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 총선거 일주일 전 ‘실제보다 여당이 높게 보이는 여론조사의 비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현재 여론조사가 보수적인 유권자의 의견을 과잉 대표한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쓰고 한 여론조사전문기관 대표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4·13 총선만 놓고 보면 불신을 조장한 측은 여론조사기관이 됐다. 총선 사흘 전인 4월 1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은 새누리당 157석~175석, 더불어민주당 83석~100석, 국민의당 25석~32석, 정의당 3석~8석 등의 예측 결과를 내놨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새누리당은 122석(지역구 105, 비례 17)을 얻어 과반을 얻지 못한 것은 물론 123석(지역구 110, 비례 13)을 얻은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원내 2당에 그쳤다. 탈당 후 출마한 무소속 의원들이 복당한다고 해도 국민의당이 38석(지역구 25, 비례 13), 정의당이 6석(지역구 2, 비례 4)을 얻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소야대 정국은 변하지 않는다. (무소속은 총 11석)

여론조사는 곳곳에서 빗나갔다.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서울 종로에서는 정세균 더민주 후보가 52.6%를 얻어 39.7%를 얻은 오세훈 후보를 가볍게 제쳤다. 하지만 많은 여론조사는 오세훈 후보가 정 후보를 10%p 이상 앞서거나 박빙으로 예측했다. 정세균 후보는 지난 3월 24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KBS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후보 45.8% 제가 28.5%로 보도됐다. 17.3%p 격차”라며 “이것이 왜곡인지 아닌지 증명해보이겠다”고 밝혔다.

은평을도 비슷한 경우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기관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5선의 이재오 후보의 승리를 점쳤다. 심지어 은평을은 고연호 국민의당 후보, 강병원 더민주 후보가 출마하면서 야권 표도 갈라지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예측은 더 신빙성을 더했다. 하지만 투표 결과 강병원 후보는 36.7%를 얻어 29.5%를 얻은 이재오 후보를 제쳤다.

여론조사기관들은 새누리당 출신으로 최초로 호남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도 노관규 더민주 후보에게 뒤쳐진다고 봤다. 이 후보의 고향인 곡성이 다른 지역구로 편입된 것도 이런 여론조사에 신빙성을 더했다. 하지만 이 후보는 44.5%를 얻어 노관규 후보(39.1%)를 제쳤다.

가장 큰 반전은 강남을에서 당선된 전현희 더민주 후보다. 선거 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전 후보는 현역 김종훈 새누리당 후보에게 10~15% 가까이 밀렸다. 하지만 전현희 후보는 51.5%를 얻어 김종훈 후보를(44.4%) 눌렀다.

▲ 14일 오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현충탑 참배에 앞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 20대 총선에서 강남구을 선거구에서 당선된 전현희 당선인을 업어주고 있다.ⓒ포커스뉴스
여당 편향 바로잡을 선거 득표율 가중치는 안 돼?

이번 여론조사의 예측 실패를 두고는 예견된 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유선전화 중심이었고, 유선전화 중심의 여론조사가 여당 편향이라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유선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는 여론조사 시간대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계층, 즉 노년층의 의견이 확대 대표되기 때문이다.

고민은 있지만 대안은 마련되지 못했다. 몇몇 여론조사기관은 여당 편향을 바로잡기 위해 최근의 선거 득표율 가중치를 통한 보정을 시도했다. 선거 득표율 가중치란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거나 응답을 하지 않는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 등에서 누구한테 투표했는지 등에 관한 ‘정치성향가중’을 반영하는 방법이다.

실제 추가가중을 적용할 경우 여야 후보들 간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나타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당 후보가 5%p 이상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이 방식을 도입한 여론조사기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선거여론조사기준’에도 관련된 내용이 있지만 이 방법이 이번에 실제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 중앙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이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며 ‘과태료 철퇴’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는 18대 대통령 선거 득표율을 기준으로 가중치를 만들었다 과태료 3000만을 부과 받았다.

