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사당동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만난 공유정옥 노동보건 활동가(의사)는 한국 전문가를 대상으로 설문했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내다봤다. 공유씨는 “한국의 산업보건 전문가들도 전반적으로 반올림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만 표명을 안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공유정옥씨는 지난해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전자산업 직업병 문제를 지적했고, 당시 삼성전자 직업병 논란을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데에 참석자 100여 명 중 성균관대 교수 한 명을 제외하곤 아무도 이의를 제기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인바이런 보고서는 희귀암 발병 환자들이 삼성에 근무했을 당시 작업환경에서 유해물질 노출 상황을 조사하지 못한 채 삼성이 제출한 자료를 근거로 일부 작업장에 한해 조사해 한계점이 지적됐다. 공유정옥씨는 “인바이런사의 조사발표 당시 나는 ‘지금 유해물질 벤젠이 없으면 10년 전에도 없는 거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공유정옥씨는 최근 <직업환경보건 국제저널>에 ‘한국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에게 나타난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실으며 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다수의 혈액암 케이스가 한국 삼성전자에서 발견됐다는 게 논문의 핵심이었다”며 “우린 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했고 어떤 병에 걸렸는지 발병 자체를 기록했다. 이 사례는 단일사업장에서 집단 발병한 암을 보고한 드문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 5년간 반올림의 활동 없이는 불가능했다. 반올림은 지금껏 160명 이상의 직업병 피해 제보를 수집해 한국 반도체·전자산업 노동자 건강권의 심각한 현실을 사회에 알렸다. 공유정옥씨는 “올해 4월 삼성에서도 처음이고 반도체에서도 처음으로 산재 인정자(김지숙씨)가 나왔다. 우리가 싸운 뒤로 현장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도 들었다. 없던 보호구를 만들거나, 냄새가 올라오지 못하게 막거나 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의 직업성암 추정 수치는 매년 6500명으로, 전체 성인암의 4%다. 그런데 6500명 중 5%만 산재를 신청하고 신청자 중 10%만 산재로 인정받고 있다”며 “결국 지금 일하고 있는 분들이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스로 목소리를 내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산업재해 문제는 단순히 삼성과 이명박 정부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스스로 입증할 수 없다면 산재로 보기 어렵다는 식으로 지금껏 일관해온 모든 기업과 정부의 문제다. 그는 오는 12월 27일 마지막 2심 공판을 앞두고 있는 고(故) 황유미·이숙영씨의 산재 판결 여부가 산재보험제도의 해묵은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시사IN보도에서 나타난 설문조사결과에 대해 “삼성 주장이 제일 낮은 신뢰도가 나왔는데 삼성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설문조사에서 제대로 설명됐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