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 기다렸습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해고노동자 강병재 씨가 전화연결에서 말한 첫 마디다. 12일 오후 4시 전국 각지에서 ‘9.12 희망버스’를 타고 온 시민 1000여 명이 대우조선해양 오션플라자에서 ‘연대마당’ 문화제를 열었다. 복직 약속을 이행하라고 157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강씨를 보기 위해서다. 옥포조선소 N안벽문 열정교 앞 60m 크레인 위에서 녹색 상의를 입은 강씨가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번 9.12 희망버스는 부산, 강원, 전주, 광주, 대구 등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기아차 해고노동자를 비롯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와 정리해고자 복직을 위해 청계천 광장에서 109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하이디스 지회도 함께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희망버스 중에는 박근혜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청년들이 탑승한 ‘청년버스’도 있었다.

 
   
▲ 궂은 비에도 불구하고 '9.12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강병재 씨가 오른 크레인 맞은 편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강씨는 “바라는 것은 약속지키는 것 하나밖에 없다”며 “이 하나를 위해 고공농성을 해야 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강씨는 2007년 거제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노동자 조직위원회를 만드려다 해고당했고, 2011년 88일간 고공농성을 벌여 이듬해 사측으로부터 복직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강병재 씨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향해 “절반의 인생이 비정규직, 이거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바로 잡아야하지 않겠습니까”라 물으며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을 더욱 늘리려 하고 있고, 임금도 줄이고 해고도 자유롭게 하겠다고 말한다”고 했다. 노동유연화를 골자로 한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비판이다. 그는 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를 향해 “비록 함께 못하고 있지만 가슴 속에 있는 분노,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을 언젠가 이길 날이 있을 것”이라며 “조금 더 단단하고 야심차게 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미리 준비한 주황색 풍선을 날렸다. 참가자들은 풍선에 ‘응원합니다’ ‘무사귀환’ ‘비정규직 철폐’ 등의 메시지를 적은 편지를 매단 뒤 크레인 쪽을 향해 날렸다.

   
▲ 고공농성자 강병재 씨의 전화에 화답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의 풍선 날리기. 사진=손가영 기자
 

"힘내서 이기자, 대우조선 강병재, 부산생탁 송복남, 한남택시 심정보"라고 적힌 피켓을 준비해 온 대학생 양다혜(20) 씨는 “고공농성이 다 자기 살 깎아먹는 투쟁 아니냐”며 “이런 투쟁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권영국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본부장은 “장그래운동본부의 본부장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반노동자정권과 반민중적 정권과 맞서는 그런 투쟁의 선두에서 여러분과 함께 싸워나가겠다”고 발언했다. 발언 후 강병재 고공농성자의 고3 딸에게 보내는 희망버스 참가단의 선물전달도 있었다. 김소연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강씨의 딸이 가지고 싶어했던 태블릿 PC를 거제 지역대책위에 전달했다.

문화제 후 거제대우해양 조선소 각 출입문에서 ‘희망의 배 나누기’가 진행됐다. 오후 5시 조선소 노동자들이 퇴근하는 시간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됐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N안문, 동·서·남·북문, 정문 등 6개 문으로 각각 흩어져 “9.12 희망버스 비정규직 시대 그만!”이 적힌 액정크리너를 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배부했다.

   
▲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 앞에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서울·부산 지역 참가자 150여 명은 남문 앞 횡단보도 근처에서 ‘노동개악 막아내자’ 피켓을 들고 “비정규직 없는 일터, 함께 만들자”는 현수막을 들었다. 퇴근길의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시민들이 나눠주는 물품을 받으며 가만히 읽거나 주머니에 넣었다.

한 협력업체의 물량팀 소속 노동자라고 밝힌 한 남성(36)은 “(강씨의 말이) 맞는 말이라 생각한다”며 “발각되면 (회사를) 나가게 되니 참여를 할 수 없을 뿐”이라고 말했다. 배관설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의 한 계약직 노동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좋은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들은 건너편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없는 일터 우리가 만들자” 구호를 외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편, 9.12희망버스 14대는 곧 부산에서 열린 '희망버스 연대한마당'과 '비생탁 막걸리 축제'를 위해 6시 거제를 출발해 부산시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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