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최근 보도국장의 의지에 따라 ‘용산참사’란 표현을 ‘용산사건’으로 보도하며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KBS기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9일 김시곤 보도국장은 부장단이 참석하는 오전편집회의에서 용산참사라는 용어를 용산사건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KBS 기자협회는 “(김시곤 국장이) 용산참사라는 표현이 당시 경찰의 강제 해산에 대해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변경 취지를) 말했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이를 두고 “용어 사용을 개선해보자는 제언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사용하지 말라는 논지였다”고 주장했다.

결국 29일 KBS <뉴스9>는 네 번째 리포트 ‘이 대통령, 최시중·천신일 등 55명 특사 강행’에서 “용산사건과 관련해 수감된 철거민 5명도 사회통합 차원에서 특별 사면됐다”고 보도했다. 대다수 언론이 ‘참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KBS가 ‘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뭘까.

김시곤 KBS보도국장은 3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객관적 표현을 위해 수식어를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힌 뒤 “참사란 단어를 쓸 경우 몇 명까지 숨져야 참사라고 할 것인지 판단이 어려워 사건이라는 표현이 보도에 적절하다”고 밝혔다.

KBS홍보실 관계자 역시 “사회 논란에 대해선 최대한 중립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보도국 방침”이라고 전한 뒤 “김시곤 국장은 ‘참사’를 ‘사건’으로 바꿔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개진했고 이 과정에서 부장들의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지시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 2009년 1월 용산참사 현장.
 

용산 참사는 2009년 1월 서울 용산에서 경찰이 철거에 저항하는 주민들을 강제로 진압하던 중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화재로 사망하며 벌어졌다. 언론은 사건의 참혹성과 공권력의 문제, 여론의 경중을 판단해 ‘참사’라는 표현을 줄곧 써왔다.

KBS 기자협회는 “공정보도는 주제 의식이나 시각도 중요하지만 용어 선택 하나도 아주 중요하다”며 “수많은 데스크들과 기자들이 사용해온 용어를 국장이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문제라 생각하고 공개 토론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최문호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보도추진위원회 간사는 “참사란 단어에 경찰이 잘못했다는 취지가 있으니 (단어를) 바꾸라고 했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것”이라며 “보도국장이 공정보도를 위해 용어 변경을 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도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말을 한 것이므로 기자입장에선 지침으로 받아들일 소지가 크다”고 전했다.

‘참사’에서 ‘사건’으로 용어가 변경되면 시청자에게는 상이한 시각을 안겨줄 가능성이 높다. 예컨대 1980년 5·18을 두고 공권력이 지칭했던 ‘광주사태’와 민주화세력이 지칭한 ‘광주항쟁’은 똑같은 사건을 두고 용어에 의해 다른 역사인식을 안겨준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번 논란에 대해 “용산의 경우 억울한 피해자를 고려해 ‘참사’라는 용어가 자연스럽게 쓰여 왔는데 가해 사실 자체를 은폐하는 어감의 용어로 전환시킨다는 시도로 보인다”며 “중립적일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중립적 단어를 쓰는 것 자체가 이데올로기적인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