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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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美 이코노미스트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3%가 “10년 내 미국에서 내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하다. 공화당 지지자는 CNN을, 민주당 지지자는 폭스뉴스에 비난을 퍼붓는다. ‘사실’은 힘을 잃어간다. 美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통령 임기 중 3만573건의 허위정보를 전했지만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의회에 난입했다. 미국의 과거는 한국의 미래일 수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2일 공동 주최한 ‘한국정치의 양극화와 언론의 정파성’ 신년토론회에서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너무 오랜 세월 이 주제(정파성)가 방치되면서 많은 것들이 망가졌다. 종교적 믿음이 정치영역을 침범하면서 사실과 토론의 영역이 신앙을 확인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어 버리고, 언론은 악화된 공간에서 살기 위해 본질로부터 멀어졌고 언론개혁은 뒤틀리는 이상한 상황에 봉착했다”고 언론계 현실을 진단했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는 “갈등의 조장과 적대의 부추김이 정보의 상업적 가치를 높이는 탈진실 시대는 공적 논의에서 필수적인 ‘사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며 “지난해 ‘바이든-날리면’ 사태는 ‘사실’ 그 자체를 공유할 수 없는 탈진실의 시대를 현실적으로 확인하는 사건이었다”고 분석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 또한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바이든’이라고 들은 사람이 60%,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이 30% 정도였는데 (30% 여론은) 대통령 지지율과 흡사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자는 ‘믿지 않는다’가 80% 수준인데 민주당 지지자는 ‘믿는다’가 70% 정도였다”며 이를 탈진실의 단면을 드러낸 장면으로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미 의회에 “XX들이 바이든이 쪽팔려서” 등의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미 의회에 “XX들이 바이든이 쪽팔려서” 등의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되고 있다. 사진=MBC 영상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거대 양당 중심의 적대 정치는 윤석열정부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김만권 교수는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적대 정치에 친화적”이라고 지적하며 적대 정치의 구체적 현상으로 △반지성주의 △우파 포퓰리즘 △정치적 부족주의를 꼽았다. 김 교수는 “디지털에선 갈등유발에 시공간 제약이 없어 24시간 내내 싸울 수 있다. 정보의 재생산 비용이 들지 않아 파급력은 폭발적이다. 정보는 알고리즘 때문에 편향적으로 접근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조회수가 경제적 이익이 되는 상황에서 정보는 주목끌기 수단으로 전락한다. 정치 유튜버들은 시선을 끌기 위해 상징 폭력의 극적 희생양을 찾기 위해 몰두하고, 디지털 미디어가 개인들의 생계형 산업이 될 때 정치에서 탈진실은 일반화 경향을 띠게 된다”고 분석했다. 

▲자유언론실천재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2일 공동 주최한 ‘한국정치의 양극화와 언론의 정파성’ 신년토론회 모습. 
▲자유언론실천재단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2일 공동 주최한 ‘한국정치의 양극화와 언론의 정파성’ 신년토론회 모습. 

이 같은 진단은 반복되지만 해답은 내놓기 어렵다. 김 교수는 “정치가 양극화될수록 입장이 다른 이들은 서로 마주하지 않는다. 이때 다리를 놓는 역할을 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곳이 언론”이라며 “언론이 정파성을 갖더라도 상호 관용과 이해, 신중한 정보 전달로 양쪽이 공론장에서 만나게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유용민 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상호이해를 넓히는 수평적 소통이 어떻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떤 사람이 소통의 장에 모이고 어떤 언론이 구체적 실천에 나서려 할까. 실제로 (소통을) 원할까”라고 되물으며 현실적 어려움을 지적했다. 유용민 교수는 “언론의 정파성을 없애는 게 비현실적이라면 공론장의 외연을 확대하고 약자를 포용하는 정치적 편향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제안하는 동시에 “언론에만 뭐라 할 게 아니라, 실질적인 가치나 이념을 중시하는 정치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대안적 정파성을 추구하려는 언론과 공명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반면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언론개혁을 이야기하면 기울어진 운동장 개념이 나오고 그럼 서로 자기들에게 불리하게 기울었다는 주장이 반복된다. 언론의 정파성 논의는 답 없는 문제”라며 “정파성을 인정하고 자유주의 모델로 가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라고 했다. 김준일 대표는 “최근 종편 심사위원들이 고초를 겪는 근본 원인은 결국 (언론 개입을) 놓지 않으려는 것이다. 어느 정부든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민주당 방송법 개정안을 두고서도 정파성 논란이 있는데 ‘니들이 잡았을 때는 안 했다는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부수 조작은 하지 않는다는 식의 최소한의 룰만 정해놓고 언론 각자의 편파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은 “(한국사회에선) 계급적 담론이나 정치적 지향이 아니라, 사실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보수 양당의 정치적 이해를 대변하는 게 정파성으로 읽히고 있다”며 “정파성을 그대로 인정하면 (정치적 양극화)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 위원장은 “공영방송 정치 독립을 위한 민주당 방송법 개정안도 민주당이 집권 시기 (제도개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법안이 정파적 오해의 대상에 놓여버렸다”면서 “법안 자체는 거대 양당의 정치적 영향력을 공영방송에서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보수 언론학자들도 방향성에 찬성하고 있다”며 실은 정파적 논란에서 자유로운 논의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법제도 개선을 통해 정치권의 영향에서 자유롭게 된 공영방송이 정치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토론의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방송법 개정안이 여야 대결 국면에 매몰되고 있다. 내용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이해에 따라 국회 처리 여부가 달라지는 참극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나”라고 되물으며 “양극화된 정치체제 속에서 언론개혁은 불가능하다. 이번 토론회를 시작으로 변화를 위한 작은 가능성을 발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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