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부터 KBS의 개념아나운서로 평가받기 시작했던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지난 4년 가까이 동안의 KBS 뉴스와 KBS 조직에 대해 26일 “지금의 KBS는 옛날의 옛날 식”이라며 “9시뉴스의 고발성이 없어져 뉴스앞의 5분 정도 밖에 안보게 됐다”고 비판했다.

KBS 새노조 파업 52일째를 맞아 ‘리셋 KBS 뉴스9’의 새 앵커를 맡게 된 정 아나운서는 이날 오후 뉴스 녹화를 전후로 기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이 같이 밝히고 KBS가 정말 바뀌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 아나운서는 ‘리셋 뉴스’ 앵커를 맡게 된 것에 대해 “중요한 뉴스를 맡게 됐다”며 “(KBS 메인뉴스에) 당연히 나가야 할 뉴스가 나가지 않는데, 오히려 여기서 내보내니 그렇다. 해야 할 뉴스를 정규뉴스에선 못나가니 마음은 아프지만”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1년 말부터 2006년까지 KBS <뉴스9> 여성앵커를 맡았던 KBS의 간판 아나운서이기도 했던 정 아나운서는 현 정부들어서 KBS의 뉴스를 보면서 따가운 질책도 했다.

“(지난 2006년까지 5~6년 동안) 내가 9시뉴스 앵커했을 때도 싫어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뉴스엔 과거보다 고발성이 없어졌다. 탐사보도를 활성화시켜야 했는데, 다 없애버렸다. (고발하는 기능의) 통로가 없어졌다. (그런 보도를) 안하니 뉴스자체를 잘 안보게 되더라. 어느 시대를 통틀어 사회와 기득권에 대한 고발과 감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빠져있다. 생활 편의적인 뉴스 위주다. 뉴스 앞의 5분 정도 밖에 안보게 된다.”

또한 KBS 뉴스와 프로그램를 많은 시청자들이 ‘정권의 방송’, ‘나팔수 방송’이라 비난하는 것에 대해 “속상하고,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개탄했다.

그는 “2년 전 파업하고 복귀하면서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돌아와보니 조직 자체가 옛날 식에서 더 옛날 식으로 돼있었던 것 같았다”며 “과거엔 소통도 잘 되고, 찍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바꾸기 위해서는) 방법이 파업 밖에 없어서 이렇게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아나운서는 “‘(제대로 된) 뉴스를 (너희들이) 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봐도 열에 아홉은 안됐다. 그래서 한계를 느낀 것”이라며 “이런 조직과 간부진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KBS의 미래는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후배들을 보고도 정 아나운서는 “선배된 입장에서 미안하다. 나야 9시뉴스, 아침뉴스 앵커 등 해보고 싶은 것 많이 해봤지만, 후배들은 입사하자마자 계속 이런 일 겪고, 찍히고 고통받았다. 윗선에서 이것(이런 분위기) 조차 못느낀다면 암담하다”고 토로했다.

새노조가 제작하는 ‘리셋뉴스9’ 앵커를 수락할 때 부담감에 대해 정 아나운서는 “어차피 총대는 메는 사람이 메야 한다”며 “후배들한테 부담주고 싶지도 않았다. 반대로 후배들 역시 앵커하라고 하면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파업에 참여하는 아나운서 동료에 대해 “이미 지난 2010년 파업했을 때 나왔던(참가했던) 사람들”이라며 “이들은 2년 간 단련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KBS가 2년 전 파업참가했던 아나운서들에게 주요 프로그램을 맡기지 않거나 교체했기 때문. 그는 “겪을 만큼 다 겪었다”면서도 “다만 맡고 있는 프로그램조차 (파업으로) 들락날락하는 것 때문에 시청자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시청자들의 반응에 대해 정 아나운서는 “내게는 부담이 크다고 느껴지 않고 있는데 밖에서는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며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격려 문자, 전화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KBS가 최경영 기자를 해임한 것에 대해 “그렇게 해고하면 (직원 모두를) 다 해고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해고하면 파업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KBS가 정상화되기 위해 정 아나운서는 “KBS는 윗사람이 괜찮으면 잘 돌아간다”며 “지금 사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같으면 수신료 1000~2000원 안받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감시·견제 등 제 역할을 하도록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함께 동참하지 않는 아나운서와 관련해 정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실에서는 KBS 새노조에 가입했느냐 안했느냐로 방송 (프로그램) 진행 여부를 결정짓는다”며 “이런 분위기를 만든 간부와 윗사람의 책임이 크다. (아나운서들은) 이런 사측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정세진 KBS 아나운서가 26일 ‘리셋뉴스9’ 앵커로 첫방송을 하면서 기자들과 나눈 일문일답 요지이다.