여론조사심의위는 선거 득표율 가중치를 도입한 여론조사기관들의 방법이 엄밀하지 못해 과태료를 내린 것이며 이 방식이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입증되지 않은 방식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학자들 간에 합의도 안 된 여러 가설이 있는 방식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부당하며. 해당 조사기관들이 통계처리의 오류가 있었다면 그 오류를 바로잡아주면 되는데 그게 아니라 선거 득표율 가중치 도입을 아예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안심번호는 당에서만 사용 가능해

여당 편향을 바로잡을 또 다른 대안은 안심번호였다. 유선이 아니라 무선 전화를 통한 여론조사를 하면서도 개인정보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의 번호를 만들어 경선이나 여론조사에 활용하는 것이 안심번호 여론조사다. 응답률도 높아지고, 연령층별로 응답률 차이가 적기에 가중치를 이용한 통계보정 작업의 필요성도 적다는 것이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선거법상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는 정당에만 허용되고, 따라서 이를 공표할 수도 없다.

새누리당은 지난 4월4일 긴급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 여의도연구원은 자체 분석 결과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130석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많은 언론이 이를 ‘엄살’이라고 말했지만 투표결과에 가장 근접한 예측이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김 대표는 "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오늘부터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포커스뉴스
더불어민주당도 안심번호를 통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실시했다. 이철희 더민주 선대위 상황실장은 4월4일 기자간담회에서 “당장 내일 투표한다면 110석”이라고 예측했다. 몇몇 언론은 ‘지나친 낙관’이라고 했지만 투표결과에 가장 근접한 예측이었다.

이철희 실장은 “(여론조사에서) 영등포갑 신경민 후보가 권영세 새누리당 후보에게 10% 뒤지는 걸로 나오는데, 저희 조사에 의하면 오차범위 내 붙어 있다. 그런 게 몇 군데 된다”고 말했다. 실제 투표 결과 신경민 후보는 41.1%를 얻어 37.7%를 얻은 권영세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여론조사와 함께 적극 투표의향을 봐야

방식을 떠나 여론조사 자체의 함정도 있다. 모든 여론조사는 응답자들이 모두 투표에 참여한다는 가정 하에서 우위를 보여줄 뿐이다. 투표율, 투표 의향이 마지막 변수였다는 뜻이다.

중앙선관위가 1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투표참여 의향을 묻는 질문에 ‘반드시 투표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은 66.6%였다. 연령별로는 19~29세가 55.3%, 30대가 58.3%, 40대가 72.3%였다. 50대는 67.4%, 60대는 75.7%를 기록했다.   

중앙선관위 조사에서 돋보이는 것은 지난 총선과 비교했을 때의 추세다.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실시된 조사에서 20대 응답률은 35.9%, 30대는 49.4%, 40대는 57.0%였다. 20대~40대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늘어났다. 반면 19대 조사 때 50대는 66.7%로 20대 조사와 응답률이 비슷했고 60대는 80.6%로 20대 조사에서는 오히려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줄어들었다. 여론조사에서는 여당이 유리한 결과가 나왔지만, 적극 투표 의향에서는 야당이 유리했다는 뜻이다.

▲ 중앙선관위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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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투표율 가중 방식이든 안심번호 도입이든 여론을 제대로 반영할 여론조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번 4‧13 총선에서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심지어 정당도 여론조사를 믿지 않아 안심번호를 통한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하며 목표를 조정할 정도였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유선 전화조사만으로는 이제 선거 여론조사를 하기 어려워졌다는 사실과 아울러 투표소 출구조사 역시 1당을 맞추지 못하는 사실을 목도했다”며 “지역선거에서 안심번호 휴대전화 조사를 당내 경선여론조사 뿐 아니라 언론사 여론조사 등 공표, 보도되는 모든 여론조사로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또한 “선거통계를 가중치 부여 과정에 적용하지 못하게 하여 숨겨진 야당 표심을 통계과정에서 보정하지 못하게 제한한 여론조사심의위와 중앙선관위는 전향적으로 입장을 선회하여 공표, 보도를 허용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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