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조세도피처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한 재계 인사 명단을 지난 22일과 27일 발표했다. SK 한진해운 한화 OCI 대한항공 등 재벌 대기업의 전현직 임원과 특수관계인 총 12명의 실명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뉴스타파는 오는 30일 명단을 추가로 보도할 계획이다. 김용진 대표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분석 초기 확보한 245명 외에 추가로 분석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명단은 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확인 작업을 벌인 뒤 추가적으로 명단을 공개할 계획이다.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함께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 설립을 대행해 주는 ‘포트컬리스 트러스트 넷(PTN)’과 ‘커먼웰스 트러스트(CTL)’ 내부 자료에 담긴 13만 명의 고객 명단과 12만 2000여개의 회사를 분석했다. 28일 현재 버진아일랜드과 쿡아일랜드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거나 주주로 참여한 재계 인사는 다음과 같다.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부인, 조욱래 DSDL 회장(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막내 동생)과 아들, 최은영 한진해운 현 회장과 조용민 전 대표이사, 황용득 현 한화역사 사장, 조민호 전 SK 케미칼 대표이사 부회장과 부인, 이덕규 전 대우 인터내셔널 이사, 유춘식 전 대우 폴란드 차 사장.

   
▲ <뉴스타파> 조세피난처 2차 명단 발표
 
국세청이 직무를 유기한 동안 언론이 나서 역외 탈세를 감시하고 있다. 국세청은 뉴스타파가 보도한 뒤에야 세무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미국 영국 호주의 세무당국에게 관련 자료를 받아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국세청의 늑장 조사를 두고 김용진 대표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중소기업의 이름도 많이 확인되고 있는데, 국세청이 이 흐름을 포착 못 했겠나. 움직임은 알고 있었을 것이라 본다. 국세청이 조세피난을 방치해 왔다.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행법상 조세도피처에 유령회사를 만든 한국인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 정상적인 법인 설립이라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소장)는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한 것 자체는 위법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이 회사를 통해 어떤 탈세와 위법행위를 했는지 밝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복수의 취재팀을 꾸리고 구체적인 탈세 정황과 증거를 찾고 있다. 김용진 대표는 “기업과 재계 임원들이 아무 동기 없이 회사를 만들겠느냐”면서 “입증하기 쉽지 않겠지만 사례별로 페이퍼 컴퍼니 설립 전후로 (해당 기업의) 경영권 승계, 인수·합병, 주가 변화 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대표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이상의 액션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조세도피처로 (수익을) 빼돌리거나 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국가재정과 재원 확보에 있어 심각한 타격”이라며 “국세청은 단순히 세무조사를 벌일 것이 아니라 국가재정과 조세정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재벌닷컴이 자산 1조원 이상 대기업의 역외법인을 조사한 결과, 삼성 등 24개 국내 대기업이 케이만군도 버진아일랜드 파나마 등 조세도피처에 설립한 법인은 총 125개다. 삼성전자는 파나마에 자산총액 3535억7200만 원의 법인 두 곳이 있다. 현대자동차는 케이만군도에 자산총액 907억4500만 원짜리 ‘China Millennium Corporation’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SK의 경우 SK해운의 파나마 법인만 52곳으로 총 63곳이다. 한화는 케이만과 버진아일랜드에 총 4곳(1조6822억3300만 원), LG는 파나마에 3곳(자산총액 3341만5900만 원), 롯데는 버진아일랜드와 케이만과 모리셔스에 12곳의 법인(2061만7200만 원)을 두고 있다. 동국제강은 파나마와 마샬군도에 6곳의 법인(1793억3300만 원), NHN은 케이만에 자산 8300만 원짜리 법인이 있다.

강병구 교수는 “이명박 정부 기간 법인세 감세 정책으로 큰 혜택을 본 대기업이 곳간에 현금을 쌓아놓고 투자와 고용을 늘리지 않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이 조세도피처를 활용해 절세 또는 탈세를 하려는 행위는 국민적 감정에 비춰봤을 때 받아들이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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