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의 언론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 다시 읽기)]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있다. 논문들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뉴스룸 안팎에서 했던 고민들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었다는 데 더러 위로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모르겠다. 언론 신뢰는 갈수록 땅에 떨어지고, 언론 혐오와 기자를 향한 공격이 횡행하는 분위기 속에서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언론의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언론의 잘못이 있을지언정 만회할 기회가 없고, 더러 열심히 하고 있는 이들의 노고는 여기에 가린다.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습 기사 시절부터 들었건만, 기사에 달린 수많은 악플을 보노라면 쉽게 낙담하게도 된다.
최근 출간된 책 ‘전국 언론 자랑’의 부제는 “‘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다. 윤유경 미디어오늘 기자가 동명의 제목으로 2년 간 연재했던 기사를 책으로 냈다.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상용어처럼 쓰이고, 지역 언론하면 지자체와의 유착부터 떠올린다. 서울 일변도의 중앙 일간지는 지역의 소식을 담는 전국면이 1개면에 불과할 뿐 아니라, 지역이 조명받을 때는 주로 큰 사건·사고가 났을 때다. 그러나 당연히, 그 속에도 ‘소멸’이나 ‘사건·사고’가 아닌 삶이 있고 그걸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역 언론이다.
지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삼성중공업 태안 바다 기름 유출 사고를 18년 이상 물고 늘어지는 솔루션 저널리즘의 태안신문, 유료 구독자 수 전국 3위의 미디어그룹 당진시대, 모든 기자가 옥천에 살며 지역 밀착형 언론 옥천신문 등 책 ‘전국 언론 자랑’이 상기하는 지역 언론의 반짝임은 끝이 없다. 그러나 책이 짚는 지역 언론의 그늘도 상기해봐야 한다. 심부름센터나 산복빨래방처럼 뭔가 특이한 걸 해야 지역 안팎의 이목을 붙들어 매야 하는 현실, 지역 언론의 기사를 베껴 쓰는 중앙의 언론사들, 작은 매체일수록 기자 개개인의 희생에 기대 꾸려가야 하는 상황 등이다. 지역 언론들이 지역민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듯, 지역 언론을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는 시도가 중요한 까닭은 여기에 있다. 지금, 여기에 언론이 존재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권력 기관의 전횡을 막고 누군가 팩트를 조작할 가능성을 현저히 줄인다. 지역 언론의 활약과 함께 실상을 알리고 관심을 환기하는 일은, 지역 곳곳의 엄정한 기록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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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 선생님 대상 기사 작성 강의를 했다. 강의를 준비하며 당황스러웠다. 기사 쓰는 게 일이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한 강연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뭘 쓰고 싶어할지, 왜 쓰고 싶어할지, 사실은 왜 이 강의를 듣고 싶어하는지부터 감이 안 왔다. 그러나 선생님들을 만나자 나의 생각은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선생님들은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반짝이는 모습들, 퇴임을 앞둔 동료 교사의 소회, 성별 이분법이 공고한 학교와 여기에 균열을 내려는 시도같은 것들을 기사에 담고 싶어했다.
선생님들이 쓴 기사를 보며, 나는 어느 순간 내 머릿속에 우리네 교실이 ‘딥페이크 지옥’, ‘학교 폭력’ 같은 단어들로만 점철돼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들의 납작한 세계를 붕괴시키는 것이야말로 가까이서 오래 들여다본 이들의 힘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기성 언론의 획일화된 역피라미드식 기사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리라. 나는 선생님들께 역피라미드식 기사는 가르치지 않았고, 그것을 지금껏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도 나태주 시인의 명시가,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보아야/예쁘다//오래 보아야/사랑스럽다’(‘풀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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