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두 달여 만에 1000만 명을 돌파한 과학 SF 영화 ‘인터스텔라’의 돌풍을 두고 물리학계에서도 기적에 가깝다는 탄성을 내놓고 있다. 한국에서 이 같은 흥행 몰이를 두고 고무적이라는 평가 한편에는 대한민국이 자연의 원리와 과학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억눌러왔다는 점을 반증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입자물리학자이자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 BK21플러스 휴먼웨어 정보기술사업단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이종필 교수는 최근 집필한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동아시아)에서 이 영화에 대한 한국의 ‘이상 돌풍’ 현상과 한국사회를 두고 이같이 진단했다. 이 교수는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갑기도 하고 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고 표현했다.

특히 이 교수는 이 영화를 보고 내놓은 평가가 그다지 후하지는 않았다. 그는 인터스텔라에 대해 “평범한 관객의 기준에서 영화를 본 내 첫 느낌은 영화적 재미를 주는 스토리가 시큰둥했다”며 “스토리에서 중요한 요소는 스토리 전개의 필연성인데, 그 기준에서 보자면 인터스텔라의 스토리에는 선뜻 마음이 잘 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스토리 전체를 가로지르는 핵심적인 긴장관계 속에는 ‘꼭 그러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인터스텔라의 핵심갈등으로 ‘행성탐사-플랜A-방정식 풀이’ 등을 들었다. 이 교수는 “황폐한 지구를 남겨두고 우주로 나가는 문제는 그렇다 해도, 플랜B와 방정식 풀이로 이어지는 과정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꼭 그러해야만 했었는지 잘 와닿지 않았다”며 “극적인 긴장감도 함께 떨어졌다. 인간의 수정란만 보내는 플랜B는 반생태적이기까지 하다”고 촌평했다.

   
인터스텔라에서의 블랙홍
 

또한 브랜든 교수가 왜 그렇게 방정식에 집착하는지 (극적인 스토리 전개상) 물리학자로서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이 교수는 반문했다.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약간 생뚱맞았다”며 “뜬금없이 나타나서 갑자기 한 순간에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적인 존재, 그런 존재가 자주 등장하면 확실히 재미가 떨어진다. 인터스텔라의 ‘그들’도 내게는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모험에 나섰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전형적인 오디세우스 구도를 충실히 따르고 있고 미국식 프런티어 정신, 모험심, 가족애, 인류애가 적절히 잘 버무려져 있다”며 스토리의 현실성을 높여주는 두가지 ‘기제’를 제시했다. 그 하나로 이 교수는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들어 △우주선이 다단로켓으로 날아가고 △인듀어런스호와 우주복은 대단히 소박하며 △우주선 내 동면장치 통신설비 디스플레이 등도 낯설지 않을 뿐 아니라 △초광속 추진장치도 없이 중력기동에 기대야 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또다른 하나는 실패한 우주탐사의 이야기라는 점을 이 교수는 지목했다. 

아쉬운 점에 대해 이 교수는 “영화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지만 과학고증을 잘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영화 전반에 걸쳐 꼼꼼한 고증을 했어야 한다”며 토성 주변에 웜홀이 생겼는데 태양계 전체의 행성 운동이 평화로운 점을 꼽았다. 블랙홀 전문가 킵 손 교수의 자문 덕분에 부분부분 장면은 과학적으로도 정확했겠지만, 전체적인 수준에서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이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 사진=인터스텔라
 

이 교수는 물리학자로서 평가할 만한 점은 상대성 이론을 현실적으로 잘 구현한 것을 들었다. 그는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내게 ‘정말 우주여행을 하고 오면 나이를 덜 먹게되나요’라 물어보는 것도 이 대목을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극적으로 연출했기 때문”이라며 “덕분에 상대성이론을 공부하는 열풍이 불었다니, 물리학자로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썼다.

그는 “물리학자들이 강연과 글쓰기로 기초과학이 중요하고 상대성이론이 GPS에도 쓰인다고 아무리 얘기해봐야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영화 한편 때문에 수백만 명(1000만 명)의 관객들이 블랙홀 웜홀 시간지연, 양자중력을 얘기하면서 현대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한국에서 이 영화가 유례없는 돌풍을 일으키는 점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배급사 독식 문제, 한국인 특유의 쏠림현상, 왕따 당하지 않으려는 습성 등을 꼽는 사람도 있었다”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과학과 자연의 원리와 우주의 질서를 알고 싶어하는 원초적인 욕망을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억눌림이 인터스텔라를 계기로 폭발한 덕분”이라고 진단했다. 

