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민간인 사찰 파문이 4·11 총선의 뇌관으로 떠오른 가운데 종합편성채널들이 정치권의 "대통령 하야" 발언 등을 헤드라인으로 전하는 등 사찰 사건을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나서 주목된다.

'TV조선' 'JTBC' '채널A' 등 종편들은 MB 정권에서 신규로 방송 허가권을 받은 데다 이날 모기업 신문사인 조선·중앙·동아일보가 관련 사건을 축소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는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민간인 사찰 사건을 어떻게 보도할지 관심을 모았었다.

TV조선은 톱뉴스로 <'철저수사'…'대통령 하야'>를 다룬데 이어 <총리실 사찰 2619건> <검찰 '부실수사' 논란> <'당혹'…'외면'…'변명'> 등 4건의 리포트를 통해 민간인 사찰 문건 내용을 전하면서 정치권의 파장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보도 방향도 정부의 민간인 사찰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TV조선은 톱뉴스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메가톤급으로 커지고 있다"며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면서 야당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하야 주장까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어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의 긴급기자회견 내용을 전하면서 "민주당은 'BH 하명'이라는 표현이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증거라며 청와대 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고 덧붙였다.

TV조선은 또 "새누리당 내에서는 '수도권 선거는 이걸로 끝났다'는 탄식이 나온다"며 "하루종일  대책에 골몰하던 새누리당은 '윗선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며 검찰 수사를 촉구하면서도 '박근혜 새누리당'은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상 청와대가 알아서 해결해달라는 것"이라고 여권 반응을 정리하기도 했다.

사찰 증거를 은폐한 총리실에 대해서도 "과거에도 했던 일이고, 민간인은 어쩌다 한 둘인데 억울해하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앵커멘트로 비판했다.

채널A, 민간인 사찰 파문 집중 조명…기사양·논조에서 타 종편 압도

채널A의 민간인 사찰 사건 보도는 특히 돋보였다. 사건의 진행 과정과 파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을 뿐만 아니라 총리실의 사찰을 '불법'으로 규정했고, 청와대 연루 의혹, 검찰의 부실 수사 등을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채널A는 메인뉴스인 <뉴스A>에서 <"2천619건 불법사찰"> <사생활 샅샅이 엿봤다> <직원 절반이 '영포라인'> <당시 총장도 "실패한 수사"> <최종석 전 행정관 영장> <총선 불씨로…청와대 '침묵'> 등 사찰 리포트를 무려 6꼭지나 전면에 배치했다.

채널A는 헤드라인 앵커멘트에서 "총리실의 불법 사찰 사건, 깃털이 몸통이라고 우기더니 결국 들통이 나고 있다"며 "공직자와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마구잡이 사찰이 이뤄졌다. 특히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폭넓게 사찰했다"고 지적했다.

뉴스 리포트에서는 "언론사 임원 교체 문제에도 적극 개입한 흔적이 나타난다"며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언론사 대표의 성향과 현 정부에 대한 충성도까지 묘사돼 있다"고 다른 종편들보다 언론장악 의혹을 자세히 전하기도 했다. 채널A는 또 사찰 대상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을 직접 접촉해 코멘트를 받는 모습도 보였다.

채널A는 특히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이명박 정부 초기인 지난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만들어졌으며, 지원관실은 대통령 측근 인사로 알려진 이영호 전 비서관 지휘 아래 42명이 직원 중 절반 가까이가 경북 영덕과 포항출신, 이른바 영포라인으로 채워졌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JTBC도 헤드라인 <'전방위 사찰 문건' 파문 어디로>에서 "문건에는 'BH(청와대) 하명'이라는 기록도 있어 청와대가 사찰을 지시한 정황도 나타난다"고 보도했다.

JTBC는 "KBS 노조와 관련해 언론노조의 개입으로 MBC노조와의 연대 투쟁 및 강성 집행부 등장 등이 우려된다는 동향과 YTN은 노조의 경영 개입을 차단하고 좌편향 방송 시정 조치를 단행했다는 내용 등이 보고서에 포함됐다"는 언론 동향 보고 내용을 전했다.

언론 사찰 문건 당사자인 KBS·YTN·MBC 등은 두루뭉술하게 보도

해당 문건에서 사장의 성향과 임원들의 동향이 자세하게 보고된 것이 드러난 KBS와 YTN은 보도는 했지만 관련 내용을 두루뭉술하게 보도하게 넘어갔다.

이들 방송사들은 민간인 사찰 문건을 보도했지만 이 문건에 KBS와 YTN도 사찰 대상에 포함돼 있었다고만 언급했을 뿐 '정권에 충성심이 강하다' '좌파 방송을 시정했다'는 평가와 함께 사장 임명을 건의한 내용 등이 담긴 배석규 YTN 사장 관련 보고서, '거만하고 자기 사람을 너무 챙긴다'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김인규 KBS 사장 관련 보고서 내용들은 보도하지 않았다.

중앙·조선 등 31일 지면서도 민간인 사찰 문건 왜곡 의도 드러내

다른 조간들이 민간인 사찰 사건을 1면에 다뤘는데도 사건의 의미를 왜곡(조선일보)하거나 아예 보도하지 않았던 신문(동아·중앙일보)들은
정치권으로까지 파장이 확산되자 하루 뒤인 31일부터는 관련 보도들을 다루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 보다 문건의 의미를 축소하고 정치적 색깔을 뒤집어 씌우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 제목은 <공식 선거운동 첫날 총리실 사찰 문건 3000페이지 폭로>였다. 총선을 노린 정치적 폭로라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제목과 달리 기사 내용은 객관적이었다. 편집책임자인 데스크의 시각이 투영됐다는 얘기다.

기사와 제목이 따로 노는 경우는 조선일보에서도 발견된다. 조선일보는 3면 머리기사 제목을 <터져나온 민간인 불법사찰…내용 대부분은 공직감찰>로 달았다. 이번에 공개된 문건 대부분이 '공직감찰'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제목이 무색하게 해당 기사에는 정치인과 민간인, 언론인, 노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을 무차별하게 감찰한 사례가 나열돼 있었다.

보도가 하루 늦기는 했지만 조중동 가운데에서 그나마 드러난 사실을 손바닥으로 가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31일 1면 <민간인 사찰, 총선 뒤흔들 '핵뇌관'>, 2면 <민주 "한국판 워터게이트…국기문란" 총공세 / 새누리 "당과 무관"…MB정부와 결별 나설듯>, 3면 <재벌총수-언론사 간부-노조…민간인까지 가리지 않고 사찰> <2010년 수사팀 "다 살펴본 것…분량도 100여건>, 사설 <민간인 불법사찰, 청와대는 침묵만 할 건가> 등 중립적으로 기사들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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