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철 사장 퇴진 촉구 MBC 노동조합(위원장 정영하·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의 총파업이 열흘째(8일)를 맞으면서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뉴스시간 단축에 이어 프로그램 결방 등 방송 파행이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MBC 경영진은 사태 해결 보다는 노조에 책임을 넘기며 ‘파업 장기화’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뉴스·프로그램 파행 진행중=MBC는 지난달 25일 기자들의 제작거부가 시작된 이후 줄곧 메인뉴스인 <뉴스데스크>를 평일엔 15분, 주말엔 10분 이내로 단축방송해오다 30일부터는 평일 방송시간을 20~25분까지 소폭 늘렸다. 그러나 여전히 주말 <뉴스데스크>는 8~9분 방송에 그치고 있으며, 그나마 평일 뉴스에도 간부급 기자가 2꼭지씩 중복 리포트를 하는 방식으로 방송시간을 일부 늘린 것이다. 아침뉴스시간은 그대로이고, 폐지된 저녁뉴스도 그대로이다.

시사교양 및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결방체제이다. 대표적인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 <우리 결혼했어요>, <위대한 탄생> 등은 파업 첫주인 지난 30일까지 모조리 불방됐다. 일요일 방송됐던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 역시 과거 찍어놓았던 것을 편집해 ‘시즌 1’ 마무리 방송으로 내보냈다. ‘나가수’ 빼고 다른 코너는 결방이었다. 당장 12일 방송할 속편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 ‘남극의 눈물’ 등 대표적인 시사교양 프로그램도 결방을 이어가고 있다.

▷돌연 계약직 보도국 인력 충원 “장기화 대비하려는 건가”=이 와중에 MBC는 지난달 31일 돌연 공고를 냈다. 1년 계약직 보도인력을 충원하겠다는 공고였다. MBC는 보도국 뉴스영상 PD와 영상편집, 보도CG(컴퓨터그래픽) 직원을 각각 ○명씩 모집한다고 밝혔다. MBC는 모두 이달 말까지 이들을 입사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뉴스영상 PD의 경우 그 업무가 “뉴스 취재 제작, 6mm 촬영 및 편집”이며 ‘뉴스취재 제작 경험자를 우대한다’고 밝혀 현재 기자들이 모조리 빠져 부족한 현장취재 인력을 임시직으로 메꾸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이런 임시 인력들이 보도국 수뇌부의 지시에 따라 현장취재를 하게 되면 뉴스 방송시간도 늘게 돼 파업중인 기자들이 올라오는 등 대오가 사분오열될 것을 노린 것”이라며 “그것은 오판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MBC측은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것”이라는 입장이다.

▷“파업상태 방치, 이런 상황 즐기나”=이렇게 총파업에 따른 방송파행이 빚어지고 있지만, MBC 경영진은 사태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지 않아 파업 장기화를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MBC는 지난 6일 일간지에 의견광고를 내어 △MBC 노조가 1년 8개월 만에 다시 불법파업에 나섰고 △1등 방송 MBC가 훼손되고 있으며 △국민들이 1위로 선택한 방송의 사장과 임원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와 불법파업을 하는 것은 시청자들이 부여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특히 MBC는 노조가 파업하는 동안 “일부 차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밝혀 모든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노조와 별도의 대화를 통해 사태해결 노력을 하려는 움직임도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정영하 노조위원장은 7일 “파업에 돌입하면 여러 방면으로 조합원의 복귀를 종용하거나 최소한 파행방송을 막고자 했던 과거 경영진과 달리 지금은 방치 수준”이라며 “책임을 모두 노조에 넘기며 되레 파업 장기화에 대비하고 있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정 위원장은 현재 파업에 많은 조합원이 동참하지 못하고 있는 드라마 PD들에 대해 “싸움이 격화되면 드라마 PD 조합원도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총선 편향방송 막기 위해 노조 자체 제작 뉴스도 검토”=노조는 파업이 장기화 될 경우 김재철 사장 퇴진이라는 목표 달성이 안되면 아예 이대로 총선까지 파업체제로 갈 각오도 하고 있다. 정영하 위원장은 “김재철 퇴진을 위해 매주 투쟁을 고강도로 높여갈 것”이라며 “특히 이런 체제로 총선 전에 복귀하면 MBC의 편향뉴스로 총선을 치르게 돼 그럴 바엔 차라리 파업체제로 총선기간을 넘길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보도국 수뇌부들이 공정방송·공정보도를 못하니 우리라도 총선기간 동안 자체제작 뉴스를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안도 고민중”이라며 “시교·예능 PD 역시 다양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는 미디어를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MBC 총파업 거리집회 현장 스케치

“보도국 정상화 될 때까지 못 돌아가”

파업 9일차를 지나면서 MBC 노조의 기자 PD 조합원은 다양한 형태의 대국민 선전활동을 펼쳤다.

