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정권 말에서야 뒤늦게 '총체적 부실'이라고 결론 내린 감사원이 감사결과를 발표하는 순간에도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이다. 방송3사 역시 중대한 사안임에도 메인뉴스 뒷부분에 배치해 '아이템 뭉개기' 아이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감사원은 17일 '4대강 살리기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 및 수질 관리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4대강에 설치된 16개 보 가운데 이포보를 제외한 15개 보에서 보의 바닥 보호공이 유실되거나 침하된 것으로 드러났다. 6개 보 1246곳에서 모두 균열이 일어났던 것으로 조사됐고 6개 23곳에서는 누수현상이 확인됐다. 또한 16개 보 안의 수질은 2005~2009년의 평균치와 비교할 때 화학적 산소요구량은 9% 증가했고, 조류 농도는 1.9% 증가돼 전반적으로 악화됐다는 결론이 나왔다.

감사원은 출입기자들에게  이날 오후 4시40분 경 '5시에 관련 자료를 보내겠다'는 문자를 발송, 5시경 관련 자료를 이메일로 발송했다. 감사원 공보실과 기자단 간사 등은 이 자료를 6시 반 이후 보도한다는 엠바고를 걸었다. 

▷감사원 '오후 5시' 발표자료 전송…"꼼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감사 발표 시점을 두고 '감사원이 꼼수를 부렸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4대강 사업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매우 중대한 사안임에도 감사원이 통상 오후 3~4시인 언론사 기사 마감 시간보다 늦게 자료를 제공한 것이다.

한 감사원 출입기자는 "내용을 검토하고 쓸 수 있게 일찍 자료를 보내야 하는데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감사원 쪽은 감수위원회 결론이 오후 3시경 나와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차라리 월요일로 엠바고(일정시점까지 보도 유예)를 걸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이 급박하게 발표해 언론사들이 이번 사안을 제대로 취재할 수 없었고, 주말(19~20일)을 지나면서 4대강 사업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희석돼 그만큼 파급력이 희석된다는 말이다. 통상 뉴스에 대한 관심도는 주말 동안 떨어진다는 게 언론계 정설이다. 

   
감사원. (이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CBS노컷뉴스
 

한 기자는 "제대로 보도 못 하게 하려는 꼼수다. 보도자료는 낸 방식이 황당해서 이런 의심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의 경우 제대로 보도를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란 말이다.

감사원 공보실 관계자는 “발표 시점과 관련해 정치적 고려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며 “다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특정 언론이 먼저 보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목요일 늦게라도 발표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MBC '17번째', SBS는 '19번째' 보도  보도량과는 별개로 방송사들은 이번 발표를 메인 뉴스 뒷부분에 배치했다. SBS '8시뉴스'는 19번째 꼭지('감사원 "4대강 보 균열 심각…수질 악화 우려"), MBC '뉴스데스크'는 17번째 꼭지(감사원, "4대강 보 총체적 부실"‥감사결과 발표), KBS '뉴스9'(감사원 "4대강 사업 부실…수질 악화 우려")는 8번째 꼭지로 보도했다. 중요한 사안일 경우 6~7번째 꼭지 내에 배치하는 것이 통상적인 방송뉴스 편집이다.

신문들이 18일 이 소식을 1면에서 보도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경향신문·세계일보·조선일보·한국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고, 국민일보·서울신문·한겨레가 1면에서 보도했다. 신문사들은 이 사안을 매우 중요하게 다룬 데 비해 방송사들은 보도가치에 대해 달리 판단한 셈이다.  

MBC나 SBS의 경우 메인뉴스가 8시 방송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감사원이 기사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 발표했기 때문에 기사 작성 송고 및 편집에 시간이 걸려 뉴스 앞쪽에 배치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한 방송사 기자는 "3시간이면 충분하다. 기사 한 꼭지당 한 사람이 편집하기 때문에 중요한 뉴스라고 판단되면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뉴스 앞쪽에 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양철훈 SBS 보도국장은 "SBS 뉴스는 드라마와 드라마 사이에 방송되기 때문에 기사 밸류가 아니라 시청률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배치한다"며 "4대강 감사가 중요한 뉴스가 될 수 있겠지만 시청률을 올리는 데 중요한 뉴스인지는 별개의 사안이다"고 해명했다. SBS는 17일 '인수위, '공약 폐기·속도 조절' 정면 반박'을 톱기사로 걸었다.

김홍식 KBS 홍보실장은 "KBS는 공영방송이자 재난주간방송이기 때문에 영동 폭설 사태를 주요하게 다뤘다. 관점의 차이이겠지만 폭설이 내리면 주민  및 교통 불편 등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4대강 감사보다 앞쪽에 배치했다"고 해명했다. KBS는 17일 '동해안 50cm 폭설…출근길 불편·혼란'(톱기사) 등 폭설 소식을 2꼭지, 독감 유행 주의 소식을 2꼭지로 4대강 감사 결과보다 앞쪽에 배치했다.  

황용구 MBC 보도국장은 "바빠서 전화 받지 못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MBC는 17일 '동해안 50cm 폭설 설국으로‥곳곳 불편 잇따라'(톱기사) 등 폭설 소식을 4꼭지, 독감 소식을 2꼭지 보도했다.

   
▲ MBC '뉴스데스크' 4대강 보도(사진출처=화면 캡처)
 

중대한 사안을 보도는 하지만 뉴스 뒤쪽에 배치하는 것은 일명 '아이템 뭉개기'다. 눈에 띄지 않게 배치함으로써 뉴스 가치를 떨어뜨리는 편집방식이다.

이재훈 MBC 민주언론실천위원회 간사는 "사안의 중대성이 비해 보도량 자체가 상당히 적은 것 같고 이 정도 사안이면 뉴스 앞쪽에 배치하는 것이 맞다"고 지적했다. 이 간사는 "4대강 사업에 대해 잡음이 많았는데 MBC가 그 동안 언론의 감시 기능을 고의적으로 포기하면서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 발표했음에도 뒤쪽에 배치한 것은 지금까지의 행태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않은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신문 "총체적 부실" VS KBS "일부 부실"  4대강 사업 감사 결과에 대한 해석도 차이가 있었다. 조선일보가 "모든 면에서 심각한 부실을 안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이 "4대강 사업이 부실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하는 등 신문들은 대부분 '총체적 부실'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KBS는 "수중보는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수질도 악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면서도 "4대강 사업이 일부 부실하게 진행된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MBC는 "현 정부의 핵심 사업인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고 했다. 감사원이 발표한 부실의 정도를 '총체적'이 아닌 ‘일부’로 본 것이다. 

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는 "이제까지 방송사는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묵살하는 태도를 취해왔다"고 비판했다. 또한 지난 5년간 4대강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침묵하다 정권 말기 비판논조를 취하는 보수 언론들도 꼬집었다. 박 기자는 "일부 언론은 이 문제를 갑자기 물고 늘어지는데, 이는 권력이 강할 때는 약하고 권력이 약할 때는 강해지는 모습은 카멜리온,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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