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17일 밝혔다. 지난 2월 이 회장의 큰형인 이명희씨가 삼성생명 주식 등 7660억 원대 재산 분할 소송을 제기한 후 이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17일 오전 6시 33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이건희 삼성 전자 회장이 부축을 받으면서 천천히 로비에 들어서자, 포토라인 밖에 서 있던 기자들 4~5명이 “잠깐 여쭤볼 말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 회장은 이례적으로 발걸음을 멈춘 뒤 “뭐라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며 취재진쪽으로 다가와, 해당 발언을 했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쓰는 사안 중 형제간 다툼이 있는데 서운한 점이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뭐 내가 그렇게 섭섭하다는 느낌은. 그런…(생각은 들지 않는다). 상대가 안 되죠”라고 답했다. 조선일보, 한겨레 등 일부 언론에서는 소송을 제기한 형제들에 대해 “(소송인이)수준 이하의 자연인이니까 상대가 안 되죠”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 회장은 ‘앞으로 어떻게 할 예정입니까’라는 질문에 “고소를 하면 끝까지 (맞) 고소를 하고 대법원이 아니라 헌법재판소라도 갈 것이다. 지금 생각 같아서는 한푼도 내줄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유산은) 선대 회장 때 다 분재(재산분할)가 됐다. 각자 다 돈들을 갖고 있고 CJ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삼성이 너무 크다 보니 욕심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발언을 두고 삼성가의 유산상속 분쟁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삼성과 CJ와의 ‘전면전’ 양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경향 등 일부 언론에서는 이 회장이 나선만큼 신속한 해결 국면을 예상하기도 했다. 일간지 9곳, 경제지 6곳 모두 보도 양상에서 차이를 보였는데, 조선일보가 유일하게 사설에서 ‘쓴소리’를 해 주목됐다.

다음은 18일자 전국단위 경제신문 머리기사다.

매일경제 <수도권 택지지구 전매제한 줄인다>
머니투데이 <한국IT에 꽂힌 아펀드매니저 “애플 대신 삼성전자 사야할때”>
서울경제 <(주)대한민국 품격이 흔들린다>
아주경제 <중국, 희토류 ‘쥐락펴락’/국내 산업계, ‘속수무책’>
파이낸셜뉴스 <저축은 5월 구조조정 물거품?>
한국경제 <음식점 카드수수료 대폭 인하>

이번 ‘삼성가 상속재산 반환소송’에는 창업주 이병철씨의 장남 이맹희씨(이재현 CJ회장 부친), 차녀 이숙희씨(구자학 아워홈 회장 부인), 최선희씨(차남 이창희씨 둘째 며느리)가 참여했다. 청구 금액은 이맹희씨의 경우 삼성생명 주식 824만주 등 7100억 원+α, 이숙희씨의 경우 삼성생명 주식 223만주 등 1900억 원+α, 최선희씨의 삼성생명 주식 105만주 등 1000억원+α다.

만약 이 청구들이 받아들여져 삼성생명 차명주식 등이 건네주는 사태가 발생하면 이건희 회장 일가의 지분율이 크게 떨어지고 삼성 지배구조까지 흔들릴 수 있다. 삼성 입장에서는 중대 사안인 셈이다.

1면에 기사를 실은 곳은 경제지 중에서는 서울경제 기사<이건희 회장 “유선소송 끝까지 간다”>, 파이낸셜뉴스 기사<이건희 회장 “상속소송 끝까지 갈 것”…승소 자신감>, 한국경제 기사<이건희 “유산소송 끝까지 가겠다”>가 일간지 중에서는 경향 기사<이건희 “유산소송, 끝까지 갈 것”>, 조선 기사<“지금 같아선 한 푼도 내줄 수 없어”> 등 5곳이다.