기초과학이 열악하고 과학문화 자체가 일천한, 척박한 한국의 현실과 달리 이 교수는 대중들의 뜨거운 열망을 그동안 느껴왔다고 전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저기 대중강연을 다니면서 우리 이웃들이 과학을 알고 싶어하고 자연의 근본원리를 들춰보고자 하는 욕망과 잠재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는 그런 욕망을 충족시킬 장치가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인터스텔라의 폭발적 흥행이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 떠올라서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미국이 NASA를 처음 만든 이유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에 따른 충격이라는 점을 들어 이 교수는 “미국은 NASA만 만든 것이 아니라 실용성을 강조했던 공교육이 수학과 물리학 등 기초과학 교육구조로 전면 개편했다”며 “한국도 2020년이면 달 탐사선이 뜬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는 지금 얼마나 기초학문을 중시하고 있는지, 잘못된 교육제도와 내용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칠 의지가 과연 있는지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미국이 받고 느꼈을 법한 절박함이나 위기감을 (한국의 박근혜 정부는)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다”며 “우리는 이웃나라 중국을 업신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이미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선저우라는 유인 우주선과 톈궁이라는 우주정거장을 보며 쇼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라고 되물었다.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특히 과학을 이용하는 대한민국의 풍토에 대한 질타도 나왔다. 이 교수는 “최근에 우리가 겪었던 사례만 들더라도 황우석 사건, 광우병 파동, 천안함 사건, 일본 후쿠시마 사태 등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과학적 내용들이 관련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한국정부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일본산 농수산물 수입을 규제하자 일본 정부 관리들은 자기네 농수산물이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대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7세기 신라인을 두렵게 했던 천상의 비밀은 21세기 한국인들에게 이처럼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 돌아왔다”며 “때로는 황우석이었고, 때로는 ‘4대강 전도사’, 때로는 천안함 조사단이었다”고 지적했다.

“20세기에 인류가 달에 갈 수 있었던 것은 400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돈을 버는 대신 하늘을 바라봤기 때문이고, 그런 멍청한 짓을 하는 사람을 후원했던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과장일까…지금의 한국정부나 기업 같은 마인드를 가졌다면 원천기술이니 일자리창출이니 경제성장이니 하는 온갖 이유들을 대면서 한가하게 하늘이나 보고 있는 갈릴레오를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인터스텔라 같은 영화가 나오기까지 우리는 몇 년을 더 기다렸을 지도 모른다.”

다음은 이 책에서 이종필 교수가 풀이한 인터스텔라 속의 주요 과학지식을 요약했다.

#중력기동
중력은 굉장히 약한 힘이다. 전화를 하고 TV를 켜고 생체활동이 돌아가는 등의 현상에서는 전자기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전자기력에 비해 중력은 대략 10⁴⁰배 정도 작다. 하지만 우주로 나가면 태양같이 거대한 질량의 천체는 부지기수이고, 최소 1000억개 정도 모여 있는 은하에다 블랙홀과 같은 (극단적인 중력을 보유한) 천체도 도처에 널려있다.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쿠퍼 일행이 탄 우주선 인듀어런스호는 토성 근처의 웜홀 입구로 가기 위해 화성 주변에서 화성의 중력을 이용한다. 이른바 ‘중력기동’이다. 초기조건을 적당히 잘 조절하면 그 행성을 휘감아 돌아, 다시 왔던 방향으로 튕겨 날아간다. 행성이 태양 주변을 돌고 있으므로 우주선이 튕겨나갈 때 행성의 속도가 튕겨나가는 우주선의 속도에 큰 영향을 준다. 마치 행성이 우주선을 새총으로 날려버리는 것과도 같아 ‘중력새총’이라고도 부른다. 보이저호나 카시니호 뿐 아니라 지난달 12일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에 사상 첫 착륙한 로봇을 내려보낸 로제타호도 네 차례에 걸친 중력기동으로 혜성궤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중력기둥 현상 이미지. 이미지=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운동량(momentum) 보존법칙
쿠퍼가 아멜리아 브랜든 박사를 에드먼즈의 행성으로 보내기 위해 자신과 로봇 타스가 탑승한 소형 착륙선을 모선에서 분리해 블랙홀로 빠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블랙홀 방향으로 소형 착륙선에 의한 운동량이 갑자기 생긴 것이며, 모선인 인듀어런스호 입장에서 볼 때 블랙홀 방향으로 없던 운동량이 생긴다. 전체 운동량 보존을 위해 착륙선이 떨어져나간 나머지 선체는 블랙홀의 반대방향으로 운동량을 얻게 돼 순간적으로 같은 힘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인위적 중력
인듀어런스호가 계속 회전하는 장면에 해당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중력과 관성력의 등가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우주선 자체를 회전시키면 우주선 바깥으로 관성력이 작용하고, 회전을 잘 조절하면 이 관성력이 지구에서의 중력과 똑같은 크기를 갖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주선이 회전하고 있는지 지구와 똑같은 크기의 행성이 우주선 아래에서 중력을 발휘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시간지연(팽창) 효과
(상대성이론이 설명하는 대표적인 우주현상이다. 광속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정지한 사람이 움직이는 물체의 시계를 보면 시간이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쉽게 말해 속도(광속)은 그대로인데 거리가 늘어난다면 속도는 시간분의 거리이므로 거리가 늘어난만큼 시간도 늘어난다는 간단한 계산을 통해 입증된 것이다.-기자주)
상대성이론의 시간 지연 효과를 이용한 대표적인 사례는 GPS 위성을 이용한 내비게이션이며, GPS 위성은 미 공군 제50우주비행단에서 운영한다. 고도 2만km 상공에서 시속 1만4000km의 속력으로 운행하고 있기 때문에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의 영향을 모두 받는다. 
위성이 시속 1만4000km로 날아가면 시간이 팽창한다. 이에 따른 시간지연효과는 대략 1000억분의 8이며, 하루에 약 1000만분의 7초 정도 시간이 느려진다. 또한 위성의 고도가 높기 때문에 중력이 약해서 위성이 시간이 빨라진다. 약 100억 분의 5 정도로 하루에 약 100만 분의 45초가 빨라진다.
이 두 효과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지상에서 수킬로미터의 오차가 생길 수도 있다. GPS 위성의 경우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른 중력효과가 훨씬 더 크게 작용한다.

