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초등학생들에게 섬찟한 가사의 ‘6.25노래’를 주입하거나 반공 웅변대회를 개최하는 일은 노태우 정권(1988.2~1993.2)까지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군사독재 미화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유아와 아동 대상의 이념교육도 재개되고 있다. 

   
▲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상영된 동영상(좌), 전북 진안에서 실시된 총기 교육(우).
 

국가보훈처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제출한 ‘2016년도 정부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나라사랑정신계승발전’ 사업의 일환으로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에 6천만원의 예산안을 확정했다. 보훈처 대변인실에 의하면 전국 17개 광역시도별로 1곳씩을 선정해 나라사랑 교육을 실시하는 시범 유치원을 만들고 순차적으로 이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당초 보훈처는 전국 유치원의 10%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면서 총 106억3400만원의 관련 예산을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와의 협의과정에서 일단 17개 유치원으로 조정이 이뤄졌다. 

현재 정부는 나라사랑교육 사업의 전체 예산을 총 4배 가까이 편성해놓았고, 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국정원 및 군 사이버사령부와 함께 불법 정치개입을 했던 국가보훈처의 핵심 정치사업이기에 대선을 앞둔 사전정지작업이란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미 실시되고 있는 초중고등학교 나라사랑교육과 함께 내년에 시범사업이 예정된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은, 교과서 국정화와 함께 미래세대를 대상으로 한 ‘이념 대비’ 사업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지난 대선 직후 국가보훈처를 ‘이념대결 업무’의 주무부처라고 주장한 것이나, 올해 1월 ‘2015년 국가보훈처 나라사랑교육 전문 강사진 워크숍’에서 “군사 대비는 국방부가 주관하지만 이념 대비를 위한 주관부처는 불분명”하다며 “국가보훈처의 역할 강화 필요 ; 보훈지방청, 보훈지청 등 전국에 산재해 있어 전 국민 대상의 나라사랑교육 가능”이라고 적시한 대목이 이를 방증한다. 

유치원을 대상으로 하는 이념 교육의 내용은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국가보훈처 나라사랑교육과 관계자는 “이념 교육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보훈처 대변인실도 “나라사랑 꾸러기 유치원과 관련된 교안은 없다”며 “성인이나 초중고 대상 나라사랑 교육도 표준 교안을 만든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보훈처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비방하고 보수세력이 재집권해야 한다는 표준교안을 만들어 배포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현재 보훈처와 관계기관은 유치원 나라사랑교육은 물론, 이미 실시되고 있는 초중등학교 나라사랑교육의 교안과 동영상 자료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 의해 공개된 몇몇 초등학교 나라사랑교육을 통해 유치원 대상 교육의 방향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초등학생 대상 나라사랑교육은 이미 그 심각성이 드러난 바 있다. 지난해 7월 서울 강동지역의 한 초등학교에선 사지가 뒤로 묶여 밧줄에 매달린채 피를 흘린다거나 칼을 든 남성들이 한 여성(뒷모습)의 배를 가르는 등의 삽화 동영상을 상영한바 있다. 당시 초등학교 강단에 선 나라사랑교육 강사는 육군 소령이었고, 나라사랑교육이 이뤄진 후 초등학생들은 정신적인 피해를 호소한 것으로 확인된다. 오마이뉴스는 당시 나라사랑교육을 진행한 ‘전문강사’(소령)가 “해당 동영상은 국방부 표준교안에 제시된 것이라 그대로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고, 수도방위사령부 관계자는 “해당 동영상은 국방부에서 제작한 것”이며 “국방부와 교육부가 협약(MOU)을 체결해 전국 학교에서 신청을 받아 교육을 진행해왔다”고 말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 지난 9월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 재개관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과 박승춘 국가보훈처장(가운데)
 

전북 진안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뤄진 ‘호국보훈의 달 안보교육’에선 전교생을 학교 운동장으로 불러내 군인들로부터 실제 총기를 손에 쥔 채 장전하고 쏘는 방법 등을 배우도록 했다. 

서울 강동의 초등학교 사건과 관련해 보훈처는 “나라사랑교육 초기에 벌어진 시행착오”라며 “그런 강의를 진행하면 전문강사진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지 않겠냐”는 입장을 밝혔다. 보훈처 주장대로 표준 교안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현직 군 관계자나 우익단체 인사들이 이른바 ‘전문강사’들을 구성하는 상황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이미 수차례 정치적으로 편향되고, 세뇌(洗腦) 수준의 정신적 충격을 던지는 ‘표준 교안’들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표준 교안이 없다는 주장을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나라사랑교육예산의 원안통과를 주장하는 새누리당과 예산 삭감을 주장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이 맞서고 있는 가운데, 27일 국회 정무위는 보훈처를 제외한 채 다른 소관 부처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나라사랑교육에 대한 여야의 대치가 계속될 경우, 새누리당이 다수인 정무위는 보훈처 관련 정부 원안을 예결위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관련기사: ‘나라사랑 교육’ 예산 300% '뻥튀기'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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