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과 촛불시위 1주년 기념 집회에 대해 경찰이 무더기 진압을 벌이며 240여 명을 연행한 것과 관련해 KBS,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주요 언론사들이 앞장서 공안몰이에 나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KBS의 경우 경찰의 엄중처벌 방침을 강조하는 리포트를 내보내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자전거 대축전 관련 리포트를 두 꼭지 방송했다.

KBS "서울시청 아수라장, 시위대 광장집결-경찰충돌 때문…경찰 '용납못해'" 강조

경찰은 지난 1일 노동절 기념집회와 2일 촛불집회 1주년 시위에 나선 시민들과, 하이서울 페스티벌 무대를 점거하고 행사를 방해한 시민 등 모두 241명에 대해 무더기 연행에 이어 4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 같은 경찰의 강경기류를 국민의 방송임을 자처하는 KBS 등이 되레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는 지난 3일 <뉴스9> 15번째 리포트 '경찰 "엄중처벌"'에서 "어젯밤 서울시청 앞 광장이 아수라장이 됐다"며 그 이유에 대해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촛불 1주년 범 국민 대회 이후 시위대가 서울 광장으로 모여들면서 경찰과 충돌이 빚어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 지난 3일 방영된 KBS <뉴스9>  
 
KBS는 "시위대는 하이서울 축제 무대를 점거해 개막식이 무산됐고 경찰은 112명을 연행했다"며 불법폭력 점거·방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의 발언과 서울시의 민형사 소송방침을 강조했다.

KBS는 특히 서울시가 "개막행사 무산에 따른 직접 피해액 3억7천 만원 외에도 황금연휴 기간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불안한 서울이라는 인상을 심어준 피해가 너무 크다"며 법적 대응의 이유를 비교적 상세히 전했다. 이에 반해 집회 주최쪽의 목소리에 대해선 "집회 주최 측은 경찰이 무조권 공권력으로 압박해 벌어진 일이라고 반박했다"며 한서정 촛불시민연석회의 공동대표의 말을 빌어 "경찰이 청계광장을 원천 봉쇄했다. 원천봉쇄하지 않았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이라고 전하는 게 전부였다.

경찰 집회방해개입 의혹 보도 SBS도 시민들 목소리 외면…MBC "경찰, 사전신고집회마저 통제"

   
  ▲ 지난 3일 방영된 SBS <8뉴스>  
 
KBS는 경찰의 과잉진압과 무더기 연행 및 구속영장 청구 등 강경대응이 적절한 대응이었는지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SBS는 "시위대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의 사전행사인 길놀이 행진 대열에 섞여 서울 광장까지 이동했고, 밤 8시 쯤에는 경찰 추산 1300명으로 불어난 시위대가 하이 서울 페스티벌 개막식 예행연습이 한창이던 무대 위로 올라갔다"며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졌고 개막식은 취소됐다"고 보도했다.

SBS는 "경찰은 불법 폭력 시위자를 전원 사법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주상용 청장의 발언과 서울시의 민형사상 대응 방침을 소개했을 뿐 시위대나 시민들의 목소리는 한마디도 반영하지 않았다. 이에 반해 SBS는 앞서 지난 1일 <8뉴스>에서 "경찰청이 집회가 예상되는 주요 지점들에 대해 다른 단체나 기업들의 집회신고를 받아 민노총이나 진보단체의 집회를 금지시키라고 일선 경찰서에 지시했다"며 경찰의 집회 방해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제기해 평가를 받기도 했다.

MBC는 이날 <뉴스데스크> 9번째 리포트 '"엄정처리" 반발'에서 "집회 참여자들의 무대 점거는 일부의 우발적 행동이었으며, 경찰이 촛불 관련 집회를 원천 봉쇄한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한다"며 "시민단체들은 촛불 1주년 기념 사진전이 사전에 신고 된 집회인데도 경찰이 전경버스 등으로 출입을 막았다며 서울경찰청장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전해 KBS SBS의 접근법과 다소 차이가 있었다.

   
  ▲ 지난 3일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  
 

KBS, 촛불진압 보도 바로 앞에 자전거 축전·이명박 대통령 리포트 두 건 내보내

KBS는 촛불집회 참가자에 대한 정부의 엄벌 방침 리포트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자전거 대축전 행사 리포트를 2건에 걸쳐 내보냈다.

KBS는 이날 <뉴스9> 13번째 리포트 '대한민국 자전거축전 자전거타기 확산'에서 "자전거 타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달 25일 시작한 '제1회 대한민국 자전거 대축전'이 오늘 창원 행사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며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의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자전거 타기의 미덕도 함께 널리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KBS는 "녹색 교통수단인 자전거가 이번 축제를 계기로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KBS는 이어 14번째 리포트 '이 대통령 "5년 내 3대 생산국"'에서 "오늘은 대통령도 자전거를 타고 함께 달렸다"며 "세계 3대 자전거 국가로, 자전거 산업을 키우겠다고도 약속했다"고 소개했다.

KBS는 또 이 대통령이 "2020년쯤엔 4대강을 따라 전국에 3000km의 자전거 도로가 만들어진다"고 밝힌 내용을 그대로 방송했다. 4대강 정비사업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위한 것 아니냐는 그동안의 우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 지난 3일 방영된 KBS <뉴스9>  
 
오창익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점은 외면…KBS 스스로 앵무새로 전락시키게 될 것"

MBC와 SBS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는 각각 1건의 리포트를 방송했다.

