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자유무역협정(이하 한미 FTA)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 2007년 FTA를 통해 실질 GDP가 0.48% 정도 추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10년에 걸쳐 0.76% 추가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2011년 8월 정부는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재분석하면서 대미 수출은 연평균 12.9억 달러 증가하고, 실질 GDP는 0.02% ~ 5.66%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환상적 예측”이었다.

한미 FTA가 1년밖에 안 돼 평가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있어 FTA의 잠재력은 매우 크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정부는 FTA를 위한 제도 개혁을 계속 추진했다. 23개의 법률을 포함 총 63개 법령을 개정했고, 앞으로도 수십 개 법률을 추가로 개정해야 한다. 정부는 “FTA와 공공부문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그 사이 철도, 에너지, 보건의료 등 분야에서 민영화 얘기가 흘러 나왔다.

13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1년, 쟁점과 전망> 토론회에서 FTA 비판론자들은 정부의 예측을 검증하고 한미FTA 1년을 평가했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정태인 원장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을 거론하며 “FTA의 효과를 통계로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도 “수출이 급증해 GDP 증가율이 매년 0.76% 정도 늘어 십년 뒤 7.61%가 증가할 것이라는 정부 홍보가 과장이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대미수출 4.1%증가가 FTA 때문? 2011년 증가율은 12.8%

한미 FTA와 한EU FTA의 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분석이다. 정부는 지난해 대미 수출이 4.1% 늘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태인 원장은 “대미 수출증가율은 2010년부터 급감하고 있으며 2011년의 12.8%에 비하면 4.1%는 매우 미미한 증가라고 평가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지적했다.

한-EU FTA 효과는 아예 없었다. 지난해 대EU 수출증가율은 –11.4%였다. 정 원장은 “이런 결과는 무엇보다 세계적인 장기침체 때문이지만 이런 상황을 무시하고 대미 수출 증가율 4.3%를 한미 FTA의 효과라고 선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 대미국 대EU 수출 수입 증가율. 금융위기 이후 치솟았던 수출증가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정태인 원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이 같은 분석은 한국과 FTA를 체결한 전체 국가 및 권역(아세안·EU·미국·싱가포르·인도·칠레·EFTA·페루)으로 확대해도 유효하다. 관세청은 올해 1월 FTA 체결국과 교역 현황을 발표하면서 이들 국가에 대한 수출 증가율을 평균 2.1%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정태인 원장은 절대 수치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은행이 발표한 전체 수출 증가율 3.7%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 관세청이 지난 1월 발표한 '2012년 FTA 체결국별 교역 현황'. 정태인 원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품목별 수출증가율로 보면 자동차(18.1), 선박(165.7), 비금속제품(57.0), 공구(42.9), 기타비금속(17.8) 등이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러나 자동차의 경우 한미 FTA 이전부터 수출이 증가하고 있었고, 관세율 인하폭을 고려했을 때도 FTA 효과는 없었다고 정태인 원장은 분석했다. 그는 “예컨대 관세 축소 폭만으로 보면 섬유분야의 수출이 가장 크게 증가해야 하지만 섬유 의류 역시 수출증가율은 감소했으며 FTA의 효과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 주요 품목별 대미 수출증가율. 정태인 원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이득 본(볼) 건 결국 초국적 자본과 재벌 대기업

그렇다면 잇따른 FTA 체결로 이득을 본 국가는 어디고, 그 산업은 무엇일까.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한미 FTA가 보건의료분야와 공공분야의 민영화를 촉진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작동하였고 친시장적인 제도 변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FTA 1단계에 한국이 초국적 자본을 위한 공공부문 민영화와 금융세계화를 위한 제도 개혁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지난해 4월 정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시행력과 시행규칙을 제정하고, 10월 보건복지부는 시행규칙을 공표했다. 제주도와 인천 경제자유구역 내 초국적 자본과 재벌 대기업이 운영하는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이다. 우석균 실장은 “이는 한미FTA가 사실상 최초의 국내영리병원, 그것도 삼성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구체적 정책을 추동한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민영의료보험 규제 완화 흐름도 문제다. 민영보험 부문은 한미 FTA 금융서비스 분야 협정의 적용 대상이다. 보험연구원이 지난해 6월 작성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민영의료보험시장의 변화’에 따르면,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보험회사가 당연지정제 폐지와 요양기관에 대한 심사권한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요양기관 심사권한의 경우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의 제소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석균 실장은 “최근 보험정보원 설립 등의 움직임은 업계의 이해관계 때문에 일단 추진이 중단된 것으로 보이나 이는 보험개발원의 심사평가원을 통한 공적 건강보험정보 즉 개인질병정보의 민영의료보험회사와의 공유 추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추진하는 보험정보의 공유와 보험회사의 직간접적 의료기관 심사 등 직접 계약허용 등의 움직임을 가속화 하는 동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밖에도 우석균 실장은 담배광고 규제가 ISD 제소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지난 2005년 ‘세계보건기구 담배규제기본협약(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Framework Convention on Tobacco Control)’에 가입했다. FCTC는 담배광고의 포괄적 금지를 통한 강력한 규제를 특징으로 하고, 한국의 경우 가입 후 5년이 지났기 때문에 준수 의무가 있는데 담배광고 규제를 추진할 경우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처럼 ISD 등의 위험성을 안게 된다는 것이 우석균 실장의 분석이다.