-‘리셋KBS뉴스9’ 앵커를 맡은 소감은
“(제작진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이런 기회를 준 것을 보니 내가 잘 살았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리셋뉴스가 왜 중요하다고 보는가.
“(KBS 메인뉴스에) 당연히 나가야 할 뉴스가 나가지 않는데, 여기서 내보내니 그렇다. 정규뉴스에서 못나가니까 마음 아프다. 하지만, 파업을 통해 이런 뉴스를 만들었고, 이번 기회에 매체의 다양성을 KBS가 시도해본다는 의미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의미도 있다. 해야할 일을 하게 됐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 같다.”

-부담은 없었나.
“어차피 총대는 메는 사람이 메야 한다. 그렇다고 후배들한테 부담주고 싶지도 않았다. 후배들 역시 앵커하라고 하면 할 것이다. 내가 후배들이 했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내가 한다고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맡고 있는 프로그램 하차가 될 수 있다는 실질적 부담도 있었을텐데
“이미 지난 2010년 파업했을 때 나왔던(참가했던) 아나운서들이 지금도 같이 나왔다. 이들은 2년 간 단련이 된 것 같다. 이미 KBS가 내린 조치(주요 프로그램 진행 하차 등)에 이미 겪을 만큼 다 겪었다. 다만 맡고 있는 프로그램조차 (파업으로) 들락날락하는 것 때문에 시청자에게 죄송하다. 방송을 맡지 않고 있다가 파업에 참가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다. 이미 (방송 진행을 못한다는) 불안감에 대한 마음 속의 정리들도 다 한 것 같다. 이런 심정을 많은 시청자들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적잖은 시청자들이 정 아나운서 등을 ‘개념아나운서’라 칭하는 것은 어떻게 여기는가.
“항상 내 마음이 따를 때가 있었다. 리셋뉴스 앵커도 마음이 끌렸다. 불이익 감수한다는 생각(자체를) 별로 하지 않았다. 파업 참가도 마찬가지였다. 개념아나운서로 불리는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경영 기자 해임 등 KBS의 징계에 대해 어떻게 보는가.
“사측에서 징계야 당연히 내릴 수 있겠지만 해고라는 것은 좀…(이해가 안간다) 그 이유 자체도 그렇고. 그렇게 해고하면 다 해고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성적이고 근거가 명확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해고하면 파업이 금방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현 정부들어 KBS <9시뉴스>에 대해 평가한다면.
“(지난 2006년까지 5~6년 동안) 내가 9시뉴스 앵커했을 때도 싫어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뉴스엔 과거보다 고발성이 없어졌다. 탐사보도를 활성화시켜야 했는데, 다 없애버렸다. (고발하는 기능의) 통로가 없어졌다. (그런 보도를) 안하니 뉴스자체를 잘 안보게 되더라. 어느 시대를 통틀어 사회와 기득권에 대한 고발과 감시가 필요하다. 이것이 빠져있다. 생활 편의적인 뉴스 위주다. 뉴스 앞의 5분 정도 밖에 안보게 된다.”