○…위탄 PD “윗사람 뭘 좋아할지만 생각” 자괴감
MBC <위대한 탄생> 조연출을 맡고 있는 박창훈 편성본부 PD(2003년 입사)는 6일 오후 3시부터 열린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사 앞에서 열린 ‘불량 낙하산 김재철 반품 촉구 기자회견’에서 “현재 가장 좋은 일(위탄 조연출)을 맡았고, 지금도 합숙소에서 출연자들 관리하면서 즐겁게 지냈는데, 여기 있게 돼 아쉽고, 출연자들도 그립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그러면서 박 PD는 “(자신이) 과거 9년전 PD였을 때 ‘대중들이 뭘 좋아할까, 무엇에 관심있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모든 생각이 ‘윗사람이 무엇을 좋아할까’에 맞춰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며 “편성 PD도 이 정도인데 기자들은 얼마나 힘들까”라고 개탄했다.

○…“사건사고 기사도 못나가, 상식적 기사 못 쓰면 못 돌아가”
4년차 사회부 소속 양효걸 MBC 사회부 기자는 이날 “사건사고나 집회현장과 같은 일터에 있어야 하는데, 내가 왜 여기 나와있나”라며 “여야 정치권은 잘 모르지만, 단순한 사건사고 기사를 쓰는데도 상식적인 기사를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양 기자는 “사회부 기사를 쓰는 데도 무수한 기사가 못나갔고, 묻혔다”라며 “상식적인 기사를 쓸 수 있기 전 까지는 다시 (MBC 보도본부로) 돌아갈 수 없다”고 다짐했다.

○…“MBC를 안아주세요” 여기자들 프리허그
지난 3일 명동 앞에서는 MBC 여기자들의 ‘프리허그’ 시위도 등장했다. 임현주·이지선 MBC 사회2부 기자, 임소정 <시사매거진 2580> 기자, 서현권 영상취재부 기자 등 4인은 이날 오후 약 30분 여 동안 “MBC를 안아주세요”라고 외치면서 이에 호응한 시민들과 꼭 껴안았다. 이지선 MBC 기자는 “(제작거부에 이은) 파업을 하면서 뉴스파행을 빚게 돼 시청자들에게 가장 죄송했다”며 “불가피하게 우리가 왜 파업을 하는지 알리면서 시민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달라는 의미에서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자는 이어 “MBC 뉴스가 신뢰를 많이 잃었기 때문에 이를 회복하기 위한 몸짓”이라며 “따뜻하게 안아달라는 의미의 말”이라고 말했다.

○…“김재철 사장 퇴진위해 서울 쑥대밭 만들수도”
정영하 MBC 노조위원장은 지난 3일 명동 앞에서 정권의 방송, 편파방송 MBC의 죽음을 선포하는 노제가 열린 자리에서 “이제 우리는 몰락한 MBC를 가슴에 묻었습니다”라며 “하지만 반도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평가했다. 정 위원장은 “김재철 퇴진 투쟁을 본격화할 것”이라며 “서울시 곳곳을 돌며 쑥대밭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김재철이 나가는 길만이 살길”이라고 덧붙였다.

 

■ MBC노조위원장·사장 출신

최문순 “언론자유 못지킨 책임 크다”

MBC 파업사태에 대해 MBC 노조위원장과 MBC 사장을 지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뒤늦었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며 “과거 선배들의 고통과 헌신, 국민들의 성원으로 만들었던 언론자유를 못지킨 책임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최문순 지사는 6일 오후 미디어오늘과 전화인터뷰에서 “여러 문제가 있지만 MBC 문제의 우선순위는 국민에 올바른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며, 미디어렙 등 미디어제도는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최근 1~2년 동안 몰락한 MBC 뉴스에 대해 최 지사는 “선배들이 언론자유를 이루기 위해 많은 고통과 헌신을 했지만 언젠가부터 이렇게 만들어진 언론자유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며 “(통제와 탄압에 대한) 면역력과 자생력을 기르지 못하고, 그간 언론자유를 누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다 탄압의 강도가 높아지니 MBC의 공정성이 무너진 것”이라며 “정권이 MBC의 언론자유를 빼앗아간 것도 문제지만, 결국 언론자유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그는 “MBC가 축소·외면·왜곡보도를 하니 영향력도 잃었다”며 “나꼼수·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이 막 생기는데, 점점 진실보도를 안하면 영향력 자체를 상실하게 돼있다”고 지적했다.

최 지사는 “스스로의 책임이 더 크다는 책임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며 “진실과 사실을 전하려는 신념과 철학이 더 투철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지사는 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잘 싸우고 있다”며 “언론계와 국민들이 함께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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