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파업 100일을 넘기면서 잇달아 터져나온 아나운서들의 노조탈퇴 및 앵커복귀를 두고 MBC 아나운서 내부에서도 참담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방송사 아나운서라는 직업정신과 정체성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종교적 이유로 업무에 복귀한 양승은 아나운서와 최대현 아나운서에 이어 지난 11일엔 배현진 아나운서가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고 밝히고 파업현장을 떠났다. 배 아나운서는 이날 저녁 곧장 평일 <뉴스데스크> 앵커로 복귀했고, 12일부터는 양승은 아나운서가 주말 <뉴스데스크> 앵커에 기용됐다.

이들의 복귀 사실이 알려지면서 MBC 아나운서 내부에서는 파업전선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참담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양승은·최대현 아나운서가 복귀 결정을 한 지난 7일과, 배 아나운서가 복귀한 11일 MBC 아나운서들은 모여서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한준호 아나운서는 15일 “그 후배들이 올라갔을 때마다 우리는 모여서 ‘왜 싸우는지’, ‘왜 이 싸움이 시작됐는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서로를 다독렸다”며 “마지막에 배현진 아나운서의 경우 아나운서국장도 몰랐을 정도로 주변에 알리지 않은채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같았다”고 전했다. 배 아나운서는 사내게시판에 앵커복귀 사실을 알린 당일 바로 뉴스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고참급 아나운서인 박경추·김완태·한준호 아나운서 등이 이들의 선택에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박 아나운서는 12일 새벽 트위터에서 “사실 그 친구들의 성향과 그간의 행태는 아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놀랍지 않다”며 “저희 단단합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어제 5월11일은 두고 두고 오랫동안 기억할 날”이라며 “당신의 선택, 후회가 되지 않는다면…두고두고 후회하리라”고 지적했다. 김완태 아나운서도 “마지막까지 뒤통수를 치는구나”라며 “혹시나 혹시나 하고 믿었던 우리가 순진하고 바보였던가”라고 비판했다.

한준호 아나운서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올라간 후배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그대들이 그런 자리에 앉을 자격들이나 있는 사람인지”라며 “눈치보며 온 것도 그들이고, 눈치보며 간 것도 그들인데...상처 받은 건 사실이지만, 아쉬워할 건 없다”고 밝혔다.

이런 글을 두고 개인의 선택마저 문제 삼는 것 아니냐는 의견 뿐 아니라 ‘100일 넘게 정권의 방송이 된 MBC를 국민에 돌려주겠다’며 싸워놓고 변한 게 없는데 이제와서 올라가는 것이 남아있는 동료와 지지해준 시청자에 대한 도리인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한준호 아나운서는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그동안 그 후배들 고민을 봐왔던 입장에서 정말 소신에 따른 선택인지 의문이었다”며 “특히 그들이 제시한 사유를 보며 남아있는 사람들에 상처를 준 것이라 생각돼 글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복귀 결정 직후 전화통화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한 아나운서는 전했다.

한 아나운서는 전체 아나운서들의 분위기에 대해 “담담해한다”며 “김재철과 싸우는데 열중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밝혔다.

한 아나운서는 이들의 선택에 대해 “소신을 밝히는 것은 좋으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정확히 해야 한다”며 “특히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는 (배 아나운서의) 말은 그저 자기 머릿속에서 생각되는 ‘달콤한 곳을 좇으며 변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동안 우리의 파업은 MB 정부가 임명한 사장으로 공정방송이 무너진데 대한 저항이었고, 이에 동의해서 싸워왔는데 왜 갑작스럽게 ‘시청자’를 끌어들이며 논리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시청자 예의’, ‘방송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은 변명일 뿐”고 말했다.

한 아나운서는 이번 일로 아나운서의 직업정신이 도마에 오른 데 대해 “적어도 난 ‘후배들에게 쪽팔리지 말자’는 작은 소신으로 지내왔지만,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인기로 먹고 살다보니 현실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어왔다”며 “하지만 이를 벗고 파업 현장에 나온 이상 언론인 본연의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잃는 것에 대해서도 당당해야 하는데, 올라간 후배들은 그런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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