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과 ‘개인정보 보호’를 양극에 놓고 방역을 우선시하는 기존 ‘K-방역’ 관점에서 벗어나, 방역 실효성과 윤리적 정당성을 포괄하는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는 학계 지적이 나왔다.

오철우 서울과학기술대 강사는 27일 서울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 “디지털 방역 기술을 논할 때, 실질 효과를 낼 수 있는지를 따지는 방역의 실효성과 프라이버시와 공정․평등 면에서 우려를 최소화할 윤리적 정당성 논의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강사는 이를 현실화할 방안 가운데 하나로 공중이 참여하는 거버넌스 기구를 제안했다.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감염·접촉자의 디지털 개인정보를 최대한 추적, 결합해 대중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작업을 근간으로 한다. 흔히 ‘3T’로 불리는 검사-추적-치료(Test-Trace-Treat) 체계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지난 3월 경찰청과 여신금융협회, 3개 통신사, 22개 신용카드사가 결합 체계를 구성한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을 구성해 운영해왔다.

정부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개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진료기록부, 출입국 관리기록, 휴대폰 위치정보, 신용카드 거래내역, 영상정보(CCTV) 등을 중앙 집중적으로 수집해 접촉 의심자를 찾아내고 관련 정보를 공개해 왔다.

▲국토교통부 역학조사 시스템 소개 그래픽 갈무리
▲국토교통부 역학조사 시스템 소개 그래픽 갈무리

오 강사는 이 같은 바이러스 확산 차단 ‘우선주의’가 되레 사회적 역효과를 불러왔다고 했다.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가 대표 사례다. 공개된 확진자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일부 누리꾼이 다른 정보를 결합하고 가공해 확진자의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혐오 정서를 만들어냈다. 이어 개인정보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데에 반작용으로 자신의 정보를 밝히지 않는 문제까지 이어졌다. 이는 개인정보의 과도한 노출을 우려하는 분위기를 낳았고, 방역에 걸림돌이 됐다.

오 강사는 “다행히 정책 수정을 거듭하며 확진자 정보공개 단계의 프라이버시 논란은 줄었지만, 디지털 접촉 추적 기술을 둘러싸고 훨씬 복잡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디지털 접촉 추적 기술은 국외에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부르는 대표 사례로 지적 받아왔다.

오 강사는 “미국의사협회저널(JAMA)이 한국의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이 코로나19 방역에서 큰 역할을 해냈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7월21일 한국의 자가 격리 앱에서 취약한 보안 문제가 발견돼 개인정보 해킹 우려가 있다며 한국 당국이 뒤늦게 앱을 수정하고 실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의 연구자 300명은 4월 ‘접촉 추적에 관한 공동성명’을 내 “국민 대상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중앙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활용한다면 사회관계망 데이터를 통해 시민의 활동을 엿보는 데에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오철우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가 27일 서울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 ‘팬데믹 시대 스마트방역과 프라이버시 논란의 현황과 쟁점’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오철우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가 27일 서울 정동 상연재에서 열린 한국언론정보학회 가을 정기학술대회에서 ‘팬데믹 시대 스마트방역과 프라이버시 논란의 현황과 쟁점’을 주제로 발제하고 있다.

오 강사는 그러면서 디지털 접촉 추적 기술이 적절한지를 따지는 기준으로 △필요성 △비례성 △실효성 △일시성을 제시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제시카 몰리 연구진이 지난 6월 ‘네이처’에 발표한 글을 인용했다. 

이 연구가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개발 책임자는 먼저 접촉 추적 앱이 방역에 꼭 필요한 상황인지 답해야 하고(필요성), 프라이버시 훼손 등 영향을 감내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지 판단해야 하며(비례성), 해당 앱이 방역에 실질적 도움을 주고 정확한 데이터를 주는지 확인해야 하고(실효성), 추적 기술 사용 종료 시점과 절차를 명시했는지를 따져야 한다(일시성).

오 강사는 “이들 기준은 윤리와 책무 문제를 기술자 개인의 개발·관리 현장보다 넓은 틀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인명을 구하는 데 다른 해법이 없는지와 부정적 영향을 용인할 정도로 팬데믹이 심각한지, 데이터가 팬데믹에 대처하는 데 효과적인지를 따지도록 해 방역의 실효성과 윤리성을 포괄했다”고 풀이했다.

오 강사는 이처럼 방역과 윤리를 포괄해 기술을 논의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당사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존스홉킨스대 칸 연구팀이 ‘팬데믹에 대응하는 디지털 공중보건 기술의 사용 원칙’을 정리한 보고서는 (기술 사용의) 투명성과 공중참여를 필수 원칙으로 제시한 뒤 “디지털 방역 기술을 책임 있게 사용하려면 유효한 거버넌스와 책무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강사는 “한국의 방역 담론에서는 긴급 상황이라는 전제 아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가 미뤄져왔다”며 “특히 긴급하게 설계와 개발 과정을 거치며 방역과 윤리 관점에서 두루 충분히 논의하지 못한 점과 감독기구·투명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대표적으로 다시 살펴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 강사는 그러면서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이란 이질적 요소를 따져보고 이를 대변할 수 있도록 여러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고 지속적 과제로 다뤄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