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은 언론사에게 ‘대목’으로 불린다. 특히 신문사는 이 기간 지면을 통해 ‘기획’의 이름을 달고 백화점DM(Direct Mail) 수준의 기사형 광고를 내보낸다. 관행으로 굳은 일이다. 9월 말 추석을 앞두고 신문사들이 다시 선물 진열에 나섰다. 주요 일간지들은 지난주부터 주요 독자층을 고려한 기획기사나 종합선물세트식 기사형 광고를 지면에 게재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9개 중앙일간지의 추석특집 지면을 분석한 결과, 모든 일간지가 '추석선물 세트'를 방불케할 정도의 기사형 광고를 내놓았다. 종합선물세트식으로 기사형 광고를 배열한 지면은 9개 일간지에 공통적으로 발견됐다. 독자층을 고려한 지면도 눈에 띄었다. 아웃도어를 사랑하기도 하고(경향‧동아), 갱년기에 접어든 부모의 건강을 위해 병원을 소개하거나(조선), 약을 파는 경우(조선‧중앙‧동아)도 있었다. 명절후유증을 해결하자며 가전제품을 소개한 신문사(중앙‧동아‧국민)도 있었다.

▷조중동의 무기는 바로 ‘별지’=조선‧중앙‧동아일보의 경우, 타사에 비해 10~20면의 지면이 있다는 것이 특집기사 유치의 강점이다. 조중동은 모두 별지에 특집기사를 내보냈다. 특히 장년층, 노년층을 위한 선물 제안이 눈에 띈다. 선물 소개를 쉬는 날엔 기업 홍보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주요 독자층에 집중했다. 조선은 18일자 별지 ‘추석 선물은 건강입니다’에서 갱년기에 접어든 부모세대에게 필요한 수술이나 시술을 제공하는 병원 10곳과 함께 건강보조제와 의약품을 소개했다. 특히 조선은 이 기사에서 40~50대 이상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의 원인으로 척추관협착증, 두통 및 어지럼증, 성기능장애 등을 거론하며 보형물 삽입술 등 관련 수술을 권했다. 조선은 이밖에도 20일자 별지 ‘조선경제’에서 7개면에 걸쳐 24개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소개하는 기명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18일자 별지 3개면에 추석 선물 세트를 전시했다. 20일자 별지에는 14개 대기업 건설사의 현황을 나와 있다. 특히 중앙일보 19일자 별지 ‘부모님 사랑합니다’에는 객원기자도 등장해 6개면에 선물 기사를 재차 소개했다. 이 기사를 쓴 객원기자는 2010년 추석부터 명절 선물 관련 기사를 써 왔다.

