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동조합이 22일 개최한 "언론의 실종-대선보도 어디로 갈 것인가" 2012년 대선보도 점검 긴급토론회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번 토론회는 수십년간 개선되지 않았던 불공정보도, 후보 중심의 보도, 동정보도, 경마식 보도, 네거티브 보도, 지역감정 조장보도, 신뢰도가 의심되는 여론조사 보도 등 대선보도의 해결책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마련이 된 자리인 만큼 심각한 분위기를 예상했다.

하지만 박 후보의 시시콜콜한 행보를 추적한 기사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토론회 참가자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보통 정치인의 행보를 따라가는 동정 보도는 이미지만을 부각시키는 위험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박 후보의 행보를 쫓는 연합뉴스의 보도는 손발이 오그라질 정도로 박 후보의 인간미에 초점을 맞추면서 오히려 웃음을 유발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10월 25일 <박근혜 심야 당사 깜짝방문>이란 제목으로 "이날 (박 후보는) 카카오톡을 방문해 '애니팡'을 한 게 화제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이렇게 실력이 좋나 하면서 열심히 했다. 세로 가로 막 해서 팡팡 막 터졌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고 보도했다. 이어 "박 후보는 이날 아이패드를 이용해 직원들과 '애니팡'게임에 도전했다가 4천여점의 점수를 얻자 '(게임할 때는) 딴 생각하면 안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음날에는 <새누리 '인간 박근혜' 이미지 심기 주력>이란 해설성 박스 기사를 통해 "전날 보여준 (박 후보의) 모습이 기존의 '올드하고 고리타분하다'는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연출한 것이 아니라 박 후보의 본 모습이라는 것이 측근의 설명"이라는 보도가 뒤따랐다.

연합뉴스는 지난 11월 12일과 13일 각각 <전국투어 재개한 박근혜..."민생 속으로">, <박근혜, 호남 이어 충청서 민생 행보 박차>라는 기사에서도 박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화하면서 이미지를 적극 부각시켰다.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박 후보는 현미 가래떡을 맛보면서 "떡국을 먹을 때도 현미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는데 맛이 진한 것 같다"고 말했고, 시금치, 황금 송이 등을 구입하면서 돈을 안 받으려는 주인에게 "염치가 없어서 안된다"며 돈을 쥐여줬다. 또 박 후보는 한 미혼 공무원이 "당분간 혼자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박 후보는 "연애도 하셔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강훈상 연합뉴스 사무국장은 "예수님을 기록한 성경도 이렇게 쓰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보도는 이미지 심기를 부각시키려는 쇼인데 언론이 나서서 자세히 써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연합뉴스 여당 출입 기자들은 박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적극 기사화하고 있는 반면 야당 출입 기자들은 이같은 보도를 문재인-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적용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 사무국장은 "이미지 보도는 상당히 위험하다"며 "본 모습도 아닌데다가 선거를 정책 대결로 주도해서 시원치 않을 판인데 능수능란한 이미지 조작에 유권자들이 속고, 언론이 일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사무국장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정책 결정 주도권을 가진 여당 출입처에 연차가 높은 기자들이 야당 출입처보다 많이 배치되면서 나타난 현상임을 지적했다.

대선 보도의 문제점에 대한 임장혁 YTN 공정방송추진위원장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대선 때마다 불거지는 중계-나열식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 "기자들이 각 캠프의 입장을 나열하는 것이 중립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수"라면서 "정치적으로 오해받는 것은 빼고 워딩만 써라는 것이 답습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논리를 가지고 있는 쪽에서 보면 굉장히 불리한 역불공정 보도를 낳게 된다. 중립의 탈을 쓴 단순 나열식 보도를 탈피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 위원장은 "결국 사람의 문제다. 불공정 편파 왜곡보도에 줄을 서는 사람과 무능력한 사람이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임 위원장은 중계-나열식 보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대선을 앞두고 출입처를 떠나 뉴스 사안별로 취재하는 팀을 꾸리는 안을 내놨다.

장형우 서울신문지부 사무국장도 "정치부 기자들이 특정 후보의 프레임대로 뉴스를 전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면서 다른 부서의 출입처보다 정치부 소속의 기자들이 취재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기자 100여명을 꾸려 대선 뉴스를 감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놓은 SBS도 대선 보도에서 기자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호원 SBS 공정방송위원장은 "일선 기자들도 (중계-나열식 보도에 대해)'뭐 이 정도면'이라는 의식이 강하다"면서 "문제 의식이 떨어진 것인데 해당 기자들이 문제를 지적받고 부끄러워야할 수준이라는 정보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훈 MBC 노조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도 "모든 기자들이 의무적으로 모니터해서 의견을 취합해 게시판에 띄우는 형식으로 우리 뉴스를 평가해서 정치부의 편파뉴스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여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문호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부문 간사는 최근 KBS 뉴스에서 후보단일화에 대한 네거티브 보도가 나타나고 있다며 "후보 단일화에 대한 네거티브 보도는 안철수 후보 지지층이 투표장으로 오지 않는 결과 초래할 것이다. 단일화 보도의 목표는 정치 무관심과 혐오로 투표율 낮추는 목표로 보여진다"고 꼬집었다.

대통령 선거일 직전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터질 경우 언론 보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006년 5월 20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지원을 벌이다 지충호가 휘두른 커터칼에 피습당해 얼굴을 다친 사건이 발생했는데 박 후보가 입원 중인 병원에서 "대전은요"라고 말해 대전 선거를 염려한다는 메시지가 전해지자 대전 지역에서 크게 뒤지던 한나라당 후보의 여론이 단숨에 바뀐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4. 11 총선 당시 막바지에 터졌던 '김용민 막말 사건'를 둘러싸고 언론들의 파상적인 보도행태도 문제가 됐다.

장지호 언론노조 정책실장은 "불과 2~3%의 지지율 차이로 선거의 승패가 결정되는 총선의 소선구제나 대선의 단순다수제 방식 때문에 선거 막판 돌발 이슈에 대한 대응이 매우 중요해졌다"면서 “대선 쟁점과 후보를 둘러싼 의혹, 주장, 발언 등 진위와 효과를 검증하는 사실 확인팀을 가동하면 선거과정이 보다 투명해지고 돌발 이슈에 의한 네거티브 선거의 위험성도 감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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