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9시, 뉴스 시청자 이목이 한 고위공직 후보자 입에 쏠렸다. 주인공은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판을 벌인 것은 KBS였다. KBS ‘뉴스9’는 11일 톱뉴스부터 문 후보자 ‘망언’ 소식을 전했다. 2011년 문 후보자가 교회 특강에서 한 발언이었다. 그는 일제 지배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백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남북분단을 만들게 주셨어. 저는 지금 와서 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단 관련 발언)

총리 후보자 입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운 망발이었다. KBS는 이어지는 두 번째 <“게으르고 자립심 부족…민족 DNA”>, 세 번째 뉴스 <노골적 ‘정치 편향 칼럼’ 논란>에서도 문 후보자 역사인식과 <중앙일보>시절 쓴 칼럼에 주목했다. 문 후보자는 교회 강연에서 우리 민족이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다고 발언했다. 반면 친일 인사에 대해선 두둔했다. 그가 쓴 칼럼은 권력 교체에 180도로 논조가 왔다갔다 했고, 무상급식과 같은 진보적 쟁점에 대해선 북한을 빗대 폄하했다.

“조선 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 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거 이게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이 사람(윤치호)은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진 않았어요, 비록 친일은 했지만은 나중에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에요. 이 사람 영어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에요. 1881~2년 그때. 그러니 우리는 다 가서 죽어야죠. 우리는 사실 다 죽어야지.” (친일파 윤치호에 대한 발언)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뒤엔 박근혜 당시 의원의 신비주의를 비판했다.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도 발표하지도 않는 박 의원의 휘장을 벗기고 국민이 실체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승리하자 문 후보자의 글은 180도 바뀐다. 동화의 수호천사처럼 역사의 신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지켜준 것 아니냐고 적었다” (세 번째 뉴스 <노골적 ‘정치 편향 칼럼’ 논란> 중 KBS 기자 멘트)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이 논란으로 떠오르자 쓴 칼럼에선, 아이들이 공짜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선 모습이 식량 배급을 타기 위해 줄을 선 북한 주민과 내용면에선 다르지 않을 수 있다며 야권의 공약을 깎아내렸다.” (세 번째 뉴스 <노골적 ‘정치 편향 칼럼’ 논란> 중 KBS 기자 멘트)

   
▲ 11일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 '망언'을 주목한 KBS와 국민TV(하단 오른쪽)
 

길환영 KBS 사장 시절 볼 수 없었던 권력 비판 보도에 동료 언론인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KBS 뉴스의 총리후보 인사검증 보도 대박쳤다”며 “이 분 사적으로 전혀 알지 못하나 과거 쓴 글을 보면 스스로 물러나실 성정은 아닐 듯 싶다. 얼마나 버틸지 무척 궁금하다”고 밝혔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도 “오늘 KBS 9시뉴스 특종을 보고 든 생각”이라며 “1. 역시 모든 것은 사장에 달려 있다. 2. MBC는 제보받아도 안 냈을 거다. 제보도 안 들어왔겠지만. 3. KBS에 곧 김재철 같은 인간이 투입될 것 같아 걱정”이라고 전했다. 제작진이었던 조능희 MBC PD는 트위터에서 “문제는 문창극이 아니라, 문창극을 추천한 사람. 이 사람을 대통령에서 떼어 놓지 않는 한 박근혜 정부 앞날은 뻔하다”며 “KBS 검증팀의 기자정신은 아직도 살아 있다”고 밝혔다.

KBS기자협회 공식 트위터(@KBSgija)는 방송이 끝난 뒤 “오늘(11일) 방송된 KBS 9시뉴스는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시청자분들께 전해드리는 하나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입니다”라며 “많이 봐 주세요. 더 잘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시각, 문 후보자 망발에 주목한 매체가 또 있었다. 국민TV의 ‘뉴스K’는 첫 번째 뉴스 <“6·25는 하나님이 주신 것…일제 때 국민 계몽”>에서 “(하나님이) 6.25를 왜 주셨나?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 주신 거예요”라고 한 문 후보의 영상을 보도했다. 이 역시 교회 설교 가운데 나온 발언이었다.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너무하다 할 수도 있고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저런 말을 하지 할 수도 있겠지만.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예요. (하나님이) 6.25를 왜 주셨나?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 주신 거예요,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 경제개발도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 (6.25 관련 발언)

   
▲ 11일자 MBC, SBS, JTBC 보도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 SBS, MBC, JTBC)
 

반면, 이날 MBC와 SBS는 KBS에 비해 문 후보자 검증에 소극적이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일곱 번째 뉴스 <문창극 후보 ‘책임총리’ 선긋기>, SBS ‘8뉴스’는 다섯 번째 뉴스 <“책임총리, 처음 들어”…논란 부른 답변>에서 책임총리는 자기 역할이 아니라는 식으로 기자 질문에 답한 문 후보 발언을 꼬집었다. 그러나 그가 수십 년 기자 생활에서 쓴 문제적 칼럼이나 논란 소지가 있는 역사 의식 등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반면 JTBC ‘뉴스9’은 <“책임 총리,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문 후보 발탁 배경엔 김기춘 실장?>, <“균형감각 갖춰” “통합 이루겠나”>를 통해 MBC, SBS보다 문 후보 검증에 힘을 쏟았다. JTBC는 열네 번째 뉴스 <문 후보 발탁 배경엔 김기춘 실장?>에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지난해 6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발기인 총회에서 초대 이사로 선임됐다. 그런데 당시 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문 후보자의 발탁 배경에 김 실장의 영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며 인사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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