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언제, 왜 시작됐을까. 의혹을 풀 실마리는 2008년 7월에 있다.

MB 정부는 그해 2월, 출범과 동시에 국무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하는 조치를 단행한다. 조사심의관실은 참여정부에서 ‘암행감찰반’ ‘관가의 저승사자’ 등으로 불렸던 곳이다. 공직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공직사회에서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이런 곳을 MB정부가 참여정부와 선을 긋기 위한 목적으로 출범 직후 폐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MB 정부는 불과 5개월 만에 조사심의관실과 유사한 감찰조직을 부활시켰다. 그것이 바로 이번 민간인 사찰 파문을 일으킨 공직윤리지원관실이다.

민간인 사찰의 핵심 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인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이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몸통”이라며 민간인 사찰을 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부터 있었던 조사심의관실의 명칭을 바꾼 조직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참여정부의 조사심의관실의 임무가 공직사회 감찰이었다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사회 전 영역에 대한 사찰을 비밀리에 진행해 왔다는 것이 차이점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MB 정부는 왜 스스로 없앴던 조직을 5개월 만에 다시 만들었을까. 정치권과 언론들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2008년 7월에 만들어졌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 당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정국이 최고조에 달한 직후다. 당시 이 대통령이 “국민들을 편하게 모시지 못했다”는 사과문을 내놓을 정도로 파장이 컸다. 하지만 그로부터 만 4년이 지난 2012년 3월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진실의 실체는 사과문의 내용과는 큰 괴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MB 정부는 촛불집회 참석 단체와 이 대통령 패러디 그림을 벽보로 부착했던 서울대병원 노조, 경찰 내부망을 통해 MB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경찰대 교수와 하위직 경찰까지 무차별 사찰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가 사정당국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대표직에서 물러나고 심지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삶이 피폐해졌다는 폭로는 이런 사찰의 일부가 수면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란 얘기다.

또, 이건희 회장이 출연한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과 화물연대, 현대차 노조 등 재계와 노동계, 참여정부 때 임명된 공기업 인사, 이상득 의원의 반대파였던 정태근 의원 등 정치권 인사, KBS·YTN·MBC·한겨레21·PD수첩 등 언론계 인사에 걸친 동향파악과 사찰이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도 이번 KBS 새노조의 총리실 사찰 문건 폭로로 새롭게 드러났다.

드러난 사실만 봐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이 대통령과 MB 권력에 걸림돌이 될 만한 사람들을 사찰하는 것, 그리고 반대로 MB 정권에 충성할 인물들을 골라내는 것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임무였던 셈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MB정부가 추진하려고 했던 의료민영화를 비판한 동영상을 퍼 날랐다는 이유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사찰한 것이나, 히틀러와 MB를 나란히 표지사진에 실은 한겨레21의 박용현 전 편집장을 주시한 것이나, 광우병 편과 민간인 사찰 편을 만든 작가들을 뒷조사한 이유가 모두 명확해진다. 촛불에 놀란 MB정부에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비판 공직자나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사찰했다는 얘기다.

이영호 전 고용노사비서관과 청와대의 “이전 정권에서도 사찰이 있었다”는 발표 이후 언론들은 두 갈래 길을 가고 있다. 보수언론을 주축으로 한 한쪽은 참여정부와 MB정부를 동급으로 놓고 사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또, 다른 한쪽은 이 사건의 ‘몸통’이 누구인가를 쫓고 있다. 여야의 말대로 양쪽 모두 정치적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실관계가 어떻든 민간인사찰이 이뤄졌다는 것과, 그것도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정도로 집요하게 이뤄졌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민간인 사찰’ 편을 제작한 김재영 PD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사건을 취재하면서 소름이 끼쳤던 것은 불법사찰 담당 공무원들이 전혀 죄책감이나 불안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그들의 행위의 배경에 이 모든 것을 봐줄 ‘절대 권력’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당시 을 총괄하고 있었던 조능희 부장은 ‘몸통’의 실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종익씨 사례처럼 개인을 그렇게 철저하게 망가뜨릴 정도면 상대에 대한 적개심이 있어야 한다. 사찰 효과에 대해 만족감을 느끼는 대상이 분명히 있었다는 얘기다. 김 씨는 ‘MB를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려 표적이 됐다. 이 때문에 사찰을 했다면 MB가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어도 이 일을 주도한 그 밑의 누군가가 이렇게 조치했다고 보고를 올리지 않았겠나.”

그는 공개된 사찰 문건에 역대 작가들의 명단을 조사한 흔적이 나온 것에 대해 “ 작가들을 모두 조사해 무엇이라도 하나 걸리면 MBC와 까지 묶어 처리하려고 했던 것 아니겠냐”며 “민간인 사찰은 ‘각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기 위해 시작된 무자비한 권력의 횡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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