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공동체 ‘깊은계단’의 심용환 대표는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문제 합의를 비판하면서, “일주일 내로 정대협은 종북 단체가 될 것이다”라는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여러 의미에서 국정화와 위안부는 정부가 만들어낸 쌍둥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국가가 또다시 역사전쟁을 일으킨 것”이라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이 종북논쟁으로 일방화되었듯”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심 대표가 예측한 종북 여론몰이가 시작됐다. 일주일이 아니라 고작 이틀만에 현실화됐다. 

6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을 지켜온 소녀상 주변에서 열린 24주년 수요집회 현장엔 극우단체인 ‘어버이연합’이 등장해 “정대협 지도부는 대한민국을 전복시키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이 철저히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엄마부대봉사단’ 역시 최근 정대협 사무실을 찾아 “정대협이 할머니들을 앞세워 사회를 어지럽게 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는 것 같다”며 유사한 논리를 펼친 바 있다. 

   
▲ 6일 보수단체 어버이연합의 위안부협상결과 수용 촉구 집회. 사진=이치열 기자.
 

어버이연합은 종북세력이 정대협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다는 근거로 윤미향 정대협 대표를 지목했는데, 이는 미래한국신문 같은 극우 매체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 인터넷신문은 “윤미향 상임대표의 남편은 1994년 남매 간첩단 사건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은 김삼석 씨”이고 “손미희 대외협력위원장은 40여 차례 방북, 통진당 해산 결정 반대 시위”를 했다며 정대협을 종북세력으로 호도한 바 있다. 

미래한국신문은 고영주 MBC 방문진 이사장, 김광동 방문진 이사, 차기환 KBS이사, 조우석 KBS 이사 등 현 정부의 ‘거수기’로 비판받는 방송계 인사들과 권희영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 김동길 한민족원로회 의장, 권혁철 자유경제원 소장,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조갑제 씨 등이 편집위원과 주요 필진으로 자리한 극우성향 인터넷 매체다. 

조우석 KBS 이사는 지난 28일 위안부 소녀상은 “외교적 결례에 불과”하다며 소녀상 이전을 하면 국론분열이 있을 거라는 주장은 “가관”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소녀상이 외교적 결례라는 것은 일본 우익의 주장이었다. 즉 외국공관에 대한 위엄 침해 방지를 규정한 빈조약 22조 2항 위반이라는 것이며, 일본 정부 역시 이 조항을 근거 삼아 소녀상 철거를 요구해왔다.

일본 우익세력은 오래 전부터 위안부 피해자들의 문제제기를, 자신들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엄을 침해하는 골칫거리로서 바라봐왔고, 특히 한국에 있어서 그 중심을 정대협으로 지목해왔다.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도,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일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원인으로 정대협을 비난해왔다.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대사는 한일 합의 당일인 28일에도 산케이를 통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고있는 정대협은 한국내에서도 과도하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본 우익과 마찬가지로 조우석 이사는 “정대협은 겉으로 ‘민족주의 장사’를 하지만, 실제론 좌파 집단”이라며 “이 단체 홈페이지를 보면 공동대표는 윤미향-한국염-김선실 등 3인인데, 이 셋의 남편들이 간첩 협의로 기소된 적이 있거나, 국가보안법 협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경력이 두루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바 종북 전력 주장은, 일본 우익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펼쳐온 허위사실을 반복하는 수준이다. 조우석 이사나 어버이연합이 제기한 윤미향 대표의 남편 관련 ‘남매간첩사건’은 이미 1990년대 정권에 의해 조작된 대표적인 공안사건으로 결론이 난 바 있다. 

앞서 청와대는 위안부 합의 후폭풍이 거세지자 언론 인터뷰에서 “국내적으로 조금 톤 다운(누그러지게)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도 그랬듯이 반대여론을 톤 다운 시키기 위한 물타기 공식은 정해져있다. 극우단체들이 위안부 피해자 단체의 중심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을 종북세력으로 먼저 규정한 뒤, 여론 동향을 주시하며 이를 정치권으로 확대해가는 것이다. 국정원을 동원한 부정선거, 세월호, 메르스, 교과서 국정화 등 주요 고비고비에서 일관되게 관철되어온 공식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