중앙일보의 타깃도 중장년층으로 보인다. 중앙은 21일자 별지 ‘국내 제약 경쟁력’에서 제약사의 연구개발 필요성을 강조하는 머리기사를 내보냈다. 그러나 5개면에 걸친 기명기사 8개는 대부분 해당 제약사의 상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동아일보는 17일자 별지에 롯데백화점 MD와 자사 기자가 트렌치코트를 소개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18일자 별지 ‘기업이 미래다’에서는 1개면에 3개 기업씩 총 15개 기업을 소개했고, 이튿날 별지 ‘Food&Dining3.0’에서는 가전제품과 요리를 소개했다. 20일자 ‘아웃도어’에서 동아일보는 총 5개면에 15개 업체의 상품을 소개했다. 21일자 별지 ‘Bio 의약’에서는 1개면에 2개 기업씩 총 5개면에서 제약회사와 약을 소개했다. 모두 기명기사로 중앙일보와 비슷한 형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추석특집면을 두고 자성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조중동의 경우 기자의 이름이 명시된 ‘기명기사’도 많다. 추석특집면 제작에 참여한 한 일간지 기자는 “광고주가 움츠려들면서 신문사들의 수익구조와 영업환경이 악화되고 있어 기획특집면이 사실상 광고와 연결되는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이 기자는 “상품에 대한 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면서 “광고하듯 기사를 쓰는 것은 신뢰성을 깎아먹을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을 위해 LG와 삼성 소개?=국민일보는 ‘생활경제’면에서 추석선물세트와 LG와 삼성의 가전제품을 그대로 노출하며 추석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국민일보는 10일자 생활경제면에서 이마트, 롯데마트, 신세계‧롯데백화점의 선물세트와 LG생활건강, 애경, 락앤락, 인삼공사의 선물세트도 소개했다. 국민일보는 이어 17일자 같은 면에서 “명절 음식 조리, 엄청난 양의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처리는 주부들에게 명절증후군을 주는 대표적인 요인”이라며 LG전자 디오스 광파오븐, 삼성전자 지펠 세라믹 오븐, 독일가전 밀레의 식기세척기 G5510SC 등을 소개했다. 이에 대해 국민일보 산업부 기자는 “생활경제면 기사는 특집이나 광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의성에 따라 기자가 직접 기획하고 쓴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는 이튿날부터 ‘광고특집’을 내보냈다. 18일자 14~15면에는 추석선물 나열 지면을 내보낸 데 이어, 20일자에는 16~17면에는 ‘해외 건설 특집’을 실었다. 여기서 국민일보는 현대, 삼성, 대우, 포스코 등 총 8개 대기업 건설사의 해외 건설 수주 실적과 공사 현황을 소개했다.

광고특집은 기사형 광고(advertorial)를 지면에 싣고 광고주로부터 비용을 받는 지면이다. 여기에는 광고국이 관여한다. 기업에게 자료를 받아 기자에게 이를 넘기는 역할을 한다. 국민일보 산업부의 간부는 “기업이 원하는 기사를 쓰고 광고비를 대신해 비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춥다… 어디 입을 옷 없나?=이에 반해 별지를 자주 내지 않는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은 상품소개 기사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경향은 2차례고 나머지는 1차례다. 서울신문과 한국일보는 모두 19일자 18~19면에 걸쳐 각각 15개, 18개 상품을 소개했다. 한우, 주류, 건강보조식품 등으로 상품도 거의 같다. 세계일보는 21일자 별지 2개면에 걸쳐 상품을 소개했다.

경향신문은 지난 19일자 2개면에 19개 회사의 추석선물세트를 소개한 뒤 이튿날에는 아웃도어를 소개했다. 경향신문 관계자에 따르면 이 지면들은 경향 광고팀에서 기업 홍보팀의 자료를 받은 뒤 만들어졌다. 경향신문 관계자는 통화에서 “경향은 한두 달에 한 번씩 기획특집면을 내보내는데 회사 사정이 어렵고 아쉬워서 하는 것도 더러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조금 달랐다. 한겨레는 14일자 20~21면에 선물세트를 소개했다. 그러나 지면 상단에는 중소기업 상품들, 공정무역 제품들, 합리적인 소비 방법 등을 더 비중있게 소개했다. 중소기업 상품 소개 기사를 작성한 권오성 기자는 통화에서 “선물을 받는 사람은 당연히 고마움을 느끼겠지만 주는 사람에게도 의미가 있는 선물을 소개해보자는 차원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 기자는 이어 “상품 자체에 (현재 한국의 경제구조와) 다른 대안적인 의미를 담은 선물을 찾아 배치했다”고 덧붙였다.

(본문 중 국민일보 가전제품 관련 내용 중 일부를 수정하고 ‘생활경제’면에 대해 추가합니다. 국민일보 산업부 기자는 24일 전자우편과 통화로 “생활경제면과 광고특집면이 동시에 언급돼 모두 돈을 받고 쓴 기사처럼 읽힌다. 생활경제면은 특집이나 광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직접 기획하고 쓴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광고특집’면에 대한 내용도 일부 수정합니다. 편집자 주. 9월24일 오후 6시19분 기사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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