경제지 중에서 매경은 15면 기사<‘타협은 없다’ 작심발언>에 따르면, 삼성 관계자는 “창업주가 물려준 유산은 이건희 회장 개인이 아닌 삼성그룹 경영권인데 마치 이를 이 회장이 가로채는 것처럼 여기는 일부 형제들의 생각에 서운함을 표현한 것”이라며 “여론의 힘을 빌려 삼성을 궁지에 몰아넣은 뒤 양보를 얻겠다는 불순한 시도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시사한 말”이라고 밝혔다. 

매경은 “CJ그룹은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소송은 이명희 씨와 이건희 회장 두 사람 사이의 일’이라면서 ‘공식적으론 특별히 언급할 입장은 없다’고 밝혔다”고 밝혔다. 대다수 언론은 CJ쪽 반응을 주로 이렇게 짤막하게 전했다.

한경은 14면 기사<출근길에 속내 밝힌 이건희 “삼성이 너무 크니 욕심내는 것”>에서 “이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내비친 생각은 두 가지”라며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 ‘상속은 부친인 고 이엽ㅤㅇㅓㅊ 삼성 창업주 때 이미 끝났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경도 삼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타협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번 발언의 배경을 전했다. 한경은 또 “이 회장의 발언은 기자들이 놀랄만큼 수위가 강했다”며 “이맹희씨 등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게 재계 인사들의 반응”이라고 전했다.

머투는 2면 기사 <“유산소송 한푼도 못준다, 헌재까지 가겠다”>에서 “(인터뷰) 시작은 돌발적이었지만 이 회장이 가감 없는 속내를 ‘작심’하고 보여준 것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할 만큼 발언에는 거침이 없었다”고 밝혔다. 머투는 “이 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측을 ‘자연인’으로 지칭한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현재의 삼성이 형제들 간의 재산다툼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밝혔다.

머투는 또 “‘한 푼도’라는 표현도 금액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로 보인다”며 “이 회장의 이날 발언으로 양측간 타협의 여지는 대폭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머투는 “CJ측은 ‘그룹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면서도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짤막하게 입장을 전했다.

서경은 1면 기사에서 “이날 이 회장이 기자들에게 밝힌 재산상속 소송에 대한 입장은 매우 강경했다”고 밝혔다. 서경은 이 회장이 강경한 입장을 내보인 것은 “법리 다툼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내비친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경은 3면 기사<경영권 작은 위협도 사전차단>에서 “소송전에서 법리 다툼을 벌이더라도 불리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이 회장이 법무법인 태평양과 세종 등 내로라 하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로 구성된 막강한 변호인단으로부터 소송에 지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은 뒤 작심하고 말한 것 아니냐는 게 업계의 관측”이라고 밝혔다.

서경은 다른 경제지와 비교해 CJ쪽 반응도 많이 전했다. 서경은 이 기사에서 CJ 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버지인 이맹희씨를 돈만 욕심 내는 사람으로 폄하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을 이들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미행 사건에 대한 해명이나 사과가 없는 것이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며 “언제까지 (CJ그룹이)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파이낸셜뉴스는 1면 기사에서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이 같은 발언을 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며 기사 제목에 “승소 자신감”이라는 표현을 넣어 보도했다. 일간지, 경제지 중에서 소송의 승소 여부를 제목에 넣은 곳은 파이낸셜뉴스가 유일했다. 파이낸셜뉴스도 ‘공식적으로 밝힐 게 없다’는 CJ쪽 입장을 짤막하게 전했다.

경제지중에서는 아주경제가 소송 관련 이건희 회장 발언을 가장 작게 실었다. 아경은 2면 기사<“건설·중공업 계열 기업도 글로벌 정상으로 키워라”>에서 이 회장이 사장단 오찬에서 품질 경영을 강조한 것을 제목으로 꼽았지만, 소송 관련 내용은 ‘헌법재판소까지라도 갈 것’이라는 발언을 전한 뒤 “추후 소송이나 논쟁에 대해 타협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짤막하게 보도했다. 

