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청년좌파 김성일 대표)

생각이 다른 청년들이 홍대에 모였다. ‘장그래, 어떻게 살릴 것인가?’라는 이름으로 청년문제를 토론하기 위해서다. 신보라 청년이여는미래 대표는 “기성세대들이 자신들을 시혜의 대상으로 본다”며 기성세대를 비판했다. 기성세대가 바라본 청년이 아니라 청년이 바라본 청년문제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이들의 토론은 새롭지 않았다. 5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내집마련을 포기한 세대), 최저임금 1만원 문제, 공적연금 등을 주제로 이야기가 오고갔지만 청년 자신들의 목소리는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협 여의도연구소 정책자문위원은 “10년째 원룸에 살다가 최근 고시원을 옮겼다”며 운을 띄웠지만 청년의 경험에서 우러난 문제제기나 대안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진보 쪽 패널로는 청년좌파 김성일대표, 한민호 다준다정치연구소 정책실장,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이 참여했고, 보수 쪽 패널로는 신보라 청년이여는미래 대표, 이상협 여의도연구원 정책자문위원,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가 참여했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주장과 5포 세대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고용의 안정성과 일정 수준의 임금이 양질 일자리의 전제조건이 아닐까? 김동근 대표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고용유연화를 통한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말하거나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기분이 좋다’가 아니라 최저임금을 올려서 더 많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성일 대표가 “최저임금이 오르면 (노동자들이)잘리지 않겠냐고 우려하면서 고용유연화를 지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 논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김동근 대표는 “고용유연화는 정규직을 이대로 과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라며 “효율성 차원에서 고용유연화를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 27일 오후 서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장그래,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제로 청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하지만 이는 비정규직 법안이 처음 논의될 때 법안을 추진하는 쪽에서 주장했던 논리였고, 결국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2년씩 쓰고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정부도 공유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고용안정성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은 이어졌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안정성을 줄이는 것에 대해 보수 측 패널들은 큰 거부감이 없었다. 신보라 대표는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장그래가 (정규직으로)고용되지는 않지만 새로운 일자리를 찾게 된다”며 “새로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정규직 노동자에 대해서 과보호라고 하는데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일자리는 노동시장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 자리가 유연화 된다고 청년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 양질의 일자리로 청년들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원인이 대기업 정규직 탓일까? 김성일 대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얘기하면서 비정규직의 차별이 아니라 정규직의 과보호를 줄이자고 하는데 (노동조건의)하향평준화로 될 일이냐”고 비판했다. 
 
노동법이나 노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도 나왔다. 김동근 대표는 “노동법이나 노조가 당연히 필요한 부분을 넘어 과도하게 늘어났다”며 “고용되면 (노사)합의가 일어난 것인데 구조조정이나 전환배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왔다”고 말했다. 
   
재벌들이 주장해오던 논리는 이어졌다. 김동근 대표는 “20년 전에 100대 기업이던 곳 중 지금 남아있는 기업이 얼마나 있느냐, 기업도 힘들다”, “사내유보금 얘기도 나오기 마련인데 기업들이 현금을 숨겨놓고 있는 것이 아니고 도덕성이 없어서 투자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유연화 등의 문제가 해결되면 고용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할 사람들”, “경제적인 관점에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것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청년들의 대부분이 실업난과 열악한 임금구조에 놓였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논의해야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이 나오자 진보 쪽 패널들은 할 말을 잃은 듯 했다. 

김동근 대표는 “자영업자 문제가 나오면 한쪽에서는 청년들보고 창업을 하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자영업자가 많다고 문제라고 하는데 뭐가 맞는 거냐”고 얘기했고, 이에 김성일 대표는 “한국 사회의 자영업자들이 노동시장에서 밀려나서 자영업자가 됐고, 이마저도 몇 년 못 버티고 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청년 창업과는 다른 문제”라고 대답했다. 

연금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적 연금에 미래세대에 얼마만큼 부담이 되고 이 문제를 청년들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로 논의가 이어지긴 어려웠다. 신보라 대표는 연금을 개혁하고 자영업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등을 언급하며 “(진보 패널들은) 국가가 옳은 방향으로 강제할 수 있는 주체라는 전제를 두는데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김성일 대표는 “그렇지 않다. 그 시각은 국가가 권력을 이용한다는 관점인데 나는 국가를 제한하기 위해 권력이나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근간 철학이 다르니까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말했다. 

토론은 오해와 불통으로 끝났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다. 전제하고 있는 사실도 달랐고,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듯 했다. 그걸 확인한다는 점에서만 의미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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