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연기를 보면 정말로 마트에서 일하는 애를 데려다가 캐스팅 했다는 느낌이 드실 거다. 실제로 동협이(극중 역할)랑 비슷한 나이쯤에 마트에서 일했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내 예전 모습을 비춰보게 됐다. 그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 드라마를 보시면 그런 권리를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박시환)

인사위원회, 부당해고, 노동조합, 노동권…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뉴스와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제외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런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았다. 오는 24일 ‘현실의’ 단어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전파를 탄다. 최규석 작가의 웹툰 ‘송곳’을 원작으로 한 JTBC 드라마 송곳이다.

극중 배경은 푸르미마트다. 활기찼던 마트는 정리해고가 시작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회사의 압박은 심해지고 노동자들은 인간적인 모욕까지 당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을 자르라는 이수인(지현우) 과장은 오히려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안내상)의 도움을 받아 노동조합을 만들고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다. 사실 정리해고는 드라마의 흔한 소재였지만 이에 맞선 싸움을 본격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21일 오후 서울 장충동 반얀트리클럽앤스파에서 열린 송곳 제작발표회에서는 “제작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에 대해 JTBC 제작기획국 국장인 김석윤 감독은 “필요 이상의 우려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도 괜찮겠냐고 하는데 안 괜찮을 이유가 뭐가 있나”라며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이상 현실적일 수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 드라마 송곳
 

그러면서 김 감독은 원작의 감동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송곳을 본 이후로 다른 웹툰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강렬했다. 웹툰이 가진 강렬한 힘을 누수되지 않게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웹툰에는 없는 아주머니들 이야기, 정민철 부장이라는 캐릭터 등을 풍성하게 한 점은 웹툰과의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오는 거요” 등의 명언을 남긴 구고신 역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구고신 역을 맡은 안내상씨는 “구고신의 명대사들이 크게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안씨는 “단순히 말을 멋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절실하게 경험한 사람이 그 인생을 정리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며 “가장 와닿았던 대사는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 이다. 제 청년 시절에 풀지 못했던 과제가 그 대사 하나로 풀렸다”고 말했다. 안씨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으로 두 차례 수감된 경험이 있다고 과거 방송에서 밝힌 바 있다. 

이수인 역을 맡은 지현우(31)씨는 “당연히 알아야 할 권리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책이나 어려운 것들로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며 “드라마에 조금이나마 정보가 나오니 드라마를 보시고 노동자가 알아야 할 권리도 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씨는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마트고 돌아다녀보고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도 가봤다고 밝혔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은 미생에 출연했던 김희원(44)씨는 송곳에서도 악역 아닌 악역을 맡았다. 김씨는 “미생과 송곳, 두 드라마는 다른 점이 거의 없다. 둘 모두 우리들이 지금 사는 이야기”라며 “사실은 악역도 나쁘지 않은데 나쁘게 보여지는 것 같다. 먹고 사는 게 힘드니까 시키면 할 뿐인데 이게 어느 시각에서는 나빠보이고 다른 시각에서는 또 다르게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석윤 감독은 “웹툰을 보신 분들이나 아직 접하지 못한 분들이 웹툰에서 하고자 하는 말을 드라마를 통해 느껴보셨으면 좋겠고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송곳을 많이 보는 것이 최규석 작가의 의도이자, 드라마를 만드는 저의 의도이기도 하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안내상씨도 “개인적으로는 찍으면서 너무 만족했기 때문에 시청률을 떠났다. 어서 첫방송을 보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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