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드라마, 불륜은 여자 책임?
'미디어열사' 모니터 보고서…"소재에 따라 시청 등급 정해야"
‘여자’를 전면에 내걸고 있는 ‘불륜 드라마’들이 여성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표현하겠다는 기획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여성에게 불륜의 책임을 지우거나 여성을 가정에 부속된 존재로 다루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아니라 불륜을 다루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언론수용자운동단체 ‘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미디어열사)은 9일 발표한 모니터보고서에서 “불륜을 소재로 했다고 나쁜 드라마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다”면서도 “제작진이 내세운 기획의도는 읽을 수 없고 불륜으로 인한 가정 분란만을 보았을 뿐”이라며 불륜 드라마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시청자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디어열사는 지난 4월9일부터 5월6일까지 KBS 주말극 <행복한 여자>(극본 박정란, 연출 김종창),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극본 이홍구, 연출 이대영 이동윤), SBS 월화극 <내 남자의 여자>(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 등 3개 지상파방송 드라마를 모니터한 결과를 분석해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의하면 우선 “세 드라마 모두 본래 아내는 가정적이지만 별다른 재미도 대화도 없는 존재로, 남편의 불륜 상대 여성은 성적 지적 매력을 지닌 고학력의 진보적 여성으로 묘사된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아내에 대한 묘사가 고루하고 전형적인 것은 남편의 외도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한 장치이며 불륜 책임이 아내에게도 일정 부분 있다는 것으로 몰아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편 불륜이라는 소재 자체가 ‘15세 등급’으로는 부적합함에도 불구하고 “15세 등급을 받기 위해 아슬아슬한 수위를 오가는 것은 비겁하고 비도덕적”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나아가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와 상관없이 표현 수위만을 문제삼는 것을 비판하며 소재에 따라 등급이 정해져야 함을 시사했다. 하지만 “안방극장만큼은 공공성과 일반 상식이 지켜지는 선에서 묘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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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에 대한 여성의 대처가 ‘새로운 가족 만들기’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세 드라마는 남편의 불륜으로 혼란에 빠졌던 아내의 홀로서기 노력과 그 결실을 그리는 것이 당연하고 시급해 보이는데도 불륜으로 인한 방황, 분노 표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서둘러 재혼, 모자 가정 등 새로운 가정 형태로 여성을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불륜 사건을 통해 여성이 어떤 깨달음을 얻고 어떻게 정리하고 상황을 개척해 나가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노력이 있어야 (시청자들이) 이후의 행복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디어열사는 “제목에서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기획의도에 밝힌 대로 그에 걸맞은 문제 해결방식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드라마 제작진에게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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