이에 대해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시위대가 행사무대를 무단 점거한 것은 잘못한 일이지만 이런 행위가 200명이 넘는 시민을 체포할 정도로 긴급하고 위중한 사태였는지 의문"이라며 "적어도 비례의 원칙에 비춰볼 때 행사를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협조요구나 안내를 하는 등 평화적인 방식의 제지가 아니라 강경일변도로 진압에 나선 것은 균형있는 법집행이라 볼 수 없다. 경찰권 발동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 국장은 "요 며칠 새 정부가 경찰력 발동을 이런 식으로 행사한 것은 '정권의 코드'에 맞춰 반대세력을 진압하고, 촛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라며 "경찰력의 만용과 과잉이 더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오 국장은 KBS의 보도에 대해 "원칙에 있어 양쪽의 잘못을 다 지적한다고 해도 경찰이 무분별하게 국민 신체의 자유 구속을 남발한 데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80년대 식 편향보도"라며 "방송이 정의로우려면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함에도 경찰청장과 서울시 등 힘있는 국가기관 종사자의 목소리 위주로 반영한 것은 스스로를 앵무새 수준으로 전락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국장은 "방송은 공적인 재산이며 다수의 행복과 다수의 원칙에 철저해야 함에도 이런 식으로 KBS가 보도한 것은 정권의 이해와 방향을 같이한다고 밖엔 볼 수 없다"며 "이 때문에 국민의 방송이 아닌 대통령의 방송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 국장은 또 자전거 축전에 참가한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주장이나 4대강 정비사업 발언에 대해 "언론의 사명인 비판과 함께 정부정책 또는 대통령 발언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전혀 반영하지 않은채 대통령의 동정을 시시콜콜 보도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태도"라고 덧붙였다.

KBS 취재팀 "최대한 모든 입장 반영, 균형맞추려 노력"

이에 대해 KBS 취재팀의 한 기자는 "분량(양적인)의 균형을 맞추진 못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경찰과 서울시 방침과 함께 시위 주최측의 입장도 최대한 적절하게 반영하려고 노력한 것"이라며 "확인된 팩트와 현상만을 전달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각에선 좀 더 시위 상황을 자세하게 보도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당시 주최측도 제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인섭 KBS 1TV뉴스제작팀장은 "3일 뉴스 편집에서 휴일스케치와 교통체증 상황 등 소프트한 내용을 넣으면서 자전거 관련 리포트도 넣은 것이며, 자전거 산업에 대해선 몇주 전에 우리가 가장 먼저 보도한 적도 있었다"며 '자전거축전·MB발언·촛불강경진압 리포트를 나란히 배치한 편집이 정부홍보를 극대화하고 정부비판세력을 비난하는 효과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부홍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있는 리포트를 자연스럽게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고 촛불진압 리포트를 더 앞으로 올리는 건 더 문제 아니냐"고 답했다.

한편, 문화일보는 4일자 1면 머리기사 <'촛불 불법시위' 무더기 구속예고>와 3면 <"민주" 외치며 난장판…그 곳엔 반민주·무법 밖에 없었다> 김승현 기자의 취재수첩 <'가정의 달' 돌려달라>에서 "'독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편인 '무정부 상태'라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이날 1면 머리기사 <시위대가 망친 '서울의 주말'>에서 "소수(1300여 명)의 시위대가 축제 현장에 난입해 무대를 점거, 도심 전체가 아수라장이 됐다"며 "축제를 보러온 다수 시민(8000여 명)은 시위대를 피해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동아·문화 "시위대에 시민축제 아수라장" "공권력 엄정 집행해야"

조선은 시민 고아무개씨의 말을 빌어 "오후 5시부터 일찌감치 나와 앞자리를 잡았는데 나들이가 엉망이 됐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선은 사설에서도 "하필 왜 시민축제에 와서 독재 타도를 외치며 난장판을 만드는 것인가"라며 "법이란 법은 다 무시하면서 선량한 시민에게 욕질해대고 피해 입히는 비시민, 반민주 저질 작태를 그만두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중앙일보도 16면 머리기사 <경찰 "서울축제 점거 폭력시위대 전원처벌">과 임주리 기자의 취재일기 '글로벌 서울' 잔칫상에 재 뿌린 시위>에서 지난 2일 집회를 두고 "10일까지 이어질 다른 행사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며 확실하게 잿물을 끼얹은 셈"이라고 주장했다. 중앙 역시 사설을 통해 "법치를 부정하는 폭력 시위자들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공권력의 법집행이 엄정해야 한다"며 강경대처를 부추겼다.

동아일보도 10면 머리기사 <'훼방꾼 시위대'에 시민축제 아수라장>과 <"경찰 때리는 시위는 한국서 처음 봐요"> 등의 기사를 실었다.

반면,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와 8면 머리기사 <"참여의 기억이 현실 바꾸는 작은 불씨 될 것"> 9면 머리기사 <경찰 '차벽'으로 집회길목 차단/'토끼몰이' 포위에 시민들 격분>을 통해 "경찰이 집회가 예고된 서울역 광장과 청계광장 등에 대규모 차벽을 쌓아 시민들의 출입을 막았"고, "우연히 겹친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이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며 현장의 상황을 자세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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