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청년실업의 원인이 또 하나 등장했다.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고용세습’이다. 하지만 고용세습 사례로 언급된 사업장을 확인해보니 보도 내용과 달랐다. 게다가 언론 보도가 단협이 체결될 당시의 사회적 맥락도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고용노동부는 28일 100명 이상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단체협약 2769개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선·특별채용 조항이 포함된 단체협약은 총 694개(25.1%)였다고 발표했다. 이 중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둔 곳은 37.1%(257개) 수준이다. 

▲ 조선일보 29일 12면 기사
“청년 일자리 뺏은 노조” 악의적인 보도

언론들은 기사를 쏟아냈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자녀에 대한 고용세습 단협을 둔 민주노총 사업장은 기아차, 현대제철, 한국GM, 현대차, 대한항공, LG유플러스, 현대오일뱅크 등이다. 머니투데이는 “현대판 음서제라는 지적을 받는 조합원 가족에 대한 특혜 채용도 심각”하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9일 12면 “취준생들 ‘노조가 내 일자리 뺏은 것 아니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가 알려지자 취업 준비생들과 청년 단체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관련 기사는 1면, 12면, 사설에 실렸다. 

해당 기사는 “노조 조합원들이 좋은 일자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금수저 물리기’를 해온 사실이 드러난 셈”, “자녀들을 특혜 채용하는 상황에서 공들여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멍청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등의 청년들의 발언도 인용보도했다. 

연합뉴스에는 “청년실업이 큰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청년들이 기회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유례없이 커지고 있다”며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있어 평등에 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판사의 발언이 인용 보도됐다. 

▲ 사진=이치열 기자
진짜 일자리 빼앗았을까? 살펴보니

하지만 단협에 해당 조항이 있다는 것만으로 노조가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았다거나 ‘현대판 음서제’로 규정짓는 것은 섣부르다. 해당 조항을 적용받아 입사한 사람이 얼마나 존재하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게다가 노동계는 “이미 사문화된 조항”이라고 입을 모으는 상황이다. 

언론에 고용세습 사업장으로 언급된 기업 노조에 확인한 결과 고용세습이라고 부를 만한 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노무사는 “노조가 생긴 이후로 이 조항을 적용받아 취업한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노무사에 따르면 해당 단협은 16년 전인 2000년에 체결됐다. 

LG유플러스 역시 마찬가지로 0명이다. 정보통신노동조합 사무국장은 “지난 10년간 해당 조항을 통해 취업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만약에 있다고 해도 입사 조건도 까다롭다. 대졸·초대졸에 따라 일할 수 있는 직군도 다르고 지역이냐 서울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고 말했다. 

조합원이 1만4000명에 달하는 한국GM의 경우도 사정도 비슷하다. GM지부 교선실장은 “매월 사망하는 조합원이 1명 정도 되지만 단협에 근거해 채용되는 사람은 1년에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마저도 사망자의 배우자가 급식소에 채용되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의 자체 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6월 민주노총 보도자료에 따르면 소속 사업장 89곳에서 최근 3년간 실제 자녀에게 고용이 ‘세습’된 사업장은 1곳이었다.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구조조정 당시 조기 퇴직한 조합원 자녀에 한정됐고 4년제 대학에서 7학기 이상을 이수한 사람이어야 했다”고 말했다. 

▲ 머니투데이 29일 4면 기사
“단협 체결되던 90년대 상황 이해 못한 보도”

해당 조항이 대기업 생산직 노조를 중심으로 있다는 사실과 관련해서도 ‘역시 귀족노조’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단협이 생긴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단협은 주로 1980년대 말이나 1990년대 초에 중반에 만들어졌는데, 당시 생산직 노동자가 일을 하다 다치거나 죽는 경우가 지금보다 훨씬 잦았다. 

GM지부 교선실장은 “지금이야 한국사회 다른 일자리가 열악해지면서 대공장 노동자들이 귀족노조 취급을 받고 있지만 단협이 체결되던 당시만 해도 우리는 ‘공돌이’로 불렸다”며 “이런 상황에서 회사도 숙련된 노동자를 잡아둘 유인책이 필요했기 때문에 맺어진 단협”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현재 존재하는 해당 조항도 업무 중 사망이나 질병, 재해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정미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산재로 사망할 경우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에 이런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그런 맥락은 보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다가 언론은 이들 사업장 이름까지 언급하면서도 전화 한 통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조종사 노조 노무사는 “기자들이 자신이 내는 기사의 파급력을 모르지 않을텐데 기사에 언급되는 당사자들에게 확인하지 않는 건 유감스럽다”며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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