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파업에 피로감이 누적되면 처음보다 열기가 식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MBC 총파업은 정반대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기자와 PD 등을 비롯한 MBC 사원들은 오히려 파업 이유가 분명해졌다며 분노하고 있다. 지역 MBC까지 전국적인 총파업을 선언했다. 김재철 사장을 임명한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지난 9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의 뜻과 무관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였다”고 폭로했기 때문이다. 정영하 MBC 노조 본부장은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 이사장의 ‘청와대 낙하산’ 발언으로 그 실체적 진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충격이었죠. 보수진영에서는 지금까지 방문진이 법에 따라 임명한 적법한 사장을 왜 내쫓으려 하냐면서 노조에 정치적 파업이라는 잣대를 들이댔는데 이제 뭐라 할지 궁금합니다. 공영방송 사장을 청와대가 임명하고, 방송사 내부 인사에까지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말입니다. 김재철 사장은 공영방송 MBC 사장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정 본부장의 말에서 단호한 결기가 느껴졌다. 그는 “김 사장이 퇴진할 때까지 파업 종료는 없다”고 다시 한 번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조본부장으로서 공정방송 회복을 내걸고 총파업을 이끌어 왔는데, 정권의 입김을 차단하고 MBC의 공영성을 지켜야 할 방문진 전 이사장이 청와대 지시로 낙하산 사장을 임명했다고 폭로했으니 외부의 힘에 의해 물러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셈이다. 김재철 사장 퇴진으로 시작된 MBC의 공정방송 투쟁은 이제 정권으로부터의 언론독립이라는 대의명분까지 갖추게 됐다.

하지만 노조가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그동안 침묵하다가 왜 지금 파업을 하느냐는 일부 시민들의 냉소다. 김 전 이사장이 “(청와대) 주인이 바뀔 것 같으니까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파업하는 것 아니냐”고 노조를 비난한 것도 MBC 파업사태를 지켜보는 정치권 일각의 시각을 보여준다.

정 본부장은 이에 대해 “노조도 비판받아야 한다”고 인정했다. MBC가 이렇게 망가진 데에는 노조와 MBC 구성원들의 책임이 크다는데 공감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적 파업’이라는 지적만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장도 MBC 사장에 무자격자가 와서 MBC를 망가뜨려 놨다고 인정했으면서 이런 사태를 그냥 지켜보자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번 파업은 MBC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정권의 방송이 됐다는 안팎의 비판이 참을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지 정치적 의도로 시작한 게 절대 아닙니다.”

김 사장이 MBC에 온 뒤 어떤 일들이 벌어졌기에 MBC를 망쳐놨다고 하는 것일까. 사측은 김 사장이 온 뒤 MBC가 최고의 광고매출을 기록하는 등 경영에서 성과를 냈다며 노조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MBC는 실제로 지난해 사원들에게 최대 1000만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나눠줬다는 보도도 나왔다. 김 사장으로서는 노조의 박한 평가가 서운할 만도 하다. 정 본부장은 이에 대해 ‘금권 통치’라고 말했다. 언로는 차단하면서 금전적인 보상으로 MBC를 장악하려 했다는 얘기였다.

“김 사장 전에는 현장 기자가 아이템을 선정해 발제하면 간부와 평기자들 사이에 충분한 토론이 있었습니다. 이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사가 더 풍부해지고 보도 경쟁력으로 연결됐습니다. 하지만 김 사장이 임명한 간부들은 MB 정권에 불리한 사안들은 찍어 눌렀습니다. 이에 저항하는 기자들은 보도국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보도국 기자와 시사교양PD가 창사50주년기념사업단이나 드라마 세트장 관리업무로 발령 난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가 벌어지는 과정에서 지난 2010년 ‘김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조인트를 맞고 MBC내 좌파가 70~80% 척결됐다’는 얘기가 터져 나와 MBC가 한 차례 몸살을 앓기도 했다. 김 사장은 이와는 반대로 자기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무더기로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했다. 정 본부장이 밝힌 ‘금권 통치’ 사례는 놀라울 정도다.

“지난해 여름 후지TV 회장이 2박3일 강연을 왔었는데 이 자리에서 보직간부들에게 각 나라명이 적힌 회전판을 돌려 나온 지역으로 해외연수를 보내준 사례가 그 자리에 있던 간부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된 적도 있습니다. 사다리타기로 해외연수자를 선발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돌았습니다. 이렇게 해외연수자로 선발된 사람만 160여명입니다.”

야당측 방문진 이사들이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김 사장에게 관련자료 제출을 요청했지만 최근까지도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방문진 쪽에서는 김 사장이 정해진 예산을 4배나 초과해 간부들을 해외에 연수를 보내주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노조는 또, 최근 김 사장이 법인카드로 국내 명품숍과 면세점 등에서 명품가방과 귀금속, 여성화장품 등을 집중 구매하고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전국 특급호텔에서 수십여 차례에 걸쳐 총 7억여원이 사용된 내역을 공개하고 검찰에 배임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김 사장 측은 “업무상으로만 썼다”는 입장이지만 노조 쪽에서는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측은 이런 노조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또, 박성호 기자회장과 이용마 노조홍보국장(기자)을 해고하는 등 지금까지 10명을 징계했다.

정 본부장은 이번 파업은 김재철 사장의 사퇴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MBC를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MBC는 공영방송입니다. 여든 야든 편향되면 안 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을 견제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청와대가 내려 보낸 낙하산 사장이 와서 정권의 정책이나 비리를 전혀 비판하지 못하고 연예·오락프로에 집중하는 방송사가 돼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업의 완성점은 프로그램이 공영성을 띠게 만드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에게 사랑받았던 공영성이 살아있는 <뉴스데스크>와 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때 끝나는 싸움입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