#탈출속도
인터스텔라에서 가장 많이 옥의 티로 지목되는 대목이다. 지구중력의 130%인 밀러 행성에서 어떻게 착륙선이 자체 연료로 그 행성을 탈출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행성의 중력권을 벗어날 수 있는 속도를 ‘탈출속도’라 한다. 행성의 질량을 행성의 반지름으로 나눈 값의 제곱근(루트)에 비례한다. 지구의 탈출속도는 초속 11.2km, 목성의 탈출속도 초속 60km. 행성주변의 궤도를 돌기 위해서는 탈출속도보다 약 1.4배 정도 작은 속도로도 충분하다. 이것은 물체를 한 번 내던져서 행성을 탈출시키는 데 필요한 속도이다. 뉴턴이 사과를 던져서 천상의 위성으로 만들거나 영원히 멀리 우주 속으로 내보내기 위한 속도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블랙홀
18~19세기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이자 극단주의적 학자로 알려진 피에르-시몽 라플라스의 ‘어둑별’(dark star)이 그 효시라 할 만하다. 라플라스는 1796년 ‘어떤 행성의 중력이 아주 강력해 그 행성의 탈출속도가 광속보다 크면 어떻게 될까’하는 상상을 했다. 아마 태양이 그 행성을 밝게 비추더라도 우리는 그 행성을 결코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상상이다. 그 행성의 중력권으로 들어간 빛은 광속보다 큰 탈출속도를 이기지 못해 그 행성 밖으로 절대 나올 수가 없다. 이런 별을 어둑별이라고 불렀다. 한마디로 탈출속도가 광속보다 큰 천체이다. 블랙홀이 만들어지는 조건은 어둑별의 조건과 같다. 
현대적인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1916년 초 독일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츠는 지구나 태양같은 구형의 질양 주변 시공간을 연구해 중력장 방정식의 정확한 풀이를 구했다. 공 모양으로 질량이 분포해 있을 경우 그 주변의 시공간이 어떻게 굽어있는지를 수학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블랙홀의 ‘사건 지평선’을 언급한 사람이다.
구형대칭의 천체 주변에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경계면이 존재한다. 이 경계면은 불회귀선으로 이 경계를 넘어서 천체 가까이 다가가면 다시는 바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반면 이 경계면 안의 상태는 탈출속도가 광속보다 크다. 그러므로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기자 주)
블랙홀이라는 이름은 인터스텔라를 자문한 킵손 교수의 지도교수인 존 휠러의 작품으로, 이름이 너무 야하다는 이유로 학술지에서 이 이름의 사용을 거부했다고 한다. 
블랙홀의 특성은 그 안에 진입하는 순간 강력한 중력탓에 온전하게 추락하기도 힘들다는 점이다.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로 빠져든 쿠퍼의 입장에서는 추락하는 동안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에 의한 ‘기조력’ 탓에 계속해서 위아래로 늘려질 것이다. 지구의 경우 높이에 따른 중력차이가 크지 않아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만큼 위치가 변해도 중력가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지만 블랙홀 속으로 들어가면 약간의 위치변화에도 사람의 머리끝과 발끝이 느끼는 중력이 크게 다르다. 쿠퍼든 우주선이든 추락하는 방향으로 길게 늘어지다가 결국에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다.

   
블랙홀 개념도. 이미지=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