2부 간담회

-뉴스 앵커를 다시 해보니 어떤가.
“어떤 프로그램이든 의미있는 방송이면 다좋다. 홍보성 방송은 어쩔 수 없이 시키면 해야 하니 하는 것이다.”

-리셋뉴스 앵커를 맡는다고 했을 때 시청자들 반응은 어땠나.
“응원한다, 그 용기에 지지를 보낸다는 격려전화가 많이 왔다. 징계 감수하고라도 나오니 내게는 부담이 크다고 느껴지 않고 있는데 밖에서는 크게 생각하시는 것 같다.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지지한다’는 격려 문자, 전화가 많았다.”

-KBS의 뉴스와 프로그램이 정권의 방송·나팔수라 비판을 받고있는 현실은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속상하고, 부끄럽고 화가 난다. 2년 전 파업하고 복귀하면서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보니 조직 자체가 옛날 식에서 더 옛날 식이었던 것 같았다. 과거 내가 (9시뉴스 앵커) 방송했을 때는 소통도 잘 되고 어떤 의견을 내도 찍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결국 (바꾸기 위한) 방법이 이것 밖에 없어서 이렇게 파업현장에 나온 것이다. ‘(제대로 된) 뉴스를 (너희들이) 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봐도 열에 아홉은 안됐다. 그래서 한계를 느낀 것이다. 이런 조직과 간부진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KBS의 미래는 없다. 훌륭한 후배들도 많은데, 선배된 입장에서 미안하다. 나야 9시뉴스, 아침뉴스 앵커등 해보고 싶은 것 많이 해봤지만, 후배들은 입사하자마자 계속 이런 일 겪고 찍히고 고통받았다. 이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뿐이다. 그 사람들이 이것조차 못느낀다면 암담하다. 하지만 바뀔 수 있으리라 본다.”

-새노조 첫 파업 이후 2년 간 달라진 것 뭣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어떤 선배가 ‘너희들이 그렇게 파업해서 뭐가 달라졌나’고 묻더라. 하지만, 계속 이렇게 가만히 앉아있으면 우리에 대해 ‘이렇게 다뤄도 되겠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내부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작은 물살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안됐다. 이것이 우리의 자존심이라고 본다. 이것이 없으면 언론사, 방송사가 아니다. 다른 (일반) 회사와 달라야 한다. 싸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다음 정권 때 이런 일을 겪지 않을 것 아니냐. 우리 구성원이 만만하게 여겨지지 않고,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조직이 됐으면 한다.”

-팬들도 있을텐데
“이번 파업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내가 빠져도 방송이 굴러가고 있어 속상하면서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청취자들에게는 미안하다. 클래식 음악 진행하는 MC조차 이런 파업을 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또다른 지지자분도 많이 생겼다. 시청자에게 죄송하다.”

-2년 전 나왔을 때 KBS가 바뀌리라는 희망을 가졌나.
“KBS에 다 내맘 같은 사람들만 있겠느냐. 그렇게(나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있다는 것을 존중해줘야 한다. 이를 끌고가는 게 경영진이다. 그 땐 다양성이 존중되는 조직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되레 (서로가) 더 멀어졌다. 간극은 커졌다. 소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너무 다르다는 것만 확인했다.”

-어떻게 해야 KBS 조직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는가.
“KBS는 윗사람이 괜찮으면 잘 돌아간다. 리더가 좋으면. 지금 사장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나같으면 수신료 1000~2000원 안받아도 감시·견제 등 우리 역할한다고 하겠다. 최소한 우리들의 일할 것만 보장해줬으면 좋겠다.”

-파업이든 KBS를 보는 관점이든 함께 하지 않는 다른 아나운서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나운서실에서는 KBS 새노조에 가입했느냐 안했느냐로 방송 (프로그램) 진행 여부를 결정짓는다. 이 때문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 80명이 새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이런 분위기 만든 간부와 윗사람의 책임이 크다. 여기가 무슨 학교도 아닌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온 사측에 대한 분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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