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한국산 소에서 광우병이 나왔다면 미국 정부 역시 수입금지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발견됐을 때 한국에서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는 것은 통상마찰과 무관하다고 사설로 주장한 언론이 있다. 미국이 ‘통상 문제’를 거론하면서 한국을 압박해서는 곤란하다는 애기다. 

“미국에서 광우병 발발 소식이 알려진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일련의 수입금지 관련 조치들은 국민의 건강과 식품안전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당연하고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를 시비(是非)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곤란하다.”

해당 언론의 사설 제목은 <광우병 파동 통상마찰 대상 아니다>라고 뽑혔다. 한국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면 미국에서 무역으로 보복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속 시원한 얘기 아닌가.

해당 언론은 “한국 쇠고기시장에서 미국산 비중이 44%에 이르는 상황에서 미국 소가 광우병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미국측이 무턱대고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요구해서도 안 되고 한국측이 이에 동의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검역주권’을 미국이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당 언론의 사설을 보면서 ‘언론사 이름’을 가리고 사설 내용만 보여줬을 때 어떤 언론이 썼는지 맞추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정답을 맞추는 이들이 적을 것이란 판단 때문이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자마자 정부가 ‘수입조치’를 취했는데 이를 옹호하면서 미국의 ‘통상 압박’을 비판한 언론, 그 주인공은 누구일까. 광우병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검역주권’을 강조한 언론은 바로 조선일보였다.

해당 사설은 2003년 12월 2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뒤인 12월 30일자 조선일보 사설 내용이다. 주목할 대목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3년, 광우병은 정말 무서운 병으로 인식됐고, 보도됐다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2003년 12월 25일자 3면 <미국발 '광우병 쇼크'>라는 기사에서 “광우병(狂牛病)은 소의 뇌 조직이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리고 흐물흐물해 지는 병”이라며 “변형된 프리온이 음식 등을 통해 인체에 침투하면 뇌 조직을 변화시켜서 이른바 ‘인간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인간 광우병에 걸리면 소와 마찬가지로 뇌조직에 구멍이 뚫리면서 치매 증세 등을 보이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변형 프리온은 끓여도 죽지 않고 전염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한 다음날 조선일보 지면에 담긴 내용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조선일보는 광우병 위험성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던 언론 중 하나이다. “인간 광우병에 걸리면 소와 마찬가지로 뇌조직에 구멍이 뚫리면서 치매 증세 등을 보이다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광우병 문제와 관련한 걱정과 우려는 ‘괴담’이 아니라 언론이 마땅히 전해야 할 경고였던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광우병’ 위험에 대해 경고를 아끼지 않았던 조선일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에서 다시 광우병이 발생하자 어떤 입장을 보였을까.

조선일보는 2012년 4월 27일자 사설에서 “미국에서 광우병 소가 한 마리 나왔다고 과잉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4월 28일자 3면 <검역중단은 지금도 가능…중단땐 대미관계 부담>이라는 기사에서 “실제 검역 중단이 이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 번째로 미국과의 통상 마찰이 우려된다”면서 “당장 표면적인 마찰이 없어도 보이지 않는 국제 신인도 하락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수입금지 이전 단계인 ‘검역중단’ 문제에 대해서도 우려를 전했다. “미국과의 통상마찰이 우려된다”는 주장은 특히 주목할 부분이다. 조선일보는 2003년 12월 30일자 사설 제목으로 <광우병 파동 통상마찰 대상 아니다>라는 사설을 내보낸 바 있다.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 광우병 파동과 관련해 한국의 수입금지 조치는 통상마찰 대상이 아니라고, 만약 한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도 수입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겠느냐고 주장했던 그 언론은 어디인가. 바로 조선일보 아닌가.

언론이 이렇게 말을 바꿔서는 곤란하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면 한국은 수입금지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 어떻게 대답해야 옳은지 헷갈리는가. 적당히 검역대상 물량을 늘리면 해결된다고 보는가. 조선일보의 고민을 풀어주고자 ‘조선일보에 담긴 기사 내용’을 다시 한 번 옮겨본다. 조선일보는 그러한 문제에 이러한 답을 내놓았다.

“미국 소가 광우병에서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국제적으로 공인된 기준이 제시되지 않는 한 미국측이 무턱대고 수입금지 조치 해제를 요구해서도 안 되고 한국측이 이에 동의할 수도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