FTA로 공공부문 민영화는 되돌릴 수 없게 됐다

공공부문 민영화도 도마에 올랐다. 우석균 실장은 한미 FTA와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 철도·발전·가스 민영화의 관계를 짚었다. 2009년 7월 개통한 지하철 9호선은 민간투자사업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사업자는 30년 동안 정해진 범위에서 운임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특히 한미 FTA 이전 요금 결정의 최종권한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고, 법적 보상도 국내법에 따랐지만 발효 뒤 사정은 달라졌다. 한미 FTA는 ‘정부가 독점사업자로 지정한 정부·민간 소유기업(designated monopoly)’에 대해 상업적 고려, 비차별적 대우, 반경쟁적 행위 금지 등 의무를 부여했다.
 

   
▲ 한미 FTA 공공서비스 관련 정부 규제 권한. 우석균 실장 발제문에서 갈무리.
 

철도, 발전, 가스 등 민영화 문제도 심각하다. 한미 FTA에 따르면, 민영화된 부문은 역진방지조항에 의해 되돌릴 수 없고, 미래유보사항에 해당되더라도 수용 및 보상 대상이 된다. 특히 발전의 경우, 외국자본 지분을 30%로 제한했지만 1~2개는 민영화될 가능성이 높다. KTX는 관제권 이관을 수순으로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는 분위기다. 가스의 경우 도매부문에서 외국에서 가스를 직도입하는 기준이 완화돼 민영화를 앞두고 있다. 6차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12개 신규발전 중 8개를 민자회사에 넘길 계획이다.

이에 대해 우석균 실장은 “결국 정부의 한미 FTA와 철도, 전기, 가스 민영화가 무관하다는 것은 한미 FTA 이전과 달리 전기, 철도, 가스 민영화가 모두 구체적 현안의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거짓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면서 “이에 더해 인천공항, KS 마크, 면세점 등의 민영화가 추진되는 것도 ‘한미FTA가 민영화로 일방통행로’라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영세상인을 위한 법개정은 불가능하다

한미 FTA를 위해 한국의 법·제도는 변신 중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외교통상인위원회 소속 김종보 변호사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23개 법률을 포함해 총 63개의 법령을 개정했다.

최근에는 ‘우체국예금‧보험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우체국이 더 이상 새로운 보험상품을 개발할 수 없게 됐다. 저작권 위반이 친고죄에서 비(非)친고죄로 바뀌었다. 제약회사 간 특허분쟁이 있을 경우, 허가가 자동정지되는 기간 및 분쟁에서 승소한 업체가 갖는 독점기간도 새로 결정해야 한다. 2014년 초까지는 KT·SKT를 제외한 기간통신에 대해서도 외국법인에게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일례로 정부는 올해 7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던 ‘저탄소차 보조금 제도’를 오는 2015년 1월로 연기했다.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소형차 구매자에게 최대 300만 원까지 보조금을 지급하고, 중·대형차에 부담금을 물리는 내용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난해 6월부터 이 제도가 한미 FTA 위반이라며 제도 도입 포기를 요구했다. 정부는 시행시기를 미뤘지만 도입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를 살리는 방법은 더 어려워진다. 김종보 변호사는 “미국정부는 2013년 1월, 한국 정부의 에서 한국 정부와 공기업에 위 장비를 납품하려는 중소기업을 우대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이 한미 FTA 위반이라며 개정 요구 공문을 발송했다”고 전했다. 2012년 4월에는 미구계 대형 할인점 코스트코와 타 사업장의 카드 수수료 차등에 대한 시정이 한미 FTA에 위반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부실화도 우려된다. 2013년 2월 동반성장위원회는 외식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지만 미국기업이 이를 지키지 않고 한국 정부가 이를 규제할 경우 FTA 위반 소지 가능성도 있다.
 

   
▲ 한미 FTA를 위해 개정한 법률들 목록. 김종보 변호사 발제문에서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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