 분열이 부각되면서 마이너스 요소가 된다. 아마 야당이 단일화를 계속 추진했으면 이런 결과(야권 승리)가 안 나왔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요인은 젊은 층의 투표참여다. 아직 공식통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출구조사 등에 따르면 2012년에 비해 19~29세 투표율은 13.2%p, 30~39세 투표율은 6.2%p 상승했다. 반면 40대와 50대의 투표율은 감소했고 60세 이상의 투표율은 0.7p%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정 교수는 “유권자는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길 바라는 데도 정당은 아무것도 못 보여주고 여여싸움 야야싸움 밖에 못 보여줬던 선거다. (투표하러) 나가지 말아야할 요인이 더 많은 혐오스러운 선거였는데도 자발적으로 나가는 힘이 나왔다”며 “진짜 2030 세대의 취업 문제 때문인지, 이 점을 파악하는 점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2030 세대의 투표 참여가 늘어난 원인으로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전투표라는 제도의 변화를 꼽았다. 이 교수는 “특히 20대 남성들의 사전투표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전반적으로 젊은 층이 투표에 활발히 참여하는데 영향을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미래연구소와 더좋은미래 모임 공동주최로 열린 4·13 총선 평가와 전망 확인된 민심, 남겨진 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이철희(오른쪽 두번째부터)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우상호, 남인순, 변재일 의원이 토론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포커스뉴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서울 중랑을)는 ‘앵그리보터(angry voter)’를 원인으로 꼽았다. 박 당선자는 “2030 앵그리보터들이 야권에 표심을 몰아준 것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유의미하게 드러난 점이라 본다”며 “따라서 이후에 야권이 민생 문제와 관련된 해결책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과제로 남았다. 청년들의 분노에도 변화된 정책과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다음 심판은 야권 그 대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야권분열에도 야권이 승리한 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교차투표다. 수도권의 야당 지지층이 지역구에서는 더민주에, 비례대표 투표로는 국민의당을 찍으면서 표의 분산을 자체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선은 1인 2표가 아니라 이러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준한 교수는 “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선거와 다르다. 총선은 1인 2표이기에 분할투표가 가능했고 따라서 야권이 분열했더라도 이런 선거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며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홍근 당선자는 “지금 더민주와 국민의당 지지율이 동반상승하지만 대선이 다가올수록 이는 선택의 문제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며 “결국 야권통합은 추진을 안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당 대 당 통합이건 결선투표건 여러 가지를 가지고 접근해서 정책입법 공조를 시작해 상호신뢰 쌓으면서 국민의 지지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의미에서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더민주나 더민주 중심의 지식인들이 국민의당을 호남 자민련으로 몰고 가는 건 위험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8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시장을 방문해 시민들과 악수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김 교수는 “객관적으로도 호남 자민련이 아니다. 국민의당은 정당득표에서 전국의 지지를 얻었을 뿐더러 호남지지층이 국민의당과 일체감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더민주와 국민의당 간 경쟁 속에서 호남이 더민주를 심판한 부분도 있고 전략적으로 투표한 측면도 있다. 국민의당은 아직 ‘호남 자민련’이지도 못한 상황인데, 자꾸 국민의당을 자민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야권의 협력과 경쟁을 고려했을 때 대단히 좋지 못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토론회에 참가한 권미혁 더민주 당선자(비례) 역시 “유세를 다니면서 만난 호남 분들이 ‘호남은 그동안 항상 전략투표를 해왔는데 오죽하면 국민의당을 찍겠다는 생각을 하겠나. 이에 대한 아무런 배려가 없으면서 (호남의 국민의당 지지를) 호남 자민련이라 하는 건 모독’이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결국 야권이 2017년 대선 국면에서 지리멸렬한 분열 양상을 보인다면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민심이 한 번에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한울 교수는 “단일화 국면이 마이너스가 되는 게 아니라 야권 후보들이 같이 성장해서 ‘누가 해도 잘할 것 같은데, 누구 찍지?’라는 고민이 들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준한 교수 역시 “대선국면에서 새누리당이 정상화되는 과정을 겪는다면 동시에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대표에 대한 대선주자로서의 피로감이 부각될 것”이라며 “이런 점이 올 하반기부터 대두될 가능성이 있다. 새로운 리더십과 공약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야권의 경쟁은 포지티브 게임이 될 수 없고, 2017년 선거에서도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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