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새누리당과 민주당, 전국철도노동조합 김명환 위원장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내 철도산업발전 소위원회 구성과 동시에 파업 철회를 합의했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에 있는 철도회관에 모인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각 지부로 돌아가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 조합원은 “(파업을 계속) 해도 부담이고, 안 해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청량리역으로 돌아가는 한 조합원은 거리에 있는 깡통을 차며 지도부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난 9일 수서발KTX 분할에 반대하며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파업 23일차인 31일 오전 11시 현장에 복귀한다. 그런데 코레일과 국토부는 3자 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다. 여야 발표 직후 코레일은 “사전 의견조율이나 별도의 합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코레일 관계자는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국토부에서도 합의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징계 범위와 수위, 손해가압류 등 핵심쟁점에 대한 논의도 국회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합의내용은 3가지다. 1. 여야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산하에 철도산업발전 등 현안을 다룰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설치한다. 소위원회 구성은 여야 동수로 하며 소위원장은 새누리당이 맡는다. 2. 동 소위원회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여·야 국토교통부, 철도공사, 철도노조,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를 구성한다. 3. 철도노조는 국회에서 철도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하는 즉시 파업을 철회하고 현업에 복귀한다.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파업에 돌입한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했고 국회에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철 전 코레일 사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수서발KTX 분할을 인정한 뒤 시작하는 논의는 의미가 없다”며 “청와대 눈치만 보는 여당과 여당 눈치보는 야당인데 합의할 게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노조가 파업을 멈춘다면 정부도 민영화를 중단하고 근본적으로 논의해야 하는 게 조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불가피한 출구전략’이라는 의견도 있다. 지난 2008년 정치권을 통해 투쟁을 마무리한 이남신 전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합의 과정과 내용을 보면 미흡하고, 정치권을 믿을 수 있냐는 문제도 있지만 내부 사정과 분위기를 고려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며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 투쟁과 2, 3차 총파업을 조직적으로 결정한 상황에서 내부에 말 못할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한다”며 말했다.

이남신 소장은 “출구와 자구책 없이 투쟁을 이어가는 것은 최악인데 철도노조는 조합원을 살리는 방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극한투쟁을 주문하는 조합원도 있겠지만 철도노조는 이미 과도한 희생을 치렀다”며 “내용으로 보면 차악이지만 이 선택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 지도부 입장에서도 비판을 감수하고 내린 용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철도노조 입장에서는 합의안이 패착이 되지 않도록 움직여야 한다. 이제부터 더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한지원 연구실장은 “집권 1년차 정부에게 퇴진하라고 하는데 정부는 물러서지 않을 테고 노조는 철저히 망가지거나 백기투항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철도노조는 조직이 살아있을 때 현장에 복귀하는 쪽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단위사업장의 파업으로 시작했지만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등 시민들이 붙고, 민주노총이 결합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이 됐고 철도노조의 출구는 사실상 사라진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단위노조의 파업이 ‘정권 퇴진’ 투쟁으로 확대됐고 이 짐을 국회가 이어받았다는 것. 새누리당의 정치력은 물론 민주당의 명운이 걸린 ‘민영화 싸움’이 시작됐다는 분석이다. 한지원 실장은 “철도노조 파업의 성과는 이전과는 달리 시민적 지지와 연대를 만들었고 정부의 민영화 추진 속도를 늦췄다는 점”이라며 “민영화 반대 투쟁이 반(反)박근혜 투쟁이 됐는데 이제 민주노총과 시민들이 바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남신 소장은 “국회가 파업 철회를 국회의 ‘공’으로 생각하고 철도민영화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는다면 정치인, 정당으로서 직무유기”라며 “이해당사자들을 모아 모든 문제를 터놓고 논의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사기를 친 것과 진배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국회가 개입한 사회적 합의를 보면 내용 없는 합의, 정쟁으로만 흘러 엉망이 될 우려가 있다”며 “우선 손배가압류, 징계 문제 해결을 전제로 국회가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 전 사장은 “민주당이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활용하기 위해) 곤궁에 처해있는 노조를 악용한 것은 아닌가 할 정도로 걱정스러운 상황“이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사상 초유의 파업인데도 야당, 특히 민주당은 제 역할을 못하고 여당에 끌려왔는데 여기서 의미 없는 합의를 한다면 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에 “철도노조가 왜 파업에 나섰고, 국민들이 정부에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철도노조 집행부 및 조합원에 대한 징계를 멈추고 “국회에서 민영화를 포함한 철도발전방안이 논의되는 동안 국민들의 동의 없는 수서발KTX 주식회사와 관련된 모든 일정을 중단해야 할 것”을 촉구했다. 윤순철 사무처장은 “정부가 시민과 노조와 제대로 소통을 못해 파업이 이어졌는데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기로 한 만큼 정부도 이제는 수서발 법인에 대한 모든 법적 절차를 유보하고 진정성 있게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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