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털렸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해 보세요. 경찰청에 전화해봤는데 왜 어떤 부서에서 털었는지는 모른다고 하네요….”(국민일보 박아무개 기자)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정보·수사기관이 영장 없이 확보할 수 있는 통신자료 요청으로 기자들의 통화대상을 수시로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는 사회부문 24시팀 기자들이 통신자료 제공 내역을 요청한 결과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이 기자 3명의 통신자료를 요청해 제공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해당 수사기관은 한겨레 기자들이 통신자료 요청 사유를 묻자 “밝힐 의무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며칠 전 매일노동뉴스 윤아무개 기자는 지난해 다섯 차례에 걸쳐 수사기관이 자신의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윤 기자는 “국정원이나 경찰청이 도대체 왜 내 정보를 가져갔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정보가) 어떻게 쓰였는지도 모른 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며 막막한 심경을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뉴스통신사 기자는 최근 1년 간 국정원 4회, 서울지방경찰청 2회, 경찰청 1회 총 7회나 통신자료 조회가 이뤄졌다. 이 기자는 “개인적으로 알아본 결과 (통화내역이) 털린 기자들은 민주노총 집회를 취재했거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에 있던 시절 민주노총 대변인과 통화를 했거나 반정부적인 집회 현장기사를 썼던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었다”고 전했다.

▲ 뉴스통신사에 근무하는 한 기자가 미디어오늘에 제공한 정보수사기관 통신조회내역.
언론사 파업과 쟁의활동을 조직하고 선전하는 전국언론노조 간부들도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 대상이었다. 백재웅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지난 1년간 국가정보원·서울지방경찰청·서울동부지검·서울남대문경찰서 등에서 무려 10번이나 조회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정기 언론노조 조직쟁의실 부장도 서울지방경찰청과 남대문경찰서에서 본인의 통신자료를 두 번 요청한 사실을 확인했다. 최정기 부장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이후 조회가 집중됐다. 처음엔 산별노조 간부들이니까, 라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통신내역까지 조회를 했더라”고 전했다. 최 부장은 “통화한 상대방의 신원을 파악해 국가권력이 거대한 이념지도를 빅 데이터로 만드는데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용마 MBC해직기자도 “혹시나 했는데 관악경찰서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내 통신내역을 조회했다”며 “이 정도로 통화내역을 쉽게 들여다볼 정도면 굳이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킬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최성진 한국기자협회 언론자유특별위원장(한겨레 기자)은 “수사기관이 기자의 통신내역 열람만으로 취재원과 언제 자주 통화했는지 파악해 기사의 출처를 알 수 있게 된다”며 “기자의 통신내역을 국가기관이 들여다보는 것은 중대한 언론자유 침해”라고 우려했다. 최성진 위원장은 “국가기관이 무슨 이유로 기자들의 통신내역을 들춰봤는지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요청은 박근혜정부에서 전 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통신자료 요청 건수는 3042만1703건에 달했다. 국민 5명 중 1명은 매년 한 번씩 통신기록이 조회되는 셈이다. 수사기관은 통신사를 통해 통화 상대방의 전화번호와 통화 일시, 주민등록번호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조회 과정에서 통신사는 당사자에게 통신자료의 조회 목적은 물론 조회 사실조차 통보하지 않고 있다.

최근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통신자료 제공 사실을 알려달라는 가입자 요청이 쇄도하며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요청도 빈번하게 이뤄졌던 것이 드러났다. 수사기관은 시민단체와 민주노총 간부, 공익변호사, 야당 국회의원 등을 상대로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를 실시해 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수사기관은 전기통신사업법을 근거로 영장 없이 통신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통신자료 제공 현황 공개 소송에 승소하며 통신사들이 제공내역을 알려주기 시작했으나 가입자가 신청해야만 알 수 있다.

참여연대와 오픈넷은 현재 ‘통신사 통신자료제공에 대한 알권리 찾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전국언론노조 또한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통신사실 제공내역 조회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언론노조 주요사업장인 KBS·MBC·SBS의 기자·PD들의 경우 대부분 법인 폰을 쓰고 있어서 조회가 쉽지 않다. 법인폰의 경우 개인이 제출하기 어려운 자료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에 대한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사례가 모이면 조회 유형의 유사성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로선 기자들의 참여로 빅 데이터를 모으는 게 급선무다.

오픈넷 김가연 변호사는 “이통사가 영장 없이 수사기관에 통신자료를 제공하는 제도 자체가 위헌적이다. 통신자료제공을 받을 때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침해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로선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관련 법 개정과 함께 언론의 관심을 촉구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기관을 상대로 통신자료 요청 사유를 밝히라는 소송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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