이 같은 경제지 보도가 이건희 회장 발언에 대한 대다수 언론의 해석이었지만 일각에서는 소송을 두고 정반대의 전망을 내놓은 곳도 있었다. 경향은 2면 기사<이건희, 작심한 듯 강경발언한 까닭은>에서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가보자’는 어투이지만 조기에 소송을 취하해 볼썽사나운 집안싸움을 접어달라는 우회전술로도 읽힌다”고 밝혔다.

경향은 “재계에서는 명목상 개인 소송이었던 이번 사건이 향후 두 그룹의 정면 대결 양상으로 호가대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며 “하지만 한편에서는 이 회장이 이번 문제에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외로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밝혔다.

일간지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보도한 곳은 조선이었다. 조선은 1면 기사에서 “이 회장의 발언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삼성과 CJ그룹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6면 기사 제목을 <이건희 회장, 소송 타협않겠다는 뜻 굳힌 듯/ CJ “원만한 해결위해 노력해야할지 의문”>이라고 양쪽 입장을 함께 제목으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조선은 사설<이건희 회장, ‘수준 이하’ 형제들 소송에 “한 푼도 못 준다”>에서 “어느 나라에서건 당대에 모은 재산에는 황금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법”이라면서도 “그러나 2대, 3대를 거치며 사회적 자선과 기여를 쌓아가면서 이런 재산도 비린내와 핏자국을 씻고 그위에 품위의 이끼가 내려앉는다. 자본주의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진화하는 법”이라고 밝혔다.

조선은 “2대, 3대를 내려가면서도 여전히 송사에 매달리는 우리 재벌들의 모습에는 그런 부의 진화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안타까운 일”이라고 촌평했다.

대다수 일간지도 ‘전면전’을 예상했다. 한겨레는 2면 기사<“한푼도 못 줘…대법원 아니라 헌재까지라도 갈것”재계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해 “이건희 회장은 미국 하와이에 다녀온 뒤로 근 한달간 심기가 불편해 출근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이번 빨언은 한달간의 숙고를 거쳐 분위기 반전 차원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이건희 회장 말한 것처럼 대법원까지 갈 경우 적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게 된다”며 “첫 변론기일은 6월 초에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한국도 2면 기사<“소송 끝까지라도 가겠다” 이건희 삼성회장 작심 발언>에서 “양측의 합의 중재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라며 “전면전, 장기전이 불가피했다는 분석”이라고 밝혔다.

국민은 13면 기사 <“상속소송 헌법재판소라도 가겠다”>에서 “이 회장이 자신감을 드러낸 것은 첫 소송 제기 이후 두 달이 지났는데도 더 이상 소송에 가담하는 가족이 없는데다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이 ‘재산 상속문제는 25년 전 선대 회장 사망 시 이미 끝난 일’이라고 거들어준 게 큰 힘이 됐다”고 보도했다.

세계는 2면 기사<“한 푼도 못줘…유산소송 끝까지 간다”>에서 “주목되는 점은 이 회장이 CJ를 직접 거론했다는 점”이라며 “이맹희 전 회장의 장남 이재현 회장이 이끄는 CJ가 조직적으로 소송전에 관여하고 있다고 여기는 이 회장의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세계는 “이 회장은 또 경영권을 흔들려는 불순한 의도도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울은 2면 기사<“유산 상속분쟁 끝까지 가겠다”>, 중앙은 3면 기사<“상속소송 끝까지 갈 것” 이건희 회장 강경 대응>에서 사실 위주로 이번 발언을 전했고, 동아는 14면 기사 <이건희 회장 “끝까지 간다”>를 실어 일간지 중에서 가장 뒤쪽에 이번 소식을 전했다. 

17일 방송3사 메인뉴스 중에서는 KBS가 이번 소식을 단신으로 뉴스 뒷 부분에 보도해 3사 중에서 뉴스 비중이 가장 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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