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대다수와 SBS가 최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의 ‘돈 봉투’ 의혹을 보도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언론사들은 다른 ‘돈 봉투’ 의혹에 대해서는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어, 보도 누락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최시중 전 위원장이 사퇴 기자회견을 한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종편 4곳과 지상파 3사 저녁 메인뉴스를 분석한 결과, 중앙 종편 JTBC, 동아 종편 채널A, 매일경제 종편 MBN은 ‘최 전 위원장이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을 통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의원들쪽에 500만 원이 든 돈 봉투를 전달한 의혹’, ‘최 전 위원장이 직접 친이계 한나라당 의원들 3명에게 3500만 원을 전달한 의혹’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들 종편사들은 최 전 위원장의 사퇴 배경을 정용욱씨의 비리 의혹과 연관지어 해석하면서도 ‘돈 봉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보도를 했다. 사퇴 배경에 대해 채널A는 27일 <뉴스A> 첫 리포트<최시중 방통위원장 사퇴, 측근 비리 의혹에 부담 느낀 듯>에서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의 수뢰 혐의로 마음의 부담을 느낀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고, MBN은 같은 날 <뉴스10> 첫 리포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사퇴>에서 “예기치 않은 측근 비리 의혹”이라고 보도해 ‘정용욱’을 언급하지 않았다.

JTBC는 31일자 11번째 리포트 <‘돈 봉투’ 당당히 걷겠다? ‘돈 정치’ 역행하는 정치권>에서 ‘돈 봉투’ 의혹 관련자로 안병용 은평갑 당협위원장,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이봉건 국회의장 정무수석 비서관을 사진과 함께 보도했지만 최시중 전 위원장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JTBC의 모회사인 중앙일보도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이 연일 쏟아졌던 지난달 3일부터 일주일 간 전국단위 종합일간지 중에서 유독 ‘최시중’이라는 실명을 표기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종편에서는 TV조선 9시뉴스 ‘날’이 31일자 7번째 리포트 <‘최시중 돈봉투’ 의혹, 그때 무슨 일이>에서 “전당대회 돈봉투에 의원관리용 돈봉투까지, 봉투파문에서 한나라당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친이계쪽 돈 봉투를 “의원관리용”이라고 표현해 보도했다. 그러나 TV조선도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해당 기간 중에 보도하지 않았다.

지상파 3사 중에서는 SBS는 30일 2번째 리포트 <“책상 위에 돈봉투”…정무수석 조사 불가피할듯>에서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이 연루된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면서도 최시중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에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KBS는 27일 메인뉴스 1면 기사<최시중 방통위원장 전격 사퇴…비리 의혹 부인>에서 문방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했지만 현재까지 친이계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하지 않고 있다. KBS는 민주당 ‘돈 봉투’ 의혹은 보도해 오고 있다. MBC는 31일 두 번째 리포트 <최시중 전 위원장, 친이계 의원에 돈봉투 제공 의혹>에서 최 전 위원장 관련 ‘돈 봉투’ 의혹 두 사례를 모두 지적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최시중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확인해봐야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들 언론사와 최 전 위원장이나 현 정권과의 관계를 보면 언론사 간의 이해 관계가 눈길을 끈다.

동아일보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은 재임 기간 동안 지상파 등 다른 언론들의 반발에도 이른바 ‘조중동 방송’인 종편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최 전 위원장이 종편을 갓난아기에 빗대며 “걸음마 단계까지는 돌봐줘야 한다”며 이들 매체의 육성을 강조한 상황에서, 이들 종편들이 태생적으로 최 전 위원장에 대한 비판을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조선일보를 모회사로 두고 있는 TV조선이 동아 출신인 최 전 위원장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는 최근 동아와 중앙이 지난달 30일자 1면 지면에서 조선 출신인 김효재 청와대 수석의 비리 의혹을 제기하는 것과 비교돼 눈길을 끈다.

지상파 중에서 SBS가 유독 최 전 위원장에 대해 비판의 ‘날’이 무딘 것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동안 지상파 3사 중에서 최 전 위원장과 정용욱 전 정책보좌역의 비리 의혹에 대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한 곳은 SBS였다. 27일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1월5일부터 25일까지 메인뉴스를 조사한 결과, 최시중 전 위원장의 ‘양아들’로 알려진 정용욱 전 방통위 정책보좌역에 대해 KBS는 5일, 8일 이틀간, MBC는 5일, 7일, 9일 3일간 보도했지만. SBS는 10일 하루만 보도해 가장 소극적인 보도를 했다. 또 같은 기간 SBS만 ‘정용욱’ 실명을 한 번도 거론하지 않았다. 

주목되는 점은 최근 들어 정부·여당쪽에 SBS 출신들이 대거 포함된 점이다. 하금열 대통령실장, 최금락 홍보수석비서관, 김상협 녹색성장기획관 등이 청와대에 재직 중인 SBS 출신 인사들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허원제 의원도 SBS 출신이다. 최근 차기 방통위원장으로 거론되는 후보군 중에서 송도균 전 방통위 부위원장도 SBS 출신이다. 그동안 문방위에서 처리된 미디어렙 법안은 종편과 SBS를 위한 법이라고 불릴 정도로, 현 정권 말기 언론 분야에서 SBS쪽에 유독 유리한 정책이 적지 않다.

이들 언론사들이 향후 얼마나 ‘방통대군’이라 불린 최시중 전 위원장에 대한 검증 작업에 나설지는 미지수이지만, 언론계에서는 최 전 위원장 임기 당시 이뤄진 ‘권언 유착’의 실태에 대해 면밀한 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겨레는 1일 사설<최시중씨의 비리·부정 단죄, 이제 시작>이라며 “최 전 위원장 돈봉투 의혹 사건에서 밝혀내야 할 가장 중요한 핵심은 돈의 출처”라고 논평했다. 이어 한겨레는 “검찰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최 전 위원장의 비리와 부정을 남김없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은 1일 사설<‘돈 냄새 진동’ 한나라, 언제까지 오불관언할 텐가>에서 “최 전 위원장이 측근 비리 및 자신의 연루 의혹으로 물러났지만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당연히 내놓을 법한 진상규명 촉구 논평도 없었다”며 “한나라당이 진정 국민 앞에서 뼈를 깎고 거듭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면 지금 눈앞에서 드러나고 있는 권력형 비리에 대해 백